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있으세요?"
"아니요, 전 연애를 포기했는데요."
어딘가 이상한 대화다. 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그 이유에 대해선 대부분 아직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거나, 바빠서 누군가에게 집중할 시간이 없다고 답하곤 하니까. 즉 대다수의 사람은 마음속으로 언젠가 다가올 로맨스를 그리긴 한다. 하지만 난 연애 자체를 원하지 않고, 관련된 모든 사항에 신경을 끈다는 게 남들과의 큰 차이다. 구체적으론 이렇게 산다.
- 로맨스 작품을 감상하지 않는다.
- 누군가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하면 고민도 않고 거절한다.
- 길거리에서 연락처를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마찬가지로 바로 거절한다.
- 친한 사람이 좋아한다고 마음을 표현하면 불편해서 관계를 끊는다.
즉 연애와 관련된 모든 것에 일체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내겐 청혼을 운운하는 애인이 있었는데, 그와 헤어진 뒤로 연애 자체를 꺼리게 됐다. 잠시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만나는 동안 대체로 좋은 연인이었던 그 사람. 그는 일상에서 좀처럼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반듯한 사람처럼 보였다. 일이 지겹다고 했지만 늘 일상에서 주어진 걸 성실히 수행했다. 전공을 살려 중소기업에 취직했고, 4년을 일한 뒤 차근차근 준비해 규모가 더 큰 회사로 이직했다. 가족들에겐 맏아들로서 나름대로 충실했고, 주말엔 자기 계발을 위한 건설적인 모임을 다녔다. 대화를 나누며 느껴지는 그의 내면도 별다른 파동 없이 안정돼 보였다. 난 그런 편안함을 주는 모습이 좋았다.
그는 종종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는 헌신적인 애인이기도 했다. 한 번은 혼자 호텔에 있는 내가 아침을 먹으러 나가기 귀찮다고 하자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뺑오쇼콜라와 뜨거운 커피를 사들고 찾아왔다. 어느 날은 면접이 끝난 뒤 피곤했을 텐데 레지던스를 빌려 혼자 파티를 준비해 놓은 적도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좋은 곳에 많이 데려가 주지 못해 미안해서 기분을 내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못난 글씨로 쓴 손편지까지 함께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태블릿을 보다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연동된 카카오톡을 켰다. 그 속엔 내가 모르던 그의 모습이 있었다. 일반인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자료를 공유받은 것, 지인들에게 일관적으로 나의 존재를 숨기고 다른 여자를 소개받으려고 했다는 것, 여자를 만나기 위해 새로운 모임에 가입했다는 것, 새로 이직한 회사에 여자가 너무 없다는 불만을 토로한 것, 한 번도 언급한 적 없던 여자 지인들까지 그의 다른 세계는 온갖 '여자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제 다 관두자는 나의 말에 그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욕심이 많았다며, 상처 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을 뿐이었다.
떠나간 그의 모습을 두고 혼란스러웠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찬찬히 떠올려 보니 그동안 그가 했던 말들은 단지 내가 좋아할 만한 그의 모습을 꾸며낸 것 같았다. 독서를 좋아해 한때 출판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는 등 사소한 취향까지도 말이다. 그럼 왜 그렇게 오랜 시간 가면을 써가며 내 옆에서 든든하고 좋은 남자친구 역할을 수행한 걸까. 솔직하지 않은 누군가의 속 사정은 알 길이 없어 쉽게 갈피를 잡지 못했고, 인격적 존재가 아닌 단순한 오락거리로 취급당한 것 같아 헤어진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헛헛했다.
그런데 이처럼 사귀며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건 사실 별일이 아니었다. 아예 직업이나 사는 집처럼 신원부터 속이거나 금전적 사기로까지 이어지면 모를까. "살면서 너나 연인이 연애 중 바람피운 적 있어?"라고 물으면 주위에서 유사한 경험을 꽤 들을 수 있었다. 몰래 클럽에 가서 낯선 이성과 스킨십을 했다거나, 환승 이별을 하기 위해 틈틈이 소개팅을 한 경험 등 저마다 사연이 존재했고, 듣다 보면 한눈팔지 않고 한 사람에게 헌신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고 귀한 것 같았다.
로맨스를 다룬 작품 속에선 흔히 이별이 더 행복한 사랑으로 이어지곤 한다. 사랑의 상처를 품고 살아가던 여자 주인공은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 방어적인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그런 모습까지 보듬어 주는 '진국'인 남자를 만나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러한 스토리의 영향일까, 이별 후 많은 이들이 '똥차 가고 벤츠 온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더 멋진 누군가를 기다린다. 언젠가는 진짜 사랑을 꽃피울 거란 기대를 놓지 않으며.
하지만 연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흔한 사연임에 미뤄 짐작건대, 누군가를 만나 마침내 '행복하고 환상적인 일상'이 도래할 거라고 여기는 건 사이비 종교에 가깝다. 연애란 뭘까?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추억을 만들고, 그의 내면을 보다 깊숙이 알아가고, 그 과정서 부딪쳐 마음속 거스러미가 돋아나기도 했다가 더 가까워지기도, 실망해 멀어지기도 하는 과정. 단지 이게 전부가 아닌가? 사실 내겐 직업 생활이나 여행처럼 삶에서 애착 관계를 맺는 다른 대상과 큰 차이가 없게 느껴졌다. 그런데 혼자 결정을 내리고 추진하는 게 아니라, 늘 누군가와 함께 조화를 맞춘다는 점에서 훨씬 더 번거로움이 따른다.
난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난 이제부터 연애를 하지 않으려고 해. 살면서 몇 번 해봤는데 그 고유한 가치를 잘 모르겠어서 포기했어. 결혼 생각도 없고, 좀 더 나이가 들면 들면 작게라도 내 사업을 시작해서 거기에 몰두하고 싶어. 그게 훨씬 재밌을 것 같아."
있는 그대로의 내 생각을 받아들여주고, 존중해 주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만난다. 그들은 흔히 이런 말을 건네곤 한다. "너도 언젠가는 나처럼 꼭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꼭 이런 애들이 가장 먼저 결혼하더라"
듣고 보니 의아했다. 왜 유독 연애에 관해서만 이런 막말이 통용되는 걸까? 여행 가길 원하지 않는다는 사람에게 "넌 반드시 세계 여행을 가게 될 거야"라고 답하는 게 정상적인 대화 패턴인가? 욕망하지 않는데 어쩌라고요. 이처럼 연애를 포기하자 예전엔 그럴 수 있다고 넘겼던 것들이 모두 이상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호감이 있다며 연락처를 물어본 남자들이 있었다. 강의실에서, 기숙사에서, 일터에서 말이다. 나는 대체로 싫다고 거절했고, 불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 번째는 세상엔 여성을 단순히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아서다. 두 번째는 앞으로 한 공간에서 계속 마주칠 공산이 커 불편한 상황이 그려져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네가 진짜 맘에 들어서 그런 게 아니겠냐며, 싫다고 딱 잘라 말한 게 너무한다는 반응이 잇따르기도 한다. 난 궁금했다. 관심 있는 마음이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도 못할까. 그냥 성적 이끌림일 뿐이고, 나를 잘 모르는데 다가온 걸로 봐선 다른 이성에게도 충분히 비슷한 감정을 느낄텐데 뭐가 그리 특별하다고 그 마음까지 신경 써야 할까. 이게 다 영화,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로맨스의 환상을 주입시킨 탓이 아닌가. 누군가는 "대시를 받으면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냐"며 좋은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싫은 건 여전히 싫었다. 남들의 시선이 주는 자존감은 일시적이고, 건강하지도 않다고 느껴서 딱히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또 예전에 직장 동료와 길을 가며 잠시 얘기를 나눈 적 있었다. 싱글이냐는 질문에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답하자 그는 갑자기 날 위로했다. "괜찮아요. 진표 씨는 아직 젊고 예쁘잖아요. 남들 다 애인이 있다고 해서 억지로 만들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요." 당황스러웠다. 혼자인 게 편하고 좋은데 졸지의 동정의 대상이 됐단 걸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세상이 많이 바뀐 줄 알았으나 반드시 적당한 시기에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걸 안타까워하며 주제넘은 충고를 건네는 사람이 있구나. 체감 상 세상 속 연애에 대한 관심은 늘 뜨겁다. 본인만의 열정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건 우스운 꼴이다.
전 서른이고, 연애를 포기했는데요.
"나도 이제 연애를 안 하려고 해."라고 답하는 이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그래야 사회 속 연애 강박의 농도가 보다 연해질 것 같아서.
몇년 전 쓴 비슷한 글.
https://brunch.co.kr/@yaegeee/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