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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May 07. 2022

살아가며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단어를 곰곰이 곱씹어 본다. 작가 홍인혜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투신'인데, 좋아하는 건 나를 지키며 상대를 애호하는 일이지만 사랑하는 건 나를 허물며 상대에게 무너지는 일이라고.


이 정의에 따르면 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주관이 유독 뚜렷해서일까, 타인으로 인해 내 안의 선들을 지우고 싶지 않다. 우선 대부분의 협업이 시너지가 나기보단 한쪽의 분노를 유발하듯 누군가와 조화를 맞추는 과정은 힘들다. 또 다른 이를 만나 아무리 가까워지길 염원해도 결국 각각 다른 두 명의 사람일 뿐, 합일을 이룰 수 없는데 선들을 애써 흐릿하게 만드는 게 인생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옆에 누가 밀착해도 인간은 실존적 외로움을 해소할 수 없다. 그냥 각자 외로움과 잘 지내는 법을 배운 채 멀리 떨어져 살아가면 안 될까.


과거에도 난 유독 사랑에 서툴렀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더라도 내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더 이상 그에게 몰입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일례로 예전에 잠깐 만났던 연인은 사소한 걸로 마음이 상할 때마다 툭툭 거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문제는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면 몇 번씩 "아니야, 괜찮아"만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짜증 나는지는 직접 겪어봐야 안다. 난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참은 채 그의 투정을 받아주며 합의점을 찾고, 다음부턴 이런 식으로 감정을 풀지 말라고 부탁했으나 원래 사람의 습관이란 잘 고쳐지지 않기 마련이다. 또 비슷한 투정이 반복되자 난 자리를 뜨기로 결심하며 말했다.


"넌 대화로 네 상황과 감정을 설명하는 능력이 없어. 그리고 난 네 능력을 길러주는 데 내 인생을 쓰고 싶지 않아."


그리고 더 이상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미친 듯이 웃으며 내게 물었다. "아니, 누가 연인한테 그렇게 말하냐고." 난 얼굴을 감싸 쥔 채 말했다. "사랑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거랬는데 난 이해가 안 되면 사랑할 수 없어..." 이처럼 불편한 감정이 치솟아 누군가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한 적이 꽤 많았고, 이는 내가 '사랑 불능자'란 걸 말해주는 듯했다. 남들은 모두 관계에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게 해주는 유대감 같은 걸 품고 사는 것 같다. 왜일까, 안타깝게도 내 안엔 그게 없다.


심리 서적에선 흔히 나 같은 사람의 문제는 어릴 적 가정에서 건강한 유대감을 경험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으며, 마음을 연 뒤 진짜 사랑으로 나아가라고 조언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왜 누구나 반드시 사랑을 지향해야 할까? 식물 중에서도 밀폐형 테라리움 안에 물, 이끼, 모래처럼 기본적인 조건만 갖추면 스스로 잘 자라는 종류가 있다. 애정이랍시고 하루 두 번씩 빠지지 않고 물을 준다면 이는 되레 식물을 상하게 만든다. 중요한 건 타고난 기질을 존중하는 것이며, 특정 조건이 아무리 다수에게 좋더라도 어떤 식물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 사람도 이와 같아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그토록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랑이라고 해도 말이다.


어떤 이는 "진짜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다를 것이다"라고 말하겠지만, 상대가 아무리 성숙하고 좋은 사람이어도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밀착해 관계를 이루는 건 불편한 지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언젠가는 딱 맞는 '반쪽'을 만날 거란 허황된 믿음으로 잘 못하는 걸 하고 싶지 않다.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 계속 시도하는 건 끈기있는 게 아니라 일종의 정신병 증상이 아닐까.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원하지 않으며, 사람이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 살아가는 거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을 채운  단단한 좋아함이다. 책과 음악을 좋아하고, 감각적으로 꾸며진 공간을 좋아하며, 일을 좋아하고, 가끔 만나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들을 좋아한다. 굳이  자신을 허물지 않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좋아하며 사는  요즘 나의 유일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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