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표 Apr 02. 2022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나의 인간 관계는 조금 특이하다. 평범한 이들은 대체로 중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 시절 알게 된 친구 무리, 회사에서 어울리는 동료 무리 등이 인간관계의 중심을 이루는데 반해 난 그냥 여기저기서 알게 된 사람들을 가끔 만날 뿐이다. 난 사람들 몇몇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우리'라 끈끈하게 묶으며 관계를 오래 잇는 형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알게 되는 경로는 다양하다. 여행하다 만난 사람과 한동안 연락하기도 하고, 독서 모임에 나가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사귀거나, SNS로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실제로 만남을 갖기도 한다. 난 이들을 모두 통틀어 '친구'라 부르는데, 나이는 나보다 5살 아래, 6살 위까지 무리 없이 어울리게 된다. 주요한 특징이라면 나와 공통적으로 모두 느슨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느슨한 관계는 함부로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연락하지 않으며, 인생에 중요한 일이 생겨도 굳이 알리지 않아도 괜찮다. 살다가 서로가 궁금해질 때쯤이면 SNS를 통해 소식을 확인하고, 만나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재밌게 놀다가 헤어진다. 자연스럽게 멀어지거나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려니 받아들인다.


그냥 이게 전부다. 희한하게도 이렇게 일대일로 만나는 사람들이 늘 10명에서 20명 정도 있다.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누군가를 만나는 게 일상에서 갖는 만남의 전부며,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을 때도 끊임없이 나와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하기에 결코 외롭지 않다.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한때는 깊고 끈끈한 관계를 갈망한 적도 있었다.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거의 모든 일상을 공유하고,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를 깊숙이 이해하는 가족, 연인, 친구 같은 존재 말이다. 모두들 저게 행복하고 이상적인 관계의 원형이라고 외쳤기 때문에 나도 두어 개쯤은 가져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인생의 단단한 뿌리가 생겨 흔들리는 나를 지탱해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작 난 저런 관계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갔고, 염증을 느꼈다.


깊은 관계는 수시로 영양분을 공급해 줘야 한다. 상대의 기분을 자주 살펴야 하고, 인생에 중요한 일이 생기면 알려야 하고, 어느 정도 기대에 부응해야 하며 꾸준히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 깊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이 모든 짐이 번거롭다. 그 대가로 얻는 기쁨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흔히 깊은 관계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선을 넘기 때문이다. 쉽게 평가하고, 충고하고, 상대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이 내내 감정을 호소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친했던 시간이 있는데 이 정도는 이해해 줄 거라고 자연스레 넘겨짚는다. 실망한 상대가 이젠 그만 보자고 말하면 그래도 가족인데, 연인인데, 친구인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관계를 끊을 수 있냐고 되묻는다.


물론 나도 저렇게 깊은 관계 속 누군가에게 맹목적으로 나를 받아주길 바라며 기댄 적 있었다. 물론 깊은 관계가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그건 성숙한 이들이 만나 맺는 소수의 관계에서만 나타날 뿐, 대부분은 되레 퇴행시키는 게 아닐까. 경험상 성장에 훨씬 중요한 건 깊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보다 유해한 사람을 얼른 끊어내는 것이다.


깊은 관계가 거추장스럽단 생각에 나와 연인이 되고 싶다는 남자에게 말했다.


"지금처럼 가끔 만나서 시간을 보낼 순 있지만 연애를 하고 싶진 않아. 너의 깊숙한 면을 알아가고 싶지 않고, 큰 영향을 받고 싶지 않고, 책임지고 싶지 않거든."


뱉어놓고 보니 색다르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보통 로맨스 작품에서 깊고 친밀한 관계를 꺼리는 쪽은 남자며, 여자는 대체로 그러한 관계를 더 원하는 쪽으로 그려진다. 혹시나 이 사람이 나와 사귀지 않거나, 결혼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면 어떡할지 전전긍긍하며. 주위를 둘러봐도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내 말을 들은 상대는 벙찐 듯 답했다.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자와 함께해야 해. 난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너 그러다가 나중에 외롭지 않겠어?"


왜 싫다는 걸 강권하는가. '여자는 ~해야 한다'는 말의 대부분은 근거 없는 헛소리며, 지금 보내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미래가 될 뿐이다. 외롭지 않은데 미래에 혹시나 다가올 외로움을 걱정해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얼마든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돈을 벌거나, 여행을 가거나, 하고 싶었지만 망설이던 것에 도전하는 것처럼. 난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과는 가끔 만나는 것도 어렵겠다고.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느슨하게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 정도면 충분하며, 내가 나로 살고 있다면 깊은 관계 같은 건 인생에서 없어도 괜찮다. 서른이 되자 든 생각이다.



5   비슷한 .

https://brunch.co.kr/@yaegeee/178


작가의 이전글 난 남자들의 '호감 공격'이 싫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