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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Nov 24. 2024

선인장 - 2

2.


 3년, 정도를 만난 여자친구였다. 착한 사람이었다. 잘 웃어주고 남들에게 싫은 소리, 거절을 못 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동시에 최대한 남의 기분을 배려해 주는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자신을 꾸밀 줄 몰라 가지고 있는 매력을 드러내지 않는 담백한 면도 있는 사람이었다. 혹자는 그녀가 매력이 없다고 말할지라도, 요한은 그래서 그런 그녀가 좋았다.


 글쎄. 좋았었던 건지 사랑했었던 건지. 지지고 볶고 간을 보는 피곤한 연애보단 서로를 배려하고 목소리를 올릴 필요가 없었던 연애가 편했던 것이었는지. 잔인하게도 헤어진 후에 요한은 그것에 대한 정답을 내릴 수 없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 자기를 포장하고야 만다. 포장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입을 닫아버리거나.


 요한은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할 때면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혹여나 '거짓말이 들통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요한은 자신을 스스로 방어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면 세 가지 방법 중 두 번째를 선택했다. 앞 뒤를 자르건, 중간을 자르건 적당히 이야기를 선택한 뒤, 약간만 고치면 남들이 듣기엔 썩 괜찮은 이야기가 되곤 했다.


 그래서 그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오면 스스로를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컷을 찍어놓고 남들에게 어떤 장면을 어떤 식으로 보여줄지 고민하는 영화감독. 자, 윤요한 감독이 프로듀서와 투자자의 압박을 이겨내고 소신껏 만든, 다소 솔직하지 못한 그의 이별은 이러했다.


-


 이상하게 유난히 추운 그 해 가을이었다. 낙엽이 떨어지기도 전에 나무의 이파리가 얼어 죽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추웠던, 그런 가을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포근한 날이었다. 웬일인지 해도 쨍쨍해서 점퍼를 입지 않고서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요한은 점심을 먹고 교양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로 향했다. '문학과 신앙'이라는 세 시간짜리 교양 수업이었다. 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요한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 중 하나였다. 그가 강의실에 도착했을 때, 강의실 문에는 종이가 하나 붙어있었다. 교수님이 아프시다나 뭐라나, 어쨌든 강의가 미뤄지고 보강기간 때 수업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여자친구와 약속은 5시간이나 남아있었고 요한은 곧장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으로 가는 도중 여자친구에게 문자를 남겨놓았다. '오늘 수업이 취소됐네. 도서관에 있을 테니까 수업 끝나면 문자 줘.'


 가을의 도서관, 그 정취는 독특했다. 쌀쌀한 밖과는 달리 도서관 안은 옅은 열기로 포근했고, 창을 통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책들이 내뿜는 묘한 책내음은 가을의 정취와 맞물려 요한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요한은 딱히 읽을만한 책이 떠오르지 않아 이번 달의 추천도서 목록을 보기로 했다. 그중, 카프카의 변신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찾은 후에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어나갔다.


 책을 다 읽고도 여자친구가 오지 않아 인터넷으로 책의 해설을 읽던 중이었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톡 쳤다. 요한이 이어폰을 빼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 익숙한 그의 여자친구가 서있었다.


 “뭐 읽어?”

 “프란츠 카프카. 변신 해설.”


 요한이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여자친구는 나가자는 손짓을 했다. 요한은 책을 원래 있었던 책장에 두고 여자친구와 함께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그는 여자친구를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그의 여자친구는 자신을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땐 편한 계절과 날씨에 딱 알맞은 옷만을 입고 나오던 그녀였는데,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머리를 곱게 빗어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없었고 화장도 예쁘게 잘 먹은 날이었다. 옷도, 신발도, 가방도 스타일이며 색감이며,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매치된 이상한 날이었다.


 둘은 평소와 같이 학교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학교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다. 시답잖은 사랑 영화였다.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열렬히 사랑하다 피 튀기는 싸움 후에 헤어지고 우연한 장소에서 다시 만나 어색하게 인사하며 끝나는, 그런 영화였다.


 요한에게는 시시한 영화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펑펑 울었다. 별 것 아닌 엔딩 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인 양 꺽꺽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요한은 그녀를 달래주며 한 손으로는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녀가 너무 울어서, 주위의 시선이 따가웠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기처럼 마구 울어댔다.


 영화관에서 나와 둘은 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그녀의 눈물은 그쳐있었다. 요한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손을 잡고, 그저 대학로를 걸었다. 밤이 되었는데도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았다. 맥주라도 한 잔 할래?라는 요한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오늘은 내가 살게. 괜찮은 펍이 생겼대. 이 주변에.”

 “아니, 술 먹으면 안 될 거 같아. 오늘은.”

 “무슨 일 있어? 오늘 너 좀 이상하다.”

 “그러게. 이상하네, 기분이 조금…”


 하고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녀는 혼자 한 발짝 걸어 나갔고 요한은 그런 그녀를 잡아 세워 꼭 안아주었다.


 “이상하네. 오늘따라 너무 예쁜데.”


 그 말에 그녀는 다시 한번 펑펑 울어댔다. 다시 아기처럼.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몰라 불안해하는, 갑자기 바뀐 상황이 겁이 나 울어대는 아기처럼. 그렇게 울고 있는 그녀를 요한은 한참 동안 달래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요한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면서 ‘무슨 일 있어? 오늘 왜 이렇게 눈물이 많지.’하고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녀는 눈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요한의 코트와 카디건이 그녀의 눈물로 젖었고, 이윽고 셔츠 안에 입은 티셔츠까지 축축해질 때 즘, 그녀는 눈물을 멈추었다.


 “미안한데, 오늘 나 집까지 데려다줄 수 있어?”

 “물론이지. 왜 그런 건 미안해해.”


 요한은 도로로 나가 택시를 잡으려 했다. 그녀는 손을 내저었다. 버스를 타고 싶다고 했다. 일반 버스도 아닌, 마을버스.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타려면 족히 30분은 걸어야 했다. 요한이 뭔가를 말하려 하자 그녀는 요한의 입을 막으며 마을버스를 타고 싶다고 말했다.


 30분 동안 길을 걸으며 요한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갑자기 평소 답지 않게 엄청난 말을 쏟아냈다. 친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아까 봤던 영화이야기, 저녁 식사부터 정치이야기, 학교이야기. 그녀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모조리 토해내듯 말했다.


 요한은 댐의 구멍에 손을 넣어 참사를 막은 네덜란드 소년의 이야기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막으려 했지만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요한은 네덜란드 소년이 부러웠다. 그는 최소한 자신의 노력과 희생이 존중을 받았지만, 요한은 무기력했다. 그녀의 무너질 듯한 마음의 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니, 이미 늦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네덜란드 소년이 댐을 마주 했을 땐 소년의 작은 손으로도 막을 만한 작은 구멍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댐은 이미 무너져 온갖 토사물이 쏟아져 나와 그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텅 빈 마을버스 안에서도 그녀는 온갖 이야기를 쏟아냈다. 요한은 웃으면서 적당히 그녀의 말에 말장구를 쳐줬을 뿐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그녀의 집까지 갈 땐, 되려 조용했다. 세상이 이렇게 조용해도 괜찮을까? 마치 진공상태 속에 있는 듯 그녀에게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선인장, 아직 꽃 안 폈지? “


 갑자기 이야기를 꺼낸 그녀였다. 속삭이듯 말한 그녀의 말을 가까스로 알아들은 요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응. 아직. “

 ”아쉽네. 선인장 꽃 보고 싶었는데. “

 ”언젠가 피겠지. 조급할 필요 없잖아? “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둘 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두 사람이 그녀의 집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인사도 없이 혼자 몇 발짝을 걸어 나갔다. 요한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그녀가 걸어가는 것을 멍하니 보았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힘찼고 우아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멋진 정장을 입고 무대를 향해 걸어 나가는 것처럼 사뿐사뿐, 우아하게. 그리고 그녀는 담담하게 요한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녀가 그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요한은 그녀를 잡지 않았다. 3년의 짧지 않은 연애치 고는 냉랭하고 쿨하고, 뭐랄까 딱딱하고도 이상한 끝이었다.


 관객들이 야유를 보내며 팝콘을 스크린에 집어던질 만한 마무리였다. 두 명이 만들어 온 로맨스 영화의 마지막 씬은 배우도 울지 않았고 관객이 있었다면 그들도, 아마 이 세상 그 누구도 울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이제 헤어지자. 오빠도 알잖아, 서로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거. 식어 버렸다는 거. 아까 그렇게 울고 나니까, 확실하게 알았어. 그 감정에는 그저 미안함이 있었던 거야. 오빠와 헤어지고 나서가 걱정되서가 아니라.”

 “그래서 그렇게 예쁘게 하고 나온 거야?”

 “응. 헤어지자고 말하는 내가 좋게 남지 않겠지. 그래도 마지막 모습은 최대한 오빠한테 좋게 남겨보고 싶었어.”

 “고마워. 솔직하게 이야기해 줘서. 여태 노력해 왔고, 또 용기를 내줬으니 나도 용기를 낼게. 그리고 나도 앞으로 네가 노력한 만큼 노력을 해볼게.”


 그것이 윤요한 감독이 편집한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의 이별 이야기였다. 아직 남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이별 이야기를 풀어낼 만큼 마음 정리가 안 되었기도 했고 설령 마음이 정리가 되고 난 이후, 그녀를 떠올려도 아무렇지 않은 시간이 되더라도 그는 그때의 순간을 남에게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럴 거라 다짐했다.


 이 이야기는 가끔씩 그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이별의 아픈 순간을 잊기 위한 진통제와 같았고, 이후엔 일기장이 될 것이다. 과거의 아팠던 한 순간을 기록해 놓은, 남들이 보지 못할 일기. 요한은 자신의 이야기가 그런 미발표 영화로 남기길 원했다.


 그래서 잘려나간 필름의 무덤 속에 어떤 장면이 있었을지, 그가 혹시 몰라 찍어뒀던 다른 컷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요한은 아직 비하인드 컷이라던가, 디렉터 컷을 볼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이별의 마지막이라. 책갈피를 꽂아 놓고 보고 싶을 만한.”


 요한은 만지작 거리던 담뱃갑을 힘주어 구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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