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NS에 쓴 글을 읽다 보면 어렵지 않게 나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해서 고등학교를 그만뒀다는 것, 불행한 가정환경 속에서 컸다는 것, 그 여파인지 인간관계서도 어려움을 겪고 회사도 잘 다니지 못했다는 것 같은 이야기 말이다. 실명으로 얼굴 사진을 올려두고 SNS를 하는 나는 어쩌면 약점이 될 만한 요소를 공공연히 밝히는 바보인지도 모르겠다.
종종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개인적인 내용을 공개적으로 쓸 수 있냐며, 용감하다는 말을 듣지만 난 딱히 용감한 게 아니다. 용감하다는 건 어떤 것이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을 내디딜 때 쓰는 표현인데, 그다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서다.
예전에 우연히 나간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건넨 적 있었다. "만약 사귀는 사람이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다면 괜찮겠냐"고. 난 "물론 죄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참회한 뒤 나에게 솔직히 말해준다면 괜찮다. 더 이상 그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때 비로소 숨기지 않고 먼저 얘기할 수 있는 거니까."라고 답했다.
인생에서 똑같은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이를 긍정할 수 있는 사람과 숨기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 고통을 비로소 가치 있는 경험으로 치환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아픔이 끝났을 때고, 누군가에게 알려도 부끄럽지 않은 결말로 매듭이 지어졌을 때다. 그 순간 안 좋은 경험은 약점이 아닌 오히려 삶의 훈장이 된다. 이를 드러내는 건 내게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마치 잘 나온 사진처럼.
누군가는 내 글에서 읽히는 나를 보고 불편함을 느끼고, 나를 안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한 친구는 사람들이 혹시나 부정적으로 평가할까 봐 개인적인 이야기를 온라인에 전혀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난 그런 생각을 잘 하지 않는데, 그건 다른 이들을 배심원석에, 나를 피고인석에 앉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난 심판대에 오르지 않았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도 상관없다. 남들의 생각은 내가 간섭할 수 없으며, 노력으로 좌우할 수 없으니 신경을 끈다. 그래서 늘 쓰고 싶은 걸 쓴다. 쓰다 보면 늘 더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