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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Jul 24. 2022

20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방황한 10가지 경험

한 모임에서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종이를 보니 나처럼 20대에 열심히 방황한 사람은 흔치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저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방황한 사람이에요."라고 날 소개했다. 방황도 멋진 스펙이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남들보다 가진 이야기가 훨씬 풍부하니까.



한 7개의 직업을 거쳤다


진로 상담 시간, 친한 교수님이 "진표 씨는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 하세요. 그러다 나중에 유튜브 하면 좋을 것 같아."라고 하셨다. 집에 가며 교수님이 상담을 너무 대충 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른인 지금,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니 날 꿰뚫어 본 현명한 말씀이셨다. 그때그때 끌리는 일을 하다가 지금은 유튜브 채널을 관리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성격상 재미없고 지루한 일은 오래 못한다. 지금처럼 창작하는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이것도 여러 일을 거치다 보니 발견하게 된 열정이다. 글을 쓰는 일은 힘들어도 재밌어서 하게 된다. 계속 새로운 주제를 쓰며 책을 읽고,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게 좋아서.



퇴사 한 8번 했다


잠깐 세봤는데 하도 많아서 세기도 힘드네. 회사가 망한 것도 있고, 잘린 것도 있고, 스스로 떠난 것도 있다. 사는 지역을 계속 옮기다 보니 유독 변화가 잦기도 했다.


회사원의 중요한 자질은 주어진 틀에 자신을 꼭 맞추는 것이다. 눈치를 보며 너무 모자라지도, 뛰어나지도 않게 자신을 다듬고, 주위 사람들과 섞여야 하는데 난 그걸 잘 못했고, 노력해서 하더라도 불행해서 금방 포기했다. 다양한 조직에 들어가 봤으나 조직생활 자체에 잘 안 맞는 걸 깨달은 뒤엔 적성을 살려 프리랜서가 됐다.


예전에 아는 동생이 "언니, 친구들은 한 회사에 잘 다니는데 저는 너무 지겨워서 자꾸 다양한 일을 하고 싶어요. 제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상담한 적 있었다.


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 강의를 봤는데, 각 분야의 성공한 직업인들을 조사한 결과 한 우물만 판 게 아니라 다양한 일을 한 경우가 많았대.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 30대 중반부터 10년 동안 한 거지. 넌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이 될 건가 봐."

이직이 잦은 건 독이 된다고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6명의 상사를 중징계·해고에 이르게 했다


2년 동안 5명의 상사를 중징계·해고에 이르게 한 후기 (brunch.co.kr)


브런치에 써서 조회수 1만 나온 글. 당시엔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니 다 의미 있는 경험처럼 느껴지고, 딱히 마음속에 앙금이 남는 사람도 없다. 중징계·해고 처분을 받은 상사 분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상사를 따로 불러서 때려 봤다


 혼자 이슬람 국가에 가서 1  일했다. 재밌어 보여 무턱대고 뛰어들었지만 외국인동양인 여자가 살기엔 너무 어려운 환경이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느낄 때마다 회사에 매번 문제를 제기했는데 자꾸 비슷한 문제가 반복됐다. 상사가 조용히 좀 있으라길래 잠깐 나와보라고 한 뒤 두 대를 때렸다.(사실 한 대를 치자 기분이 좋아서 한 대 더 쳤다.) 전례가 없다 보니 회사에서도 놀라서 그냥 넘어가고, 내가 크게 화를 내자 상사 분이 오히려 미안하다고 몇 차례 사과했다. 띠동갑쯤 되는 남자분이었는데 잘 지내고 계실까.



한국을 포함해 5개의 나라에 살아봤다


성향과 안 맞는 점이 많았지만 20대엔 해외에 사는 게 좋았다. 코로나19 발발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어쨌든 마음이 다할 때까지 살아봤으니 미련이 없다. 살면서 뭐든 내가 원하는 만큼 해보고, 스스로 마침표를 찍는 게 중요한 것 같다.



7개의 문신을 했다


20대에 6개의 문신을 하고 느낀 것 (brunch.co.kr)


머릿속에 하고 싶은 도안이 구체적으로 떠오르면 바로 하러 간다. 다음엔 귀 뒤나 목에 하고 싶은데 아직은 뭘 할지 잘 모르겠다.



시험지에 교수님 강의에 대한 반박문을 썼다


중국에 있을 때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남존여비는 고유한 문화로써 시대가 변했지만 존중할 가치가 있다”는 주제의 강의를 하셔서 '교수님 말씀이 틀린 이유'란 주제로 답안지에 페미니즘에 관한 중국어 논설문을 써서 제출했다.


교수님이 어떠한 강의를 하건 관심 없이 학점만 잘 받으려는 학생도 많지만 난 별생각 없이 앉아서 시간만 때우는 게 싫었고,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계속 새로운 관점을 배워 생각을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



30명이 넘는 남자를 만나봤다


한 10개국이 되는 것 같은데 이름도 가물가물한 사람들이 많다. 상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상처를 너무 쉽게 준 터라 자랑스럽진 않은 경험이다. 혼자가 더 행복한 사람이란 걸 깨달아서 그런지 지금은 딱히 연애에 대한 관심이 없다.



교생 실습하다가 포기했다


교생 실습을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brunch.co.kr)

조회수 1만 6천 나온 글.


생각해 보면 중학교 때부터 늘 자퇴하고 싶었는데 교직 과정을 밟기로 한 것 자체가 현명한 결정이 아니었다. 성적이 좋았고, 주위에서 하라고 하니 했다. 돌이켜 보면 남들이 좋다고 해서 따라간 길은 후회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계속 관심을 갖고, 그들과 함께 성장했던 건 소중한 경험이었다.



출간 계약을 파기했다


다사다난한 경험을 다룬 에세이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다>를 썼다가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아서 계약을 파기했다. 내 글이 맘에 들지 않는 옷을 입는 게 싫었다.


예전엔 책을 써보고 싶었고, 책이 잘 나와야 한다는 욕심도 컸는데 지금은 꼭 뭔가를 이루지 않아도 행복하다. 다른 출판사에 투고해 볼 계획이었으나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이번 주 안에 결정해서 추진하려 한다.



한때 난 이렇게 열심히 방황한 내가 부끄러웠지만, 지금은 내게 주어진 일종의 특권인 것 같다. 머릿속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다 해봤고, 이를 통해 나를 알아가며 인생을 확장시킬 수 있었으니까. 내 안엔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새롭고 재미난 걸 보면 눈이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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