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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Mar 05. 2022

난 남자들의 '호감 공격'이 싫다

호감 공격

성적인 호감이 있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선을 존중하지 않은 채 다가오거나,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연락을 하는 행위 등을 통해 불쾌함을 주는 것.
―내가 만듦.


이는 꼭 남자가 여자에게 끼치는 피해는 아니다. 하지만 여자인 나의 관점에서 쓰는 이야기이므로 당연히 한쪽으로 치우침을 감안하길 바란다.





전세를 구하는 기간 동안 지낼 공간이 필요해 에어비앤비에서 방을 하나 빌렸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필요한 가구와 생필품이 모두 있어 단기 월세를 찾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내가 고른 곳은 서울의 주택을 쉐어하우스처럼 개조한 곳이었고, 여러 사람이 함께 살지만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무엇보다 여길 고른 주된 이유는 방에 있는 큰 책상이었다. 일하기 좋은 큰 책상이 있는 곳이 그렇게 많지 않아 더 고민을 하지 않았고, 'for women'이란 설명을 언뜻 봐서 여성전용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이사를 왔다.


그런데 짐을 옮기고 나니 여성전용이 아니었다. 다시 설명을 읽으니 건물의 특정 층만 여성전용이고, 내가 머무는 층은 남녀공용 공간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할 수도 있겠으나, 조용하고 지내기 좋았다는 여자분들의 리뷰가 많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방은 혼자 쓰고 부엌은 공유하는 형태다. 몇 번 왔다 갔다 할 때마다 한 남자분을 마주쳤는데 먼저 인사를 하셔서 가볍게 몇 마디를 나누게 됐다. 하루는 그분께서 우물쭈물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키보드를 시끄럽게 치는데... 카카오톡 아이디 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이해가 안 됐던 나는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키보드를 시끄럽게 치는 것 같아서 혹시 그때마다 주의를 주실 수 있나요? 카카오톡 아이디 좀 알려주세요."

"아, 하나도 안 들려요. 괜찮아요."

뒤돌아서며 생각했다. '혹시 나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며칠 뒤, 방문을 여니 방에 편지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다.


'2호 여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5호 남자입니다. 호감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남깁니다. 전 오늘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데 우리 나중에 밖에서 밥 한 끼 어때요?'


맨 끝엔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2호 여자라니. 마치 종영된 <짝>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표현이 웃겼다. 또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말도 없이 내 방에 들어온 게 불쾌했다. '싫어, 이 자식아.'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편지를 내려놨다. 그날 그분은 짐을 빼고 나가셨고, 이젠 볼 일이 없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동안 평화롭게 잘 지냈다.


옆방엔 다른 외국인 남자가 살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그도 그렇고 주로 방에서 뭔가를 하느라 바빠서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래도 인기척 때문에 그의 하루를 대충 파악했는데, 보통의 직장인처럼 주로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들어왔다. 또 부엌에서 자주 요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그를 마주쳐 잠깐 영어로 얘기를 나눴다. 이집트 사람이고, 서울에서 해외 영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외 가볍게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 나한테 운동을 하냐고 물었다. 요즘은 좀 피곤해서 안 하고 있다고 하자 그가 말했다. "네가 피곤한 건 평소 먹는 음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야." 공용 냉장고 안 내 자리에 빵과 샌드위치, 요거트만 가득한 걸 보고 추측한 듯했다. 살짝 민망해 웃었고, 친구 하자는 그의 말에 우린 연락처를 교환했다.


며칠 뒤 그가 마트에서 초밥을 사 왔으니 같이 먹자고 했다. 고마워하며 먹는데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더니 의아하단 표정으로 물었다. "왜 없어? 이렇게 예쁜데..."


난 연애를 안 하는 걸 개인의 취향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물어보는 게 불편하다. 하지만 별생각 없이 한 말 같아 내색하지 않은 채 "난 연애에 신경 쓰는 게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라고 답했다. 그리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얘 혹시 나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


다음 날, 친구를 만나고 돌아왔는데 같이 방에서 영화를 보며 술을 먹자고 했다. 피곤하다고 했더니 "그럼 나 나갈 건데 포옹으로 인사해 주면 안 돼?"라고 물었다. 장난치지 말라고 한 뒤 방으로 들어왔는데 짜증이 확 났다. 계속 같은 공간에서 마주칠 텐데 화를 내면 더 불편해질 것 같아 고민스러웠다.


그다음 날, 저녁을 먹었냐는 그의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바로 전화가 와서 받지 않았다. 그가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왜 전화 안 받아? 요리했는데 같이 먹자." 일하느라 바쁘다고 거절했다. "부담스러우니 나랑 자꾸 시간 보내려고 하지 마."라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참았다. 그 후 어색해서 피해야 할 상황까지 감당해야 할 터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가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관리 매니저분께 말씀드리자 다행히 여성전용 층에 빈 방이 있다며, 옮기도록 도와주셨다.




연애를 할 생각이 없는 나는 이처럼 낯선 남자가 호감을 표하는 상황이 꺼려지기만 한다. 특히 내 의사를 살피지 않고 무작정 다가오는 경우엔 '공격'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내 생각을 털어놓으면 공감해 주는 이들이 많지만, 쓸데없는 조언을 듣는 경우도 있다. 직접 들은 우스운 헛소리 몇 가지를 소개한다.


"인기가 많은 건 좋은 건데, 뭐. 그냥 즐겨."


고기 뷔페에 채식주의자를 데려가 놓고 즐기라고 하면 과연 즐거워할까. 관심이 없는데 어쩌라고요...


"남자들이 많이 다가오는 건 그만큼 네 가치가 높다는 거야."


이 말을 해준 사람은 덧붙였다. 어떤 일본 드라마가 있는데, 여자들이 자신들이 받는 외모 평가에 맞게 세금을 내는 이야기라고 했다. 높은 평가를 받은 여자는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데 겉으론 싫은 척하면서도 속으론 뿌듯해하고, 주위 사람들도 그 여자의 가치를 높게 인정한다는 것이다. 성적 매력도 이와 마찬가지니, 자기계발하듯 더 가꾸라고 조언했다.


자기계발을 하는 건 나 자신에게 이로움을 주는 가치를 갖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정작 지금의 난 감흥이 없고, 되레 불쾌함을 느끼고, 주말에 번거롭게 짐을 옮기느라 고생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그냥 가볍게 데이트해 봐. 여자는 남자를 많이 만나봐야 한댔어."


어떤 일을    이를 통해  원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남자를 많이 만나본 여자는 자신에게  맞는 남자를 고를 확률이 높아지고, 현명한 결혼을  것이다.  이를 원하지 않는데  가볍게 데이트를 해야 할까.


난 호감 공격이 싫어. 관심 있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상대 입장이 어떨지 충분히 고려해야지. 본인 마음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함부로 선을 넘지?

"나도 싫어."라고 표현하는 이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그래야 좋아한다는 마음을 무기로 들이대는 이들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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