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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Nov 25. 2022

자기 확신을 가져도 되는 이유

마감을 하고 나니 시계는 어느덧 밤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와 생각해 보니 정신이 온통 일에 쏠려 밥 때를 놓쳤다. 근처 마라탕 집에 들어가 혼자 만 원어치 마라탕을 먹었다. 평온함이 느껴졌다. 어렵게 느껴졌던 일을 문제없이 잘 마친 뒤, 쉬는 날인 내일을 생각하며 밥을 먹는 데서 오는 소소한 만족감. 이만하면 그럭저럭 열심히 사는 사회 구성원 같기도 했다.


난 나쁘지 않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걸까. "전 글을 쓰는 일을 합니다. 현재는 지식 채널 영상 원고와 시사 뉴스레터를 쓰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라고 누군가에게 날 소개하면 어떤 인상을 줄까. 정보를 전하는 글을 쓰는 건 보통 두뇌가 명석한 사람들이 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성실히 커리어를 쌓는 지적인 사회인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까지 내 글을 읽은 독자라면 그렇지 않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겠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 부적응자 같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으니까. 비단 올해가 아니더라도 이는 내게 20대에 걸쳐 주어진 과제였다. 선택지가 많은 사람의 행복한 고민이 아니라 싫은 게 많은 사람의 갈등이었다. 고심해서 선택해도 칼자루를 쥔 쪽에서 나를 거절하기도 했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삶의 형태는 정해져 있다. 딱히 긴 설명이 필요 없는 길을 걷는 것이다. 사범대를 나와 임용고시를 준비해 교사가 되는 것, 경영학과를 나와 사무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근데 왜 임용고시를 준비했냐", "왜 사무직이 됐냐"라며 꼬치꼬치 이유를 묻지 않는다.


반면 대학 생활에 정체감을 느껴 중국에 가서 중국어를 배운 나, 한국사나 컴퓨터활용능력시험 대비처럼 남들이 하는 취업 준비는 모조리 하지 않은 나, 졸업하고 비행기를 갈아타야 갈 수 있는 나라에서 갑자기 1년 정도 살았던 나는 자꾸만 내 인생을 설명해야 했다. 많은 이들이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자꾸 물어봤으니.


딱히 비장한 이유는 없었다. 내 안엔 뻔한 삶에 지루함을 느끼는 DNA가 있는 것 같다. 지금도 흥미가 들지 않는 일은 하기 싫다. 하기 싫은 걸 붙잡고 있으면 저항하는 마음과 자꾸만 싸워야 해서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하는 내내 잡생각이 들고 시계를 보게 되는 건 내 안에서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는 징조다. 경험상 오래 붙잡고 있어도 남들이 하는 것 정도만 겨우 따라 할 뿐이다.


반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건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다. 그쪽으로 온통 생각이 쏠리고, 활력이 나고, 어려운 일도 추진하는 쪽으로 노력하게 되니까. 따라서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산다. 내겐 나이와 상관없이 적용되는 삶의 방식인데, 사람들은 자꾸만 "네 나이 정도면 하기 싫은 것도 참고 하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조언을 건넨다. 한 번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오빠가 말했다. 


"진표야. 넌 하나의 회사를 다니면 전문가가 될 사람인데 쉽게 정착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 회사에선 너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회사에서 안 좋아하는데 어쩌라고? 누구나 선형적인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으며 살아가는 건 아니다. 애초에 선형적인 커리어를 갖는 게 목적이 아닐 수 있고, 중간에 단추를 잘못 낄 수도 있다. 도저히 아니다 싶어 처음부터 아예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마음이 담긴 길은 선형적으로 곧게 나아가기보단 구불구불한 곡선에 가깝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자신을 배우며, 옳다고 생각한 결정을 번복하고, 과거의 자신이라면 전혀 내리지 않을 선택을 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의 모델에 얽매인 사람은 비선형적인 삶을 후려치기 일쑤다. 하나의 직장, 안정적인 삶, 안주해야 할 나이를 언급하면서. 



이러한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저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톺아보면 자신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고정된 모델에 어떻게든 자신을 맞추느라 하기 싫은 게 있어도 그만두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삶에서 오는 만족감은 한정적이다. 


호주의 요양원에서 8년 동안 시한부 환자들을 돌봤던 작가 브로니 웨어에 따르면, 사람들은 죽기 전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삶을 산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한다. 우리는 진짜 내 삶을 살았을 때 비로소 잘 살았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삶은 표준 모델과는 거리가 있는, 고유한 형태를 지닐 터이다.


또 내가 속한 집단에서 인정하는 가치가 절대적인 기준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짧은 시간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2002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텔레 마케터를 유망 직업으로 꼽았으나, 15년도 지나지 않아 머지않아 사라질 직업 1위가 됐다. 요즘엔 이직이 커리어 관리 수단으로 여겨지면서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것도 '고인물'이 되기 딱 좋다는 인식이 퍼지는 추세다. 가까운 미래에는 "넌 한 군데의 회사에서만 오래 일하는 게 안타까워. 사람들은 너같이 정체된 사람과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아."라는 조언이 들릴지도 모르겠다.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성격에 따라 추구하는 가치가 판이하게 다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실패를 거듭 반복하는 사람을 안쓰럽게 여기지만, 실리콘 밸리에선 바람직한 인재라고 생각한다. 실패를 해야 비로소 무엇이 안 되는지 찾아낼 수 있고, 수많은 실패는 그만큼 다시 일어나서 도전했다는 증거가 되니까. 그렇다면 실패를 멋진 스펙으로 제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실한 집단의 가치에 기대어 삶의 안정성을 유지하겠다는 건 거대한 착각이 아닐까. 잘 산다는 것은 시대에, 흐름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삶에 부여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인생의 재미는 나만의 의미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찾는 여정에 있다. 그 여정을 걷는 나는 단순히 주위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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