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다시 읽기 - 여름날 우리

후회로 만들어진 풋풋했던 첫사랑의 끝.

by 에드윈


전 대만의 청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동아시아 권 영화이니 한국과 정서가 비슷하기도 하고, 그들의 학창 시절 풍경이 한국과 비슷해서 공감도 많이 가더라고요. 또한 계절감을 잘 살리는 특유의 쨍한 색감과 매력적인 주인공들, 또 그들이 만들어가는 풋풋한 첫사랑의 느낌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몇몇 대만 청춘 영화들을 봤고, 또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자면 구파도 감독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네요.


영화를 처음 보고 너무 좋았기에 한 동안 ost였던 '나사년'을 외울 지경으로 듣기도 했고, 영화는 보고 싶은데 무거운 영화가 당기지 않을 때 몇 번이고 돌려봤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거리가 많거나 명작이다라고 말할 영화까진 아닙니다만, 그냥 편하게 보기도 좋고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나는 영화라고나 할까요.


최근에 잘 만들어진 대만 청춘 영화가 없을까, 하다가 대만 영화는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의 영화를 찾게 됐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박보영 배우를 좋아해서 보고 싶었던 '너의 결혼식'이라는 한국영화를 적절히 로컬라이징 해서 만든 '여름날 우리'라는 중국 영화이죠.


원작보다 이 영화를 먼저 봐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뭐랄까... 원작도 나름 매력이 있었지만 좀 칙칙한 느낌도 들고 주인공들의 연기가 너무 가볍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리메이크 한 작품들은 대부분 원작 훼손에 가까운 졸작이 많아서 굉장히 싫어하는데 이 영화는 정반대였습니다. 리메이크 작이 훨씬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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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줄거리는 뻔합니다. 첫사랑을 주제로 한 많은 청춘 영화들이 그러하듯, '학창 시절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성인이 돼서 이루게 되지만 결국 헤어진다.' 이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하지만 제가 이 영화를 감명 깊게 본 이유는 기존의 청춘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한 가지 키워드에 조금 더 집중을 합니다. 바로 '후회'라는 감정입니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인 저우샤오치와 여자 주인공인 요우용츠가 헤어지게 되는 것은 샤오치의 후회, 즉 용츠를 구하려다 입은 상처로 더 이상 수영선수로 활동할 수 없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용츠의 아버지 장례식날, 친구에게 무심코 용츠를 만난 것을 후회했다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하지만 하필 그 이야기를 용츠가 듣고 말지요. 그녀가 이야기합니다. "네가 날 만난 걸 후회한다는 말을 듣다니."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그 자리를 뜨지요.


샤오치는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후회하고 용츠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지만, 용치는 그에 대한 마음을 접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만난 다하더라도 후회라는 말이 계속 남을 것이고, 자신들은 후회 주변을 맴돌게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죠. 이미 그녀의 손엔 커플링이 빠져있었고, 그날 용치는 그와의 이별을 선택합니다.


"나 때문에 생긴 너의 상처를 보듬어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결국 잘 안 되었어. 너에겐 몸에 흉터로, 나에겐 마음에 흉터로 남아버렸지. 너를 만난 것을 후회하진 않지만 너와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을 후회해. 그러니까 후회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야. 우리의 사랑이 불만으로 가득 차기 전에 지금이라도 헤어지는 게 나을 것 같아. 내가 후회하지 않은 건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야."라는 편지를 끝으로 둘은 정말 헤어지게 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른 청춘영화들과 비슷합니다. 용츠의 결혼식에 샤오치가 찾아가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저는 이렇듯 뻔한 이야기를 조금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후회'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른 청춘 영화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던 키워드를 부각함으로써, 영화의 퀄리티가 많이 올랐다고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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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라는 단어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 하나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마지막 결혼식 장면도 인상이 깊었고 둘이 헤어지는 장면도, 사랑을 시작하는 장면도 인상이 깊었지만 저는 샤오치가 용추와 헤어지고 난 후, 모든 짐을 정리하고 커플링을 빼는 장면이 특히 인상이 깊었습니다.


"알 수 없었다. 가졌다가 잃어버리는 것과 아예 가지지 못한 것 중 어떤 것이 더 고통스러운지."


이 독백이 마음에 많이 와닿더라고요.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고통스러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예전 추억들을 강제로 떠오르게 만드는 좋은 대사였습니다.


예전에 '스바루'라는 발레 만화를 봤었는데 그 만화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발레단이 교도소에서 발레를 보여주는데 그들은 발레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야유와 추파를 던지죠. 하지만 발레에 점점 빠져들게 되면서 발레가 끝나고 난 후 그들은 울부짖습니다. "차라리 이런 걸 몰랐으면 그냥 지냈을 텐데, 왜 우리에게 이런 것을 알게 해서 고통스럽게 하냐?"라고요.


이렇듯 아예 가지지 못했다면 가지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후회 단 하나만 남을 테니 좀 덜 고통스럽겠지요. 만나지 않았으니 그것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 것이고, 그래서 '그때 열심히 치근덕 대면서 만나볼걸 그랬네. 아쉽다.' 정도의 작은 후회만 남겠죠.


하지만 그녀를 만났다가 헤어진다면 이미 그에겐 그녀와 만든 추억이 남아 있을 테고, 그 추억 속에서 자신의 잘못과 행동을 반추하면서 훨씬 괴로운 생각이 들겠죠. '그때 왜 내가 그랬을까, 그러지 않았다면 혹시 더 잘했더라면 우리는 지금 남이 아닌 우리로서 남아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남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저는 '가졌다가 잃어버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훨씬 더 고통스러울지라도, 수많은 후회가 남더라도 그것 자체가 좋은 추억이자 그 만남 속에서 생긴 추억과 교훈이 더 값질 테니까요.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면서 생긴 상처에 딱지가 앉는 과정에서 인간은 더욱더 성숙해지고, 또 그게 우리의 삶이니까요. 영화 속 샤오치의 모습처럼 말이죠.




후회라는 감정은 참 묘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 과거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살 초중반때 했던 연애들은 제가 부족한 것들이 많았기에, 가끔 그때를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는 후회의 감정이 많이 들거든요. 그래서 그때가 생각이 나 영화가 조금 더 와닿았던 것 같네요.


이렇듯 이별한 연인, 특히 첫사랑에 대한 후회는 더 복잡하고 잊기가 힘든 기억인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도 잠시 나왔었지만 첫사랑은 풋사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처음 했기에 풋풋했고, 처음 했던 사랑이었기에 더 아련하기도 하고 또 부족하고 어설펐던 사랑이지만 그랬기에 순수했고 또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젠 그런 사랑을 다시는 할 수도, 하려고 하지도 못할 테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어쨌든 모든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성숙, 혹은 발전하기에 비교적 미성숙했던 과거의 일이 후회가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 과거에 대한 후회를 밑거름 삼아, 혹은 그러한 후회가 만들어 놓은 흉터를 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마치 성장통처럼.


이러한 복잡 미묘한, 특히 남자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고 있을 첫사랑의 추억과 성숙하지 못했기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혹은 그 사랑을 소중히 대하지 않았던 기억들이 누구나 있기 마련이기에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들이 워낙 매력적이고 마지막 결혼식 장면을 제외하고는 납득이 될만한 이별 이야기이기도 해서, 보편적인 로맨스 영화의 재미를 주기에도 충분한 작품이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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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지난 일을 후회하며 괴로워합니다. 후회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우리는 한낫 인간이기에 후회를 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사랑했고 그것이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과의 관계가 과거의 일이 되었다면 어쨌건 후회는 남을 수밖에 없지요.


전 그런 후회의 괴로움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내가 최선을 다했었더라면, 그때의 행동이 지금의 나에겐 최선이 아니었더라도 후회와 함께 느껴지는 것은 그때의 행복했던 추억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과거의 실수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닌, 그 실수를 다시 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더 좋은 내가 되려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소 부끄럽고 슬픈 과거라도, 한 때 미치도록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고요.


하여튼 오래간만에 가볍고 재미있으면서도 나름 의미가 있는 작품을 봤네요. 남들에게 '명작'이라고 말할 정도의 영화까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정말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이 영화의 중국 ost들도 정말 좋습니다. 한국에서 개봉할 땐 유명한 가수들이 유명한 곡들을 리메이크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 개인적으론 중국노래들이 이 영화가 더 잘 어울리더라고요. 영화를 다 보시고 '하객'과 '사랑했으니 됐어' 이 두 곡은 꼭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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