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참석한 한 술자리에서 학원 강사 두 분을 만났다. 자연스레 각자 먹고사는 생활로 이야기가 흘렀는데, 10년 차 강사라는 한 분께선 학생들에게 "어른 돼서 오늘 먹고 싶은 마라샹궈를 마음껏 사 먹고 싶으면 공부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하셨다. 요즘 애들이 가장 환장하는 건 마라샹궈라며.
학생들에겐 2만 원 상당의 마라샹궈가 무척 크게 느껴지는데, 나중에 어른이 돼서 스스로 밥벌이를 하게 되면 마음대로 시켜 먹을 수 있으니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게 중요하단 말이었다. 원래 먹을 것을 통한 쉬운 설득이 가장 잘 먹힌단다. 다른 강사분께선 이에 맞장구를 치며 자신은 "너희 부모가 부자가 아니면 일단 죽도록 공부해라. 그래야 나중에 사람 구실이라도 제대로 한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부자가 아닌 집에서 태어난 데다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나는 상처를 받았다. 내색하지 않은 채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돈 없는 사람은 죽도록 공부해야지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나요?"
그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답했다.
"네. 보면 어릴 때 삶의 태도가 그대로 가요. 나중에 어떤 직업을 하게 됐을 때 그 직업에 대한 태도가 정말 하기 싫은 수학 문제를 푸는 태도와 비슷하다고요. 어떤 회사건 재미없는 수학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냈던 사람을 뽑고 싶지 않겠어요?"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아, 뭐라는 거야. 재수없어."
예상보다 일찍 집을 나서며 생각했다. 생각이 얕은 이들이 선생을 하고 있으니 숱하게 반복된 기성 담론만 되풀이될 뿐이고, 이들에게 배운 학생들도 거기서 거기인 삶의 궤적을 그리는 게 아닐까. 단순한 비유로 쓰였지만, 마라샹궈는 살면서 무슨 일을 해도 얼마든지 시켜 먹을 수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건 학생들을 시스템에 순응시키기 위한 어른들의 대표적인 헛소리다.
"어릴 때 삶의 태도가 그대로 간다"는 건 사람의 가능성을 속단하는 말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말을 들은 학생은 압박감을 느끼고, 현재의 점수가 미래의 성공을 결정짓는다고 믿기 쉽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아니란 걸 알 수 있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생명력을 갖고 있고, 이를 발현시키는 건 기본적인 욕구다. 우리는 살아있다는 그 느낌을 통해 일상 속에서 활력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어떤 학생에겐 공부가 자신의 생명력을 발현시키는 행위일 것이다. 그럼 힘든 상황도 가치가 있다고 느낄 것이며, 당연히 점수도 잘 나올 가능성이 크다.
반면 어떤 학생은 공부를 단순히 지루하다고 느껴서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남들보다 떨어지는 점수를 받았다고 쳐보자. 미래에도 여전히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기에 인생 전체가 어두울 거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가? 아니, 앞으로 살다가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는 일을 만나면 열심히 하겠죠.
어른들의 말을 진리처럼 믿은 채 하기 싫은 걸 열심히 하면 불행해진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하기 싫어서 힘들면 그만둬야 한다. 그래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단 살면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모두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하기 싫은 것'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명확한 비전을 그리고 있지만 상황이 잘 풀리지 않아서 하기 싫은 것. 이는 상황을 개선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사실 하고 싶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고, 재미도 없지만 누군가 시켜서, 혹은 남들을 따라가느라 하는 것. 전자면 열심히 노력하는 게 맞지만 후자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남들의 시선에 연연해서 줄을 맞추며 살다 보면 만족스러울 것 같지만 결국 무색무취의 사람이 된다.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모습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난 후자면 다 때려치우고, 하기 싫은 것을 피해서 하고 싶은 것을 찾으러 간다. 반면 후자에 몰두하는 이들은 자꾸만 싫은 것에 인생을 쓰느라 생명력이 꺾여서 활력이 없다. 하고 싶은 것에 인생을 썼다면 분명 즐거울 뿐 아니라 더 많은 성취를 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고 보면 하기 싫은 건 하지 않는다는 건 무책임해 보이지만, 되레 큰 책임감을 지닌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사람들이 흔히 안전하다고 말하는 선택이 과연 최선일지 의심하고, 자신에게 꼭 맞는 것만을 취하는 자세는 삶의 주인 의식을 갖춘 사람만이 가질 수 있으니까.
그러니 누군가 이제부터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만류하지 말고 바람직한 자세라고 말해주자. 통조림 속에 갇혀있는 것보다 바닷속을 유영하는 물고기가 더 좋아 보이지 않는가. 그는 조금 위태로워 보여도, 자신이 택한 길을 따라 헤엄치며 나아가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할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