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새로운 도전을 여러 차례 했다. 사실 틀을 깨는 건 행복하기보단 괴로웠다. 2021년 했던 도전 중 인상 깊었던 건 '내 이름으로 뉴스레터 발행하기'다. 한 미디어 콘텐츠 회사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매주 시사 이슈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5000자 정도의 글을 썼다. 얽힌 이해관계를 추론하고, 앞으로 흘러갈 방향을 전망하는 건 직무 경험이 현저히 부족했던 내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툴을 쓰며 디자인을 포함한 편집까지 모두 마쳐야 해 부담이 가중됐다. 당연히 처음부터 능숙할 리 없었고, 마감까지 시간이 부족해 허덕이기 일쑤였다.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며 생각했다. 나 왜 이렇게 못하지? 만약 내가 평소 뉴스를 심도 있게 분석하는 습관이 있었다면 좀 달랐을까. 혹은 신문방송학과나 언론정보학과를 나왔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까. 함께 일한 선배는 업무 처리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었다. 다년간의 기자 생활을 거쳤고, 각종 지식이 풍부했으며 뉴스를 보는 것 자체를 즐겼다. 비단 선배뿐만이 아니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많았다. 교육 정책, 부동산 시장, 급변하는 트렌드 등에 대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턱턱 짚어냈다. 자신감이 떨어지던 차, 구독자 한 명이 내가 쓴 뉴스를 읽고 '이 정도 분석밖에 하지 못하다니 실망스럽다'라고 피드백을 보낸 적 있었다. 의욕은 말할 것도 없이 곤두박질쳤다.
잠들기 전 생각했다. 나는 아무래도 시사 에디터 자격이 없다. 하고 싶어서 도전했는데 이것밖에 못 하는구나. 그리고 질문했다. 과연 어떤 사람이 시사 에디터로 일하는 걸까?
1.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
2. 나보다 종합적·분석적 사고가 뛰어난 사람
3. 나보다 뉴스를 좋아하는 사람
4. 나보다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
숙고 끝에 내가 내린 답은 1~4번이 모두 아니었다. 바로 '하고 싶고, 기회가 주어진 사람'이었다. 생각해 보면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책을 쓰는 사람, 가게를 내는 사람, 강의를 하는 사람 모두 하고 싶고, 기회를 얻어 임하게 될 뿐이다. 어떠한 자질이나 성향이 그 과업 자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굳이 도전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달리 말하면 하고 싶고, 기회를 얻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주위를 기웃거리며 비교할 필요 없이 그냥 계속하면 된다. 다른 이들을 바라보거나, 더욱 뛰어난 능력을 가진 가상의 자신을 상상하며 작아질 필요가 없다. 새로운 걸 시작할 때만큼 성장 가능성이 클 때도 없다. 불안함은 그 순간을 미처 즐기지 못하게 만든다.
올해는 에디터로 일하던 채널의 관리 업무도 겸하게 됐고, 출판도 마무리를 지을 예정이다. 이젠 스스로 부족하단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보단 훌쩍 넓어질 나의 영역을 상상하려 한다. 뭐든 남들보다 느린 나는 서른이 돼서야 즐겁게 일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