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다시 읽기 - 더 헌트(2016)

당신이 겨눈 총구는 언젠가 당신을 향할 것이다

by 에드윈





영화는 '루카스'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원래 학교교사였던 루카스는 모종의 이유로 학교를 떠나게 되고 유치원 선생이 됩니다. 그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 역시 루카스를 좋아하는 좋은 선생으로 보이죠.


그가 사는 동네는 덴마크의 작은 마을로, 마을의 남자들과도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혼을 한 경력을 제외한다면 그에겐 흠을 찾을 수 없는 아주 좋은 사람으로 등장하지요.


마을 남자들과 사슴 사냥을 나가고, 사냥 후엔 맥주를 마시며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있던 그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절친한 친구인 '테오'의 딸인 '클라라'가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유치원 원장에게 이야기를 하고, 원장은 아동 상담사를 불러 클라라와 이야기를 합니다.


상담사는 클라라에게 사건을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 뿐입니다. 상담사는 그녀에게 답변을 유도하고, 클라라는 상담을 끝내기 위해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죠. 누가 봐도 ‘무고’인 이 사건은 마을 주민들에게는 사실로 받아들여집니다.


결국 아동성추행범으로 몰린 루카스는 직장을 잃고 사회에서도 매장을 당합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테오와 여자친구마저 그를 의심하고 등을 돌리게 되죠.


오직 그의 아들인 '마르쿠스'와 아들의 대부인 '브룬'만이 루카스를 믿어주는 상황, 마을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매장함 시킴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마을에 남는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영화에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루카스고, 우리는 그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작품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주인공은 루카스가 아닙니다. 루카스는 얼핏 보면 주인공, 즉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대변하는 인물로 보이죠.


하지만 영화의 시선은 루카스에게 가있되, 그 관심은 루카스에게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영화는 사건의 결말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루카스에게 총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려버립니다.


이렇듯 영화는 루카스의 의견과 사건의 진실을 최대한 배재한 체, 루카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조리돌림 당하는 슬픔과 아픔을 표현할 뿐입니다. 영화의 관심은 다른 곳에 향해있습니다.


마르쿠스와 브룬을 제외한, 어린이집 관장과 상담사를 포함한 모든 마을의 사람들의 행동에 영화는 오히려 관심이 있습니다.


바로 그들이 이 영화의 극을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주인공이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죠. 루카스는 그런 사람들의 변해버린 태도에 당하는 피해자로, 무고라는 사건은 그들의 행동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등장할 뿐입니다.


영화에서 클라라는 루카스에게 선생 이상의 감정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정말 그를 이성적으로 사랑했다기보단, 그를 선생 이상의 존재로 생각하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클라라는 그런 루카스에게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지만 루카스는 그런 클라라의 마음을 저버리고, 클라라는 그런 루카스에게 소심한 복수를 합니다.


오빠가 장난으로 보여준 외설사진 속의 성기를 루카스의 성기로, 자신이 루카스에게 준 하트를 루카스가 자신에게 준 것으로 꾸며 유치원 원장에게 이야기하지요.


우리는 루카스가 결백한 사람임을 알기에 그를 응원하는 동시에 자신의 결백함을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루카스에게 답답함을,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욕을 하지요. 그래서 혹자는 이 영화를 보고 "작은 사회의 무서움"이나 "덴마크가 무서운 나라구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와 동 떨어진 작은 사회나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정확하게 들어맞는 아주 잔인한 이야기지요.





그럼, 영화의 이야기를 조금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현재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한 사건이라고 가정을 해보죠.


‘우리 동네의 한 유치원'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한 학부모가 동네 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글로 말이죠.


그렇다면 아마 정 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겠지요. 그 선생의 평판이 어떠했든, 과거의 행동이 어떠하였든 성범죄자인 주제에 뻔뻔하게 결백을 주장한다고, 더러운 놈이라며 매장을 당하겠죠.


경찰의 면밀한 조사결과 그는 성추행을 한 적도 없으며, 아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가 무혐의로 풀려났더라도 사람들은 생각하겠죠.


'경찰이 무능해서 그 증거를 잡지 못했다.', '애초에 의심받은 행동을 했으니 그런 소문이 돈 거지.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 혹은 그를 손가락질 한 흑역사가 두려워 '어쨌든 선생은 이곳에서 떠나는 게 맞아.'라고.


이러한 점을 영화는 잔인하게 파고듭니다.


우리는 뉴스에 뜬 연예인들의 기사를 보며 손가락질합니다.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식당들의 부정적인 리뷰에도 불같이 화를 내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사실을 기반한 거짓이든, 사실을 부풀린 이야기이든, 애초에 거짓이든 어쨌든 진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총질을 할 타깃이 필요하고, 나와 함께 총을 쏴줄 사람들이 필요할 뿐, 정작 그 타깃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타깃을 향해 총을 쏠뿐입니다. 그 타깃이 "난 결백해."라고 소리치더라도 귀마개로 귀를 닫고 방아쇠를 당길 뿐이죠.


그저 인터넷 뉴스에 뜬 한 줄짜리 기사, 리뷰가 전부일뿐임에도 우리는 그들을 정조준합니다. 그리고 총이라는 비난을 그들에게 쏘지요.


우리의 비난이 다행히 그들의 생명을 뺏아가진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영혼과 인생은 망가집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이 상처받은 과거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말합니다.


"그땐 우리가 잘 몰랐어. 기자 혹은 글쓴이의 잘 못이지. 미안합니다."라고.


인터넷 속, 혹은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총을 조준합니다. 한 번 뜬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당사자의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눈물이 증거라며 소문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가해자로 몰린 사람의 이야기엔 귀를 막아버리죠.


이제 다시 생각해 봅시다. 루카스와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답답하고 화가 나시는 지를요.




아주 유명한 포스터를 하나 가지고 왔습니다. 군인이 향한 총구가 그 뒤를 겨누는, 반전포스터죠. 애석하게도 저 포스터가 우리에게 ‘반전'의 메시지가 아닌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포스터가 되었습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1인 미디어가 기성 매체들을 밀어내고 업체가 아닌 개인, 일반인이 주목을 받는 세상이 왔습니다. 우리는 쉽게 '좌표'를 찍고, 그 대상을 쉽게 매장시켜 버릴 수 있는 시대가 와버렸지요.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또 포스터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언젠가 당신이 겨눈, 혹은 우리가 겨눈 총구가 당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돌아올 것을 생각해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그저 충고나 이야기가 아닌 현실로 말이죠.


영화를 보고 나서 왜 우리는 남을 쉽게 손가락질하고, 그들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 주위 사람의 말을 믿고 타인을 비난한 적이 없진 않았기에 그에 대한 반성도 많이 했고요.


신형철 평론가가 이 영화 평을 하면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는 타인을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나 자신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니다, 우리는 복잡하게 나쁜 사람들이다."라고요.


이렇듯 타인을 이해하려는 능력과 동시에 나 자신을 내려놓는 노력이 필요한 요즈음이 아닌가 합니다. 쉽지 않지만 노력을 해야죠.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나부터 노력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계속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게 될 것이고 그 총구는 언젠가 나를 향할테니까요.


영화가 생각보다 너무 좋았고, 이젠 우리가 꼭 생각해야만 하는 화두를 가진 작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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