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요한은 그 길로 아영의 카페를 나와 무작정 걸었다. 시곗바늘은 4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그는 어디로 갈지, 무얼 할지 정한 것이 없었다. 생각보다 밖이 쌀쌀했기에 그는 ‘따듯한 음료를 테이크 아웃 할 걸’ 하며 후회를 했다. 그러다 자신이 나가는 데도 핸드폰만 보고 있던 쌀쌀맞은 아영의 모습을 떠올렸다. 요한은 피식 웃고는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정처 없이 한 블록쯤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나 소주를 좀 사고, 어제 먹다 남은 제육볶음과 같이 마실 생각이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 두 캔과 소주 한 병을 사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징징 거리며 울렸다.
‘아영인가?’하는 생각이 스친 요한은 떨리는 마음을 달래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곳엔 아영이라는 이름 대신 유민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아영과 함께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낸 3 총사 중 한 명이었다.
“여보세요?”
“어, 뭐 해?”
“집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하려고.”
“야, 너 지금 혼자 술 마시면 사고나. 그러지 말고 밖으로 나와. 가게 형한테 말해뒀어. 오늘 밤에 너랑 아영이 온다고.”
“난 간다고 한 적 없는데?”
“아 비싼척하지 말고 가게로 와. 9시까지 오면 돼. 아영이도 카페 끝나고 바로 온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우리가 살 테니까 쓸데없는 토 달지 말고 바로 가게로 와. 끊는다.”
하고 유민은 전화를 끊었다. 요한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유민과 아영은 좋은 친구들이고, 술도 마시고 싶긴 했지만 그는 오늘만큼은 친구들과 시끌벅적하게 술을 마시는 것보단 집에서 조용하게 혼자 술을 마시고 싶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초라한 안주와 멋없는 소맥을 마시면서 이별의 아픔을 혼자 청승 떨며 즐겨보고 싶었는데. 오늘만큼은.'
그런 생각을 하며 요한은 거리를 걸었다. 날이 꽤나 추웠으므로, 그는 술이 담긴 비닐봉지를 손목에 낀 채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한껏 움츠렸다. 갑자기 바람이 불자 낙엽이 바닥에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잔잔했던 그의 마음이 뒤숭숭해진 것처럼.
한참을 걸어 자취방에 도착한 그는 술을 싱크대에 올려두고 옷을 대충 팽개쳐둔 채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창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그곳엔 그녀가 준 선인장이 보였다. 그것은 눈사람 모양의 작은 선인장이었다.
“오빠, 방이 너무 칙칙하잖아. 그래서 좀 파릇파릇한 게 있어야 될 것 같아서 사 왔어. 이건 관리를 잘 안 해줘도 되니까, 그래도 내가 준 거니까 잘 보살펴 줘야 돼. 아, 그리고 그거 알아? 선인장은 되게 못 생겼는데 꽃은 엄청 예쁘대. 꽃이 피면 꼭 사진을 찍어서 보내줘, 알겠지?”
“그럼 물론이지. 네가 준 선물인데. 너라고 생각하고 꼭 꽃을 피워볼게.”
그는 선인장을 나름 잘 관리했다. 네이버에 검색해서 선인장을 관리하는 법도 배웠고, 영양액을 주기도 했다. 물을 많이 주진 않았지만 주기적으로 그녀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시선을 주기도 했다. 가끔 그녀와 작은 말다툼을 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선인장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했지만, 하여튼 요한은 선인장을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선인장은 요한에게 온 지 1년이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자라지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헤어진 이후에도, 그는 선인장을 버리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앉은 다음, 선인장 화분을 집어 들었다. 그곳엔 꽃망울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선인장 이곳저곳에 맺혀있는 것이 보였다. 선인장에 매달린 정체 모를 그것들은 선인장이 품고 있기엔 조금 무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요한은 다시 화분을 제자리에 둔 다음 침대에 몸을 뉘었다.
“너무 늦게 핀 건가, 아니면 너무 빨리 핀 건가. 아니, 꽃이 맞긴 한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핸드폰으로 슬픈 노래를 틀었다. 창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그의 배를 따듯하게 데워주었다. 한참 노래를 듣던 요한은 핸드폰을 들어 카카오톡을 켰다. 유민에게 ‘오늘은 가지 못할 것 같다’라고 메세지를 적었다가, 선인장을 다시 보고는 메세지를 지웠다.
[9시 맞춰서 갈게. 술 너희가 사는 거 맞지?]
그렇게 메세지를 다시 쓰고는 핸드폰 알람을 8시 맞춘 다음 눈을 감았다. 나중에 저 선인장에 생긴 망울이 꽃망울인지, 병이 생긴 건지 알아봐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그는 잠에 들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를 만난 곳은 그녀가 담담히 이별을 고했던 그곳. 그녀의 집 앞, 가로등 아래였다. 꿈속의 요한은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선인장, 곧 꽃이 필 것 같아. 조금만 기다려 줘.' 하지만 그 말은 요한의 입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고, 요한은 그대로 그녀를 다시 보내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