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우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쉬지 않고 내려오는 과자 박스를 분류하고 팔레트에 쌓았다. 이미 10시간을 일한 뒤라 과자 박스는 무겁게 느껴졌고, 몸이 금방 지쳤다. 몇 시간쯤 지나자 팔에서 경련이 느껴질 정도였다. 기우는 작업장 한편에 마련된 냉장고 문을 열어 핫식스 한 캔을 꺼내 마셨다. 카페인이 몸에 들어오자 머리가 지끈거리고 심장이 쿵쾅 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힘들어?"
기우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이훈이 서있었다. 그는 기우보다 3살이 많은 1조 소속의 남자였다. 이훈은 제과 공장에서 고등학생 때부터 일을 해오고 있었다. 키가 크고 훈훈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공장에서 일하는 많은 누나들의 관심을, 일을 잘하고 일머리가 좋아서 형들에게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다. 기우도 그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다른 조였기에 인사만 하는 것이 전부였고, 그가 참석한 첫 회식땐 주말 특근으로 회식자리에 오지 못했었다. 이번 기회에 이훈과 친해지고 싶었던 기우였지만 철야로 인한 피로로 여유가 없었다.
"조금 피곤하네요."
"잠시 쉬고 와. 카페인 음료 같은 거 건강에 안 좋아."
"어차피 12시까지만 일하면 되니까 그냥 쭉 일할게요. 형들이나 누나가 쉬고 오세요."
기우가 핫식스를 쭉 마시고는 캔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훈이 기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듬직한데?"
"뭘요. 이 타임만 끝나면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요, 형."
"좋지."
이훈이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기우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과자박스를 쌓으며 그는 생각했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놀고 싶고, 여행하고 싶다.'라고. 기우가 전역하자마자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집은 넉넉하지 않았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빨리 네가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
어렸을 적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커온 기우였기에, 그는 또래의 사람들보다 일찍 철이 든 편이었다. 평소땐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거나, 몸이 안 좋아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거나 하고 싶어서 부모님께 이야기를 했을 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부모님의 표정이었다.
당혹스러움과 미안함이 담긴 모습이었다. 그의 부모, 특히 어머니는 안된다는 말을 최대한 돌려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기억이 나는 건 그가 초등학교 4학년때의 일이었다. 기우는 과학상자를 너무 가지고 싶었다. 그의 단짝 친구가 과학상자를 학교에 가지고 와서 그에게 자랑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걸로 자동차도 만들 수 있고, 비행기도 만들 수 있어. 모터를 넣으면 움직이기까지 한다니까?"
"움직이는 거 보여줘."
"모터는 잃어버릴까 봐 학교에 못 들고 왔어. 오늘 끝나고 우리 집에 갈래?"
"좋아."
그때 기우에겐 친구의 과학상자가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과학상자 안의 볼트와 넛트를 조여 무언가를 만드는 친구가 부러웠다. 학교가 끝나기를 그렇게 기다려본 적이 별로 없었다. 기우와 친구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친구의 집으로 달려가 과학상자를 가지고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설명서를 따라 조립하자, 그들이 만든 작은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덜덜 거리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우와."
기우가 감탄을 하자 친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아빠하고 자동차도 만들어봤어. 그건 진짜 바퀴가 굴러가.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진짜? 다음에 그것도 만들어보자."
"그건 어려워서 우리는 못 만들 거야. 그거 들었어? 학교에서 과학상자 대회를 한대. 우리 같이 나가자."
"난 과학상자가 없는데."
"사달라고 하면 되지. 너랑 나랑 나가서 학교대표가 되는 거야. 그러면 전국에서 하는 대회도 나갈 수 있을걸?"
그 말에 기우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곱씹어본 후, 그의 부모님이 기우에게 과학상자를 사주실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대표라는 말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학교 대표가 되고 전국대회에도 나갈 수 있다고 하면 엄마가 과학상자를 사주지 않을까?'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때 친구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고, 친구의 어머니가 앞치마를 두른 채로 방문을 열었다.
"이제 정리하고 밥 먹을 준비하자. 기우도 집에 가야지, 어머님이 기다리시겠다."
친구의 어머니의 말씀에 기우는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온 기우는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어."라며 어머니에게 한 소리를 들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자신만의 과학상자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드는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항상 야근으로 집에 늦게 들어왔기에, 저녁은 기우, 그의 동생, 그리고 어머니 셋이서 주로 먹곤 했다. 3일째 먹고 있는 된장찌개에 저녁을 먹으며 기우는 용기를 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나 과학상자가 가지고 싶은데. 사주면 안 돼?"
"얼만데?"
"잘 몰라, 조만간 학교에서 과학상자 대회를 연대. 나 거기 나가고 싶어. 학교 대표로 뽑히면 전국 대회에도 나갈 수 있대."
"아빠랑 이야기해볼게."
그렇게 말하며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