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고하셨습니다."
오후 6시가 되자 막내인 기우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는 막 전역한 20대 초반의 남자였다. 군대를 다녀오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었고,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전역하자마자 한 제과공장에 취직을 했다. 그는 주간, 야간을 한 주씩 번갈아가며 하루에 10시간씩 일을 해야 했고 그의 업무는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무작위로 내려오는 과자박스를 종류별로 분류하고 그것을 팔레트에 쌓는 것이었다.
기우는 '군대도 다녀왔는데 이런 과자 박스 쌓는 것쯤이야.'라고 생각했지만 일은 생각보다 엄청 고됬다. 한 팔레트에 과자박스가 64개 정도가 올라가는데, 최소 팔레트를 100개는 빼야됬다. 박스가 무겁진 않았지만 벨트에서 팔레트로 움직이고, 박스를 분류하기 위해 벨트위에서 박스를 손으로 돌리는 기술이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다. 최소 영하로 떨어지는 한 겨울에도 그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일했고, 10분 쉬는 시간이 되면 달궈진 몸을 식히기 위해 공장 밖으로 나가 차가운 포도맛 웰치스를 마시곤 했다.
"사실 우리는 너 한 2~3일 하고 그만 둘 줄 알았다. 2조 조장, 너흰 복 받은 거야. 이런 신입이 들어올 줄 어떻게 알았겠어?"
박 소장은 술이 얼큰하게 취한 채로 기우의 술잔에 소주를 잔뜩 채워주며 그렇게 말했다. 기우가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즈음, 첫 회식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토요일 특근으로 참석을 못했고 회식이라기엔 조촐한 인원이 모인 자리였다.
기우가 일하는 공장은 과자 박스 분류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일을 쉽게 생각하고 이력서를 내지만 한 달 이상 근무하는 사람들을 찾기 힘든 곳이었다.
공장이 도시 외곽에 있기도 했고, 일도 힘들뿐더러 한주씩 낮과 밤이 바뀌는 시차까지. "평범한 사람은 하기 힘든 일이라며 여기 남아있는 놈들은 다 독종이야."라며 소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기우의 어깨 역시 귀까지 올라간 것 같았다.
첫 주는 힘들었지만 그는 금방 일에 적응했다. 일이 익숙해지자 그의 작업복은 반팔, 반바지에서 반팔과 긴 바지로 바뀌었다. 나중엔 공장에서 지급되는 작업복 외투를 입고 일을 했다. 그가 작업복 외투를 입고 일을 할 즈음, 지게차 운전도 배워서 야간 근무 때는 직접 지게차를 운전해 팔레트를 빼기도 했다. 한 달 만에 작업장 파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게 되자 기우는 공장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이른바 에이스가 되어있었다.
"오전 중에 나갈 팔레트들은 지금 깔려 있는 것까지만 채워주시면 돼요. 네시쯤에 벨트가 고장 나서 하비가 좀 덜 나왔거든요, 하비는 한 팔레트 추가로 채워주셔야 되고 혹시 모르니까 지게차 아저씨한테도 말해주세요."
기우가 그렇게 이야기하며 1조 교대자들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장갑을 벗었다. 갈아입을 옷과 가방을 가지러 사무실에 들어가자 1,2조 조장 둘이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기우가 귀를 쫑긋 세우자 둘은 욕을 섞어가며 퉁퉁이 이야기를 있었다. 그는 1조 소속의 30대 중반의 통통한 체형을 가진 형이었다.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며 방금 연락을 받았다고, 1조 조장이 걸쭉한 욕을 섞어가며 2조 조장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발, 그 새끼 금방 그만둘 줄 알았다니까. 뺑기만 치고 말이야."
"오늘 1조는 몇 팔레트 나가야 돼요?"
"보자, 다행히 오늘 러시아껀 안 빼도 되니까... 파이 팔레트 76개, 몽몽이 8개, 가나 5개에 빼로 5개, 하비 3개. 아 그래도 일이 너무 많은데. 혹시, 너희 팀에 철야 뛸 사람 없어?"
"철야요?"
2조 조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기우를 보았다. 그리고 짐을 주섬주섬 챙기는 기우를 보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기우야, 형하고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알겠습니다."
기우는 조장과 함께 사무실 밖으로 잠시 나갔다. 조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코로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오늘 철야 가능하냐?"
기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공장의 위계질서는 군대와 똑같았다. 조장이 까라면 까야 되는 것이 이곳의 법이었다. 하지만 철야는 사정이 달랐다. '아무리 내가 막내라도 24시간 동안 육체노동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기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속내를 읽은 조장이 기우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살짝 쳤다.
"야, 철야하면 1.5배야. 거기다가 1조 야간이잖아. 내가 이야기해놓을 테니까 12시까지만 일해. 그리고 6시간 동안 푹 자면 돼."
"아 형, 아무리 그래도..."
"오늘 금요일이고 내일 쉬잖아. 다음에 형이 소주 한 잔 사줄게. 부탁 좀 하자. 1조 조장 형 나이가 30대 후반이야. 저 형이 땀 뻘뻘 흘리면서 밤일을 해야겠냐? 저 형도 장가가야지, 허리 아껴야 돼."
"이해하죠, 그래도 철야는 좀..."
"야야, 야식으로 형이 한우버거 세트도 사줄게 인마. 평소 때 형이 이런 거 너한테 부탁하냐? 긴급상황이라 그래. 1조도 우리 동료 아니냐. 오늘만 좀 수고해 줘라. 소장님한테 말해서 어떻게든 다음 주엔 1조 대타는 구해놓을게."
"알겠어요. 어쩔 수 없죠."
"역시 우리 기우밖에 없다. 자 그럼 들어가서 즐겁게 일하는 거야, 알겠지?"
조장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담배를 마저 피우며 기우에게 들어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고맙다, 기우야."
"아니에요, 형님. 어쩔 수 없죠."
"부탁한다. 영철이가 뭐라든?"
"12시까지만 일하고 한우버거 세트 사주신다던데요."
"알겠다. 그럼 12시까지만 일해주고, 한우버거는 나중에 내가 나가서 사 올게."
1조 조장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사무실 컴퓨터에 앉았다. 기우는 새 목장갑을 서랍에서 꺼내 손에 끼우고는 사무실을 나와 작업장으로 돌아왔다. 1조 사람들이 만세를 하며 기우를 환영해 주었다.
"기우 씨랑 같이 일하는 거야? 너무 좋다. 오늘 3명이서 일해야 된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1조의 유일한 홍일점인 누나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누나의 말 대로, 조장은 대개 일을 거의 하지 않으므로 남은 3명은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네 맞습니다. 어쩔 수 없죠. 일 해봅시다."
기우가 말하자 1조 사람들은 박수로 응대했다. 기우는 생각했다. '어차피 집에 가도 샤워하고 게임 좀 하다가 잘 텐데, 일이나 하고 돈이나 더 벌지 뭐.'
겉면이 찢어져 파기 스티커가 붙어있는 박스에서 과자를 꺼내 우물거리면서 기우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