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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Nov 20. 2021

일곱 개의 문신

곧 일곱 번째 문신을 앞두고 있다. 원고를 마감하는 대로 오른쪽 팔에 만년필 그림을 하나 새길 예정이다. 5년 전쯤이던가, 등에 새긴 매화 그림을 시작으로 문신은 매년 조금씩 늘어 금방 6개가 됐다. 해외에서 만난 친구들을 통틀어 봐도 꽤 많은 편이라 사람들에게 독특한 인상을 주곤 한다. 


어쩌다 이렇게 많아졌지? 잠시 그 얘기를 해보려 한다. 대학생 때, 언니가 뱀과 사자 문신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 그걸 보니 나도 문신이 하고 싶어졌다. 몸 위에 원하는 그림을 새긴다는 건 나를 표현하는 확실한 액세서리 같았으니까. 그런데 취업 시 감점 요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망설여졌고, 고민 끝에 나중에 첫 직장을 잡으면 하기로 일단 미뤄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 들어가면 아마 이직을 고려하느라 감히 엄두를 못 내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계속 미래를 염두에 두면 당장 하고 싶은 건 영원히 못 할 것 같았다. 옷으로 가릴 수 있는 곳에 하자는 결정을 내린 뒤 5시간에 걸쳐 등에 매화를 새겼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서 쇄골, 허벅지에도 문신을 했다. 문신을 보였을 때 반응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몇 번 만났다. 학교 선생님들은 기함을 했다. 기업 면접에서도 지적받은 적 있었고, 결과는 탈락이었다. 앞으로는 문신을 꽁꽁 가려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한편으론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의 표현 방식일 뿐인 문신을 두고 누군가는 저토록 불편함을 표현하는 게. 수용하지 못하는 조직은 구성원의 개성을 존중하기보단 내부에 정형화된 틀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한 틀은 멋져 보였고, 한때는 거기에 잘 맞춰진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자유를 추구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유능하고 전문적인 사회인이 되고 싶었다. 자유분방하기보단 각 잡힌 이미지의 직업이 주로 좋은 일이라고 평가받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타협조차도 답답했다. 부조리하다고 느껴지는 조직 문화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았고, 이를 맞닥뜨릴 때마다 추구하는 가치를 표현하지 못하는 건 큰 스트레스였다. 남들은 다 무난하게 하는 듯한 직장 생활, 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닮아가고 싶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아서 괴로웠다. 자의로, 타의로 그만두고 나면 후련하면서도 고민스러웠다. 난 다른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사회 부적응자인 걸까? 회의감에도 불구하고 계속 문신을 한 건 행복을 위해서였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로 나를 채우고 싶어서.


귓바퀴, 종아리에도 문신을 했다. 그런 날 보고 40대인 아는 선생님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네가 살다가 나중에 어떤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지 몰라. 문신 때문에 기회가 제한되는 건 안타깝지 않니? 네가 평생 낮은 지위에도 만족한다면 상관없다만.”

당시엔 “저와 안 맞는 조직을 빨리 거를 수 있어 오히려 좋지 않을까요? 정 후회되면 그때 지우죠, 뭐.”라고 답하며 웃었지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난 정말로 내 인생의 발전을 막고 있는 걸까.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만약 누군가 같은 말을 건넨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시대가 빠르게 바뀌고 있어요. 하나의 조직에서 선형적인 커리어를 쌓는 게 일반적인 성장의 모습이었던 과거와 지금은 많이 다르죠. 미래는 더 크게 달라질 거예요. 그런데 본인 삶 속 진리가 남의 삶 속에서도 통용된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입니다.”라고.


비슷한 충고를 들은 경험이 떠오른다. 대학 원서를 쓰기 전 강남에 있는 한 학원 원장에게 컨설팅을 받았다. 그 원장은 검정고시를 보고 수능을 치러 대학까지 가려는 내가 기특했는지 자꾸만 개인적으로 연락해 물어보지도 않은 책 추천이나 인생 조언을 했다. 나중엔 수도권 컴퓨터공학과를 포기하고 지방대 철학과를 택한 나를 만류했다. 그 지방에 처박혀서 과연 어떤 성장의 기회를 얻을 것이며, 나중에 취업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소리였다. 철학을 배우고 싶다면 꼭 전공으로 택하지 않더라도 동아리나 복수 전공 등 기회가 많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난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아 철학과에서 정말 재밌게 공부했다. 130학점만 들으면 졸업인데 듣고 싶은 과목이 많아 170학점을 들었다. 돈 되는 기술을 익히진 못했지만 지적 쾌감을 느끼며 생각의 지도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만약 어른들의 말을 듣고 취업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원하지도 않는 학과에 갔다면 “자기 전공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라고 읊조리며 캠퍼스를 배회했을지 모른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인생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며 함부로 충고하게 되는 걸까? 우연히 보게 된 한 유명 강사의 유튜브 영상.  객석에 앉아있던 여자가 인생 상담을 청한다. 2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입퇴사를 숱하게 반복하며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상황에서,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건 '강의'라고 한다. 콘텐츠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그러자 이야기를 들은 강사가 답한다.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방황은 그만 접으세요. 한 분야에서 진득하게 버텨서 탑을 찍은 경험이 있어야 가치 있는 콘텐츠가 나오는 법이죠. 인생에서 그렇게 쉽게 포기한다면 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겠어요?”

영상 아래엔 ‘저 나이 먹고 아직까지 정착을 못한 게 한심하다’는 댓글이 달렸다.


난 그 영상을 보며 반대로 아무것도 안 버티고 사는 이야기가 더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기 싫은 건 죄다 때려치우는 사람. 독특하고 궁금하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내가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다. 사람 귀가 두 개인 이유는 반대편 귀로 듣기 싫은 말을 흘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서. 단순히 ‘열심히 버티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는 이제 좀 지겹지 않나? 


사회학자 오찬호는 말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때깔 좋은 포장지로 자신을 덮을 수밖에 없는 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의 팔자인지도 모른다고. 남들의 조언과 평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난 늘 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평생 함께할 사람, 가장 잘 보여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니까. 


여섯 번째 문신으로는 허벅지에 영화 <빅 피쉬>에 나온 대사 ‘The biggest fish gets that way by never being caught.’(가장 큰 물고기는 잡히지 않기에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를 새겼다. 얼른 일곱 번째 문신 도안을 정해야겠다. 



이 글의 소재들.

이 글을 쓰고 나서 한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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