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이란 이른 나이에 결혼한 친구가 최근 이혼을 했다. 시댁과 종교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내린 힘든 결정이었다. 그동안 관계망 속에서 자신을 잃은 것 같다는 친구는 이젠 1인분의 오롯한 일상을 꾸려보겠다고 했으나, 동시에 지나간 인연에 대한 회한을 버리지 못했다. 자신의 미숙했던 행동을 아쉬워하며 이렇게 했다면, 저렇게 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과거를 곱씹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난 바나나 향 콘돔 한 박스를 선물하며 말했다.
"내가 과연 올바른 결정을 했나 반추하게 되지? 모든 마무리는 그렇더라고. 근데 내 생각에 뭔가를 포기하는 건 좋은 거야. 넌 관계망 속에서 고통스러워서 더 나은 인생을 만들고자 그만두기로 결정한 거잖아.
시간이 흐르면 헤어진 남편을 다시 만나고 싶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지금 네가 내린 결정이, 이 텅 빈 시간이 무의미한 건 아닌 것 같아. 어떠한 선택지를 과감히 놓아버려야 그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거든. 우선 갑자기 생긴 인생의 여백을 즐거운 것들로 채워봐."
친구는 울면서 말했다. 가족들은 하나같이 "그래도 이혼까지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며 다 망가진 관계를 열심히 고쳐보라고 설득했고, 그래서 자신의 결정에 확신이 없었다고. 한동안 실컷 놀면서 콘돔 한 박스를 다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난 박수를 쳤다.
사람들은 포기를 아쉬워하며 대부분 하던 걸 어떻게든 끌고 나갈 것을 조언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잘 보이는 데 급급한 것처럼 인생에서 불필요한 욕심을 부리는 바보들만 가진 것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진짜 욕망에 귀 기울이고, 인생을 소중한 것으로 채우려면 무엇보다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난 출판을 포기한다. 작년부터 집필하던 에세이 제목은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다>. 서점 유통 전 크라우드 펀딩 발송용까지 나왔으나 출판사와 뜻을 조율하기 어려웠고, 내 글이 맘에 들지 않는 옷을 입는 게 싫어서 계약을 해지했다.
친구는 물었다.
"진표야, 책 낸다면서 그거 어떻게 됐어?"
"하기 싫어서 하지 않기로 했어."
그러자 미친듯이 웃었다.
"너도 진짜 한결같다. 책 <빌린 돈은 갚지 마라>의 저자가 실제로 빌린 돈 안 갚고 사기 친 것 같아."
이 말을 듣고 나도 숨 가쁘게 웃었다.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책을 낸다면 실력 있는 출판사와 비용을 충분히 들여 스스로 꼭 맘에 드는 책을 내고 싶었다. 계약을 해지한 뒤 출간 기획서를 작성해 이름 있는 출판사 몇 군데에 투고했으나 진행이 어려웠다.
요즘 에세이 트렌드는 인기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가 집필한, 불편한 내용이 없는 '감성 에세이'다. 연봉 10억을 찍은 것도 아닌, 나처럼 성공하지 않은 여자가 말하는 '나다움'에 대해 세상은 관심이 없다. 소위 '사람빨'로 가기 힘들다면 '메타버스로 부수익 1천만 원 만들기?'처럼 후킹 요소가 선명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니까. 결국 상품성이 부족하고, 요즘같이 책 읽는 사람이 없는 시대에 판매 부수가 확보되지 않은 저자의 책을 공들여 만드는 출판사를 찾긴 어려웠다.
한동안 고민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출간하면 좋은 게 있지 않을까? 오랜 시간 생각한 결과 약소한 인세와 '출간 작가' 타이틀을 얻어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다는 점 정도가 떠올랐고, 이는 크게 쓸모가 없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언어를 통해 생각을 다듬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게 즐거워서였다. 또 내 글을 통해 나아갈 힘을 얻었다는 이들을 만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사실 이는 굳이 출간을 하지 않고도 할 수 있었다. 고민 끝에 작성한 원고 전문을 브런치에 올려 브런치 북을 만들기로 했고, 특이하게 이 글 <난 출판을 포기한다>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