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코(寝ても覚めても, 2018)

시작한 것은 반드시 끝을 맺어야 한다.

by 에드윈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을 본 건 세 번째입니다. 첫 번째로 본 건 '드라이브 마이 카'였고 두 번째는 '우연과 상상'이었습니다.


언젠가 두 영화도 이곳에서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드라이브 마이 카 보다는 우연과 상상이 더 좋았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일본 영화 특유의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관객들에게 그 감정을, 혹은 감독의 생각을 강요하는 장면이 있어서 전 그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우연과 상상은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하고 예쁜 내용이 참 좋았습니다.


어쨌건 두 작품 모두 아주 좋은 영화였기에 이 영화, '아사코'도 꼭 보고 싶었습니다. 해피아워는 러닝 타임이 5시간이라길래 그건 도저히 볼 엄두가 안 났고요.


다만 기대한 것과는 달리 영화가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두 남녀 주인공이 매력적이지 않았다면 끝까지 영화를 보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랄까 핍진성이 부족하달까 주인공, 특히 여자 주인공의 행동이 이해가 잘 안돼서 힘들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선 '나쁘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반부에서 영화의 맛을 살리는 감독님의 솜씨가 굉장히 인상 깊었거든요. 초반부의 암 걸릴 것 같은 여주인공의 행동이 이해, 혹은 납득이 가는 좋은 후반부였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 원제 寝ても覚めても(자나 깨나) 리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영화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볼 계획이 있으신 분은 가급적 읽지 않을 것을 추천드리고 영화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모르는 상태에서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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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카라타 에리카)는 사진 전시회에서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라는 기묘한 남자를 만납니다. 아주 잘 생긴 청년이지만 그 속은 알기 힘든 남자였지요. 아사코는 바쿠를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는지 그와 만남을 시작합니다. 그녀의 친구는 그와 사귀는 것을 반대하지만, 아사코는 바쿠가 좋다며 그와의 만남을 이어가죠.


어느 날 바쿠의 친구인 오카자키의 집에 놀러 가게 되고, 그곳에서 바쿠는 빵을 사러 간다면서 나갔다가 다음날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습니다. 바쿠가 떠났을 거라 생각하고 그를 찾으러 다니던 아사코는 바쿠를 만나고, 바쿠는 "좀 늦더라도 너를 다시 찾아올 거야."라는 이야기를 듣지요.


하지만 어느 날 바쿠는 구두를 사러 간다면서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릅니다. 도쿄로 온 아사코는 커피숍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옆 회사에 커피포트를 가지러 갔다가 바쿠와 똑같이 생긴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라는 남자를 만납니다.


바쿠와는 달리 솔직하고 친근한 성격의 료헤이를 보고 아사코는 그에게 관심을 가집니다만, 아직 바쿠를 잊지 못했기에 그녀는 애써 료헤이의 관심을 밀어내지요. 하지만 아사코를 좋아하게 된 료헤이는 끈질기게 구애를 하지만 그녀는 연락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는 잠적해 버립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날, 길을 걷던 료헤이는 아사코를 만나게 되고 결국 둘은 사귀게 됩니다. 긴 시간이 흐른 후 료헤이와 아사코는 결혼을 약속하고 도쿄를 떠나 오사카로 가게 됩니다. 도쿄 친구들과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다시 바쿠가 그녀에게 찾아온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라 할 수 있겠네요.




료헤이와의 결혼을 약속하고 오사카로 떠나기 전, 도쿄의 친구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바쿠가 그녀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료헤이 앞에서 아사코는 바쿠의 손을 잡고 떠나게 되지요.


자기 아버지가 살고 있는 홋카이도로 가자는 바쿠의 말에 아사코는 그의 차에 타고, 료헤이와는 헤어질 것을 친구에게 전한 후에 바쿠와 아사코는 홋카이도로 가게 됩니다.


잠을 깨고 일어난 아사코는 바쿠에게 "고속도로는 지났어?"라고 묻고, 바쿠는 쌀쌀맞게 "배가 고파서 뭔갈 먹으려고 했는데 파는 곳이 없어서 이곳에 있어."라고 대답하죠.


그전, 동일본 대지진으로 망가진 센다이의 한 시골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아사코와 료헤이, 그들이 도쿄로 돌아오는 길에 아사코가 료헤이에게 물어본 것과 똑같은 질문이었습니다. "고속도로는 지났어?"라고. 아사코는 그 질문을 두 남자에게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과 아사코의 행동은 전혀 다르죠. 바쿠의 대답을 들은 아사코는 그를 떠날 결심을 하고, 료헤이의 대답을 들었을 땐 피곤에 지친 그의 발과 다리를 안마해 주면서 료헤이를 꼭 안아주니까요.


영화의 마법은 이때부터 시작이 됩니다. 바쿠는 차에서 내린 다음 높은 방파제를 보며 이야기하죠. "여기 바닷가 근처라는데 파도소리가 안 들려. 정말 이 너머에 바다가 있는 거 맞아?"


바쿠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은 마치 방파제처럼 높은 담이 있지요. 방파제처럼 높은 마음의 담이 있기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도, 자신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사코는 료헤이에게 돌아갈 생각을 합니다. 방파제 위로 올라가 파도소리를 들으면서요.


파도소리는 주인공들 내면의 목소리입니다. 바쿠는 높은 방파제가 있어 자신의 마음을 듣지 못하고, 방파제 위로 올라가 그 너머의 세상을 알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아사코는 바쿠에게 떠나가고 료헤이에게 돌아갈 거라 생각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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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헤이에게 다시 돌아간 아사코는 오사카의 집에서 그를 만납니다만, 료헤이는 아사코를 쌀쌀맞게 대하죠. 원래 키우던 고양이는 버렸고 다시는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고.


하지만 료헤이는 고양이를 버리지 않았고, 비를 맞으면서 고양이를 찾고 있는 그녀에게 고양이를 건네주고는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그 문을 잠그지 않았죠.


바쿠와는 달리, 자신의 마음을 열어둔 료헤이의 모습이었습니다. 둘은 발코니에서 강을 봅니다. 빗물로 넘쳐난 강을 보며 료헤이는 "지저분해."라고 이야기하고, 아사코는 "그래도 예뻐."라며 이야기를 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바다는 바쿠와 아사코의 관계를 나타내고, 강은 료헤이와 아사코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티브로 등장합니다. 바쿠와의 관계는 꽉 막힌,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튼튼하고 높은 방파제를 부수고 파도소리를 듣는 것은 힘드니까요.


반대로 료헤이와의 관계는 지저분해졌지만 언젠가는 좋아질 수 있는 관계이지요. 비가 엄청나게 내려서 지금은 물이 불어나고, 또 지저분해졌지만 비가 그치고 나면 그들이 좋아했던 예쁜 강의 형태로 돌아올 테니까요.


료헤이가 아사코를 받아줄지, 아닐지는 이 영화에서 크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만 영화의 시선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날 것을 암시합니다. 아사코는 장대비 속에서 고양이를 찾다가 우연히 료헤이를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료헤이를 쫓아가고, 료헤이는 도망가는 일종의 추격씬이 등장합니다. 이 둘의 추격씬에서 재미있는 연출이 나옵니다. 비가 쏟아지며 흐린 날씨가 둘을 따라가며 점점 맑아지거든요.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결자해지'. 묶은 사람은 푸는 것까지 해야 한다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네요.


아사코는 바쿠와의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관계는 바쿠의 일방적인 잠수로 끝이 나고 말죠. 즉, 아사코의 사랑은 시작을 했지만 끝을 맺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바쿠와 똑같이 생긴 료헤이를 만나면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게 되죠. 하지만 아직 바쿠와의 만남의 결말을 짓지 못한 상태이기에 그녀도 료헤이도 언젠가 닥쳐올 불행 혹은 운명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고 그 일이 실제로 닥쳐왔을 때 아사코는 첫 만남의 끝을 맺기 위해 바쿠를 따라가는 선택을 하죠.


이제 아사코는 바쿠와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했고, 남은 것은 료헤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마무리 짓느냐입니다. 아사코는 바쿠와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기에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그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료헤이와의 관계를 삶의 끝에서 마무리 짓는 것이겠지요.


아사코의 행동과 초반부, 굳이 필요하지 않았던 체호프-드라이브 마이 카에 이어서 체호프 참 좋아하시네요-이야기 덕분에 영화에 빠져들어 보는 것이 쉽지 않으며, 불친절하며 다소 괴악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오묘한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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