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표 Dec 09. 2021

남들과의 비교가 쓸데없는 이유

네이버 웹툰 <아홉수 우리들>엔 중소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여자와 대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남자의 연애가 나온다. 둘은 스물아홉 동갑이고, 몇 년 전 파리 여행 중 처음 만났다. 베스트 댓글엔 “한국이었으면 스펙 차이가 너무 나서 애초에 만날 일도 없었을 것. 파리니까 인연이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저 의견에 공감한다는 뜻이겠지.


살짝 놀랐다. 다들 사람을 만날 때 자연스레 서로를 저울에 달아본 뒤 비교하는 거구나. 그럼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도 나보다 스펙이 부족하면 ‘아무래도 쟤보단 내가 아까우니 좀 더 고려해 보자’라고 여기는 게 일반적인 생각일까? 곧 30대를 앞둔 지금, 세속적인 가치에 따라 사람들을 재지 않는 나만 때론 성장이 뒤처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나라서 누릴 수 있는 자유도 있다. 바로 비교에서 좀 더 자유로워진다는 것. 스무 살,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할 무렵 좋은 대학에 다니던 친구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훨씬 행복하다. 나이를 하나둘씩 먹어가며 비교가 무용하단 걸 체감한 건 큰 수확이었다.


비교에서 오는 결과를 떠나, 비교 자체가 쓸데없다. 왜일까? 삶 속에서 이를 느꼈던 두 번의 깨달음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해외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해보려고 한참 구직 활동을 할 때의 일이다. 한 기업 면접에 참석하면서 자연스레 옆에 앉은 다른 지원자들의 스펙을 알게 됐다.


한 분은 스물다섯 살로, 서울교대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셨다. 다른 한 분은 호주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직무와 관련된 코스를 이수하신 데다, 해외여행도 지금까지 30여 개국을 다니셨다고 했다. 여기는 그저 그런 회사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살짝 압박감이 들었다. 어쨌든 면접을 무사히 마친 뒤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옆을 보니 함께 면접을 본 여성분이 계셨다. 같은 배를 탄 동지라는 기분이 들어서일까, 나도 모르게 커피 한 잔 어떻냐는 제안을 건넸다. 그분은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우린 두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이곳에 면접을 보러 오게 됐는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레 공감대를 형성하며 대화가 길어졌다. 그저 그런 대학을 졸업한 난 주위에 서울교대를 나왔을 정도로 공부를 잘한 사람이 별로 없다. 정작 내가 스물다섯 살일 땐 몰랐지만 저 나이 자체도 엄청난 스펙이 아닌가. 하지만 그분은 대화 내내 초조한 듯 손톱 근처 거스러미를 뜯고 있었다.


“저는 임용고시를 두 번 봤는데 둘 다 떨어졌어요. 솔직히 별로 교사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부모님 때문에 시험을 본 거예요. 더 이상 시험은 준비하고 싶지 않고, 무작정 면접을 보고 있는데 쌓아놓은 스펙도 없고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교직으로 가지 않는 이상 자신은 경쟁력이 없는 게 아니냐며, 자기보단 경영학과를 다니며 기업과 밀접한 스펙을 쌓아놓은 사람들이 취업에 훨씬 유리한 것 같다고 하셨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 면접을 봤다는 그분의 말에서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짙은 그늘을 느낄 수 있었다. 씁쓸했다. 속 사정을 들어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감당해야 하는 짐이 있구나. 난 나이와 학벌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저기서 좋은 스펙을 충족시킨 사람도 갖지 못한 걸 바탕으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고 있었다.



영화 <완벽한 타인>에선 가까운 사람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인물들의 치부가 조금씩 드러난다. 어릴 때부터 쭉 함께 해온 친한 친구들, 그리고 아내들까지 함께하는 부부 동반 식사 자리. 누군가가 재미로 제안한다. 우리 지금부터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오는 연락을 모조리 공개하자고.


다들 꺼림칙하지만 나서서 거절한다면 어디 켕기는 게 있냐는 소리를 들을까 봐 마지못해 끄덕거리고,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초조한 식사가 시작된다. 알고 보니 그중 누군가는 게이였고, 누군가는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좋은 집을 사서 부러움의 눈길을 받은 친구는 사실 어딘가에 투자를 했다가 재산이 가압류되기 직전이었다. 이처럼 비밀이 모두 드러난 뒤 바라본 친구들은 말 그대로 ‘완벽한 타인’이었다.


이 영화는 보여지는 모습과 진짜 모습 간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대놓고 밝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결코 드러낼 수 없는 나의 치부는 무엇인가. 모든 걸 속속들이 공개해도 가까운 사람들이 여전히 날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봐 줄 것인가.


몇 가지 조건만을 보고 ‘나보다 훨씬 많이 가졌다’고 단정 짓기엔 사람은 누구나 복잡다단한 존재다. 겪고 있는 상황을 모두 알 수 없는데 좋은 모습만을 보고 부러워하는 건 정말이지 쓸데없다. 인스타그램 속 누군가의 행복을 질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돌이켜보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을 때도 멋져 보이는 사진 몇 장쯤은 찍을 수 있지 않았는가.



두 번째로 얻은 깨달음은 제각기 삶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레이스 위에서 서로 경주하듯 살아가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바로 ‘구조적인 삶’과 ‘창조적인 삶’이다.


구조적인 삶은 매뉴얼에 맞게 차근차근 올라가는 계단식 삶이다. 학교 교육처럼 1학년을 마치면 2학년으로 올라가고, 2학년을 마친 뒤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것,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따서 대학교수가 되거나 사원, 대리 등 쭉 승진하며 커리어를 쌓는 것이 해당된다. 이 안에선 함께 계단을 올라가는 이들을 곁눈질하며 성과를 비교하는 게 가능하다. 시스템 안에서 성장하기에 안정적이고, 5~10년 뒤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져 불안하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 늘 계단식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니며, 저러한 삶이 꼭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내면의 다양한 욕망을 깨닫고 발현시키기 위해 창조적인 삶을 택하는 이들이 있다. 최근 함께 일했던 30대 후반의 대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진표 씨가 지금은 글을 쓰지만 5년 뒤엔 요가 강사처럼 전혀 다른 걸 할 수도 있겠죠. 친한 친구들의 20대 후반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다 제멋대로 살더라고요. 전 회사 다니다 나와서 창업을 했잖아요. 예전에 친구 중 한 명은 귀농해서 숙박 사업을 하고 싶다고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었거든요. 지금 걔가 친구들 중 돈을 가장 많이 벌고 있어요.”


꼭 학교나 회사 같은 시스템 안에서만 성장해야 하는 건 아니다. 정해진 가이드가 없더라도 원하는 삶을 직접 만들 수 있다. 이 땐 표준 모델이 없기 때문에 계획을 세워봤자 딱히 의미가 없고,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여정이 바뀐다.


예전보다 다양한 삶의 모델이 알려지고 있는 시대인 요즘, 나와 같은 젊은 여자의 사례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김예지 작가의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엔 청소부로 일하는 20대 여자의 이야기가 담겼다. 4년제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저자는 회사 생활이 잘 맞지 않았고, 인턴 후 원하는 회사에 취직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건물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남는 시간에 그림을 그려서 책을 만든다. 책 속에선 저자가 엄마와 이렇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는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창피하지 않아?”

“정정당당하게 돈 버는 일인데 뭐가 창피하니?”

“뭔가 사회에 적응 못하고 실패한 느낌이 들기도 해.”

“예지야. 삶은 어차피 다 달라. 너의 성향에 맞게 살아가는 것도 방식이야. 누군가는 회사 생활이 맞을지 몰라도 정말 안 맞는 사람들은 그럼 어떡하니? 결국 자기에게 맞춰 조금씩 다르게 사는 거지.”


시간이 흘러 작가는 청소부 일이 수익과 시간 관리 면에서 괜찮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꿈을 유지하는 수단이 됨을 느낀다.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아가니 행복하다는 결론과 함께 계속 청소 일과 예술 활동을 병행하며 살아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창조적인 삶을 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살다 보면 계속 욕망이 바뀌기 마련이고, 이를 구조적인 삶 속에서 오롯이 충족시킬 수 없으니까. 주위를 둘러보면 누군가는 결혼한 뒤 일을 그만두고, 누군가는 갑자기 원하던 공부를 하겠다고 해외로 떠난다. 누군가는 가수의 꿈을 이루겠다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기도 한다. 애초에 삶의 표준 모델이란 건 허상에 불과하며, 산다는 건 단지 뭔가를 새로 시작하고 채워내는 과정의 연속이 아닐까.


결론은 인생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것. 보이는 것만으론 타인의 삶을 알기 어렵고, 실상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비교가 어려울 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비교하는 데 마음 쓸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나를 사랑하고 내가 원하는 걸 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맛있는 걸 먹는 거다. 마음은 그런 데다 써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