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 6

by 에드윈


둘은 요한의 자취방 근처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아영의 카페로 가자는 유민을 요한은 극구 말렸다.


“얼마 전에 거기 갔다가 내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아?”

“당연히 모르지, 그런데 알 거 같아. 그래서 가자는 거야.”


유민이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요한은 집에 가겠다고 몸을 돌려세웠고, 유민은 요한을 다시 돌려세우며 농담이라며 스타벅스의 문을 열었다.


유민은 아메리카노를, 요한은 레모네이드를 시켰다. 커피는 마셨으니 별로 마시고 싶지 않았고 달고 신 음료를 마시면서 숙취를 깨고 싶었다. 유민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입을 조심스레 열었다.


“있잖아, 어제.”

“어제? 무슨 일 있었어?”

“그게 말이지.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될지 모르겠네.”


유민이 뜸을 들였다. 요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젠장, 핸드폰으로 뭘 한 게 아니라 입으로 직접 뭘 한 거였어? 요한의 표정이 굳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유민아, 뭐든 좋으니까 빨리 이야기해봐. 하고 속으로 소리 질렀다.


“무슨 이야긴데 그래? 내가 어제 실수한 거 있어?”

“실수? 그런 건 아니고. 우리가 술 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나중에 만원만 줘. 너 엄청 마셨더라, 혼자서.”

“정말 그게 다야?”

“어. 그게 다야.”


그렇게 말하고 유민은 태연하게 커피를 마셨다. 마치 발표를 막 끝낸 발표자처럼 그의 표정은 평온하고 후련해 보였다. 요한은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유민에게 건네주었고 유민은 돈을 받았다.


“어제 어떻게 된 거야?”

“어제? 아, 너 갑자기 술 먹다 쓰러져서. 나하고 아영이가 너 부축해서 나왔지. 그 뒤로는 잘 몰라. 아영이가 너랑 택시 타고 갔으니까 걔한테 물어봐.”


그 이야기를 듣자 요한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유민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걔한테 이야기라도 했을 줄 알고?”

“그럴 리가.”

“그럴 거라고 생각했을걸.”


유민은 커피를 그대로 쭉 마셨다. 요한은 유민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유민은 눈치라고 할까, 남의 마음을 읽는데 능했다. 자신의 감정을 꿰뚫어 보는 유민의 통찰력에 자주 놀라곤 했었는데, 오늘은 놀랍기보단 두려움이 앞섰다.


요한은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들이켰고, 유민 역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이야기했다. 웃음기가 전혀 없는, 건조한 말투였다.


“인마. 굳이 네가 필립 말로일 필요는 없어. 혼자 짐을 짊어질 필요가 없단 말이지. 뭐였지, 비열한 세상을 한 남자는 걸어가야 한다고. 세상이 더럽고 비열할진 몰라도 그걸 혼자 걸어갈 필요는 없잖아. 같이 걸어가면 되지.”


진지한 유민의 표정을 보며 요한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유민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오랜 기간 알고 지내면서도, 그의 그토록 진지한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유민은 요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고, 요한도 유민의 눈을 차마 피하지 못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유민이었다.


“왜 그렇게 항상 심각하고 혼자 다 짊어지고 가려고 그래? 같이 짊어지고 갈 수도 있는거고, 짐을 나누기 싫으면 그냥 우리가 같이 갈 수도 있는거잖아. 혼자 끙끙 앓고 있지 마. 그리고, 우린 어리잖아. 아직까진 뭘 해도 용서가 된다고. 젊은 날의 치기잖아?”


유민이 손을 활짝 벌리며 이야기했다. 그때, 그의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 유민은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다시 요한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이야기했다.


“동아리 호출이네. 난 가봐야겠어. 이봐, 한요한. 좆같은 필립말로든 말보로든, 네가 그런 게 될 필요 없다고. 넌 탐정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고 더더욱 소설 속 주인공도 아니고 발에 차이는 평범한 대학생이야. 대체 혼자서 무슨 걱정을 하는 거야? 끙끙거리지 말고 이야기해, 언제든. 난 네 편이야. 물론, 아영도 마찬가지일 거고.”


유민이 일어났다. 요한이 그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유민은 재빨리 자리를 뜨고 문을 열고 카페 밖을 나섰다. 유민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내가 전날에 무슨 이야기를,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요한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요한은 거의 마시지 않은 레모네이드를 두고 카페 밖으로 나섰다. 유민을 찾으려 했지만 이미 유민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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