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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Jul 02. 2022

회사에서 울다가 퇴사를 질러본 적 있나요?

예전에 써둔 걸 지웠다가 수정해 다시 올린다. 부끄러운 흑역사였는데 어느 순간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서.




난 놀랍게도 시사에 대한 이해가 매우 얕은 상태에서 시사 에디터로 일을 시작했다. 글을 써서 돈을 번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고, 당시 난 좋아서 취미로 하던 일이 업이 된다는 것에 잔뜩 고무됐었다. 젊음의 패기란 대단해서 작은 성취에 금방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마련이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있을 것 같았다.


팀원들은 나보다 모두 다섯 살 이상 많은 남자들이었고, 글을 쓰는 것에 잔뼈가 굵었다. 나의 자신감은 팀에 합류한 뒤 일주일이 지나자 사라져 버렸다. 가끔 그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듣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내뱉었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가 무척 부끄러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가 식견이 부족하단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래도 맘이 편치 않았고,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첫 마감을 할 때의 일이다. 5천 자 정도 분량의 글이었을까. 시간에 맞게 여유 있게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수정 사항이 많다 보니 야근까지 해도 마무리할 수 없었다. 잘하고 싶어서 아침 일찍 출근하고, 식사도 거른 채 모니터 앞에 앉아있었는데 말이다! 문득 시계를 보니 막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깨달았다. 머리가 아프고, 힘이 없고, 마음은 조급한 상태에서 선배의 결재를 기다렸다.


선배는 말했다. "급하게 고치지 말고 수정 사항을 하나하나 이해해야 한다"고. 그리고 내가 놓친 부분을 꼼꼼히 설명했다. 가르침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던 나는 잠시 먼 산을 보며 혼잣말로 힘들다고 읊조렸다. 그런데 갑자기 힘든 걸 인정하니 눈물이 펑펑 났다.

선배는 무척 당황했다.

"아니, 왜 울어?"

대표님이 달려와서 물었다.

"왜 우는 거야?"

난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 힘든데 할 건 많고 전 못하잖아요."

둘은 일심동체가 된 듯 나를 위로했다.

"아니야, 너 엄청 잘해! 잘해서 깜짝 놀랐어."

난 이 상황이 너무 웃기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울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울려고 했던 건 아닌데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숨고 싶어요."

웃음을 참는 듯한 대표님은 얼른 택시 타고 집에 가라며 법인 카드를 쥐여줬다. 결국 내 일감은 선배들에게 돌아가서 빚진 마음이었다.



그 뒤에도 마감이 벅찬 건 마찬가지였다. 나름대로 고민해서 초고를 제출하면 날카로운 피드백이 잔뜩 돌아오고, 들어보면 또 맞는 말이라 수정을 안 할 수도 없었다. 겨우겨우 한 주의 마감을 마치고 나면 다음 주에도 비슷한 루틴이 반복될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한 지 3개월쯤 됐을까, 또 일이 밀려서 허덕이다가 눈물이 투둑 났다. 한동안 바빠서 못한 요가나 실컷 하고 싶었다.


대표님께 일이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며 퇴사 의사를 밝혔다. 대표님은 이번 주 마감까지만 잘 마무리해달라고 했다. 하기 싫었지만 책임이 있으니 차마 싫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집에 와 침대에 누워 속상한 마음으로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잘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으니 분한 마음이었다. 열패감에 마음이 헛헛해 다음 날 눈을 뜬 뒤에도 한참을 누워있다가 겨우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마지막 원고니 어떻게든 마무리만 하자는 마음으로.


그런데 마음이 가벼워져서일까? 갑자기 원고가 잘 써졌다. 예전엔 3일에 걸쳐서 겨우 끝내던 분량을 10시간 동안 꼼짝없이 앉아서 끝냈다. 집중력이 흐트러질까 봐 중간에 밥도 먹지 않은 채 글을 썼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고, 내 안에서 에너지가 마구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난 다음날 신나는 마음으로 초고를 제출했다. 대표님으로부터 그동안 수고했고 앞날을 응원한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왔다. 10분간 고민하다 답장을 보냈다.

"제가 갑자기 글이 잘 써지는데 퇴사는 없던 일로 하면 안 될까요?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자 대표님이 말했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일이 잘 되나 보네요. 그래요, 앞으로 잘해봅시다! 이번 원고 잘 나왔네요."


회의 시간, 선배가 물었다.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나는 쭈글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제가 갑자기 글이 잘 써져서...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려고... 죄송합니다."

무지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선배는 날 가만히 쳐다보더니 예상외의 말을 건넸다.

"자신의 틀을 깬다는 건 좋은 거야."

이건 내가 여태껏 회사에서 들어본 말 중 가장 멋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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