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표 Oct 29. 2022

자아가 비대한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자아가 비대한 사람을 만나고 나면 마음속 눅눅함이 깔린다. 그 눅눅함이 3일은 가서 어딘가 기분이 찝찝하다. 좀 더 진솔하고 유쾌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며 얼른 기분을 털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자아가 비대한 사람이란 말끝마다 자기를 과시하려 드는 사람이다. 얼마 전 한 지인을 만났다. 그는 30대 중반의 남성. 볼 때마다 남을 깎아내리며 자신을 추켜세우는 화법을 쓴다는 인상을 받아 묘하게 불편했다. 최근 그는 인생에서 크고 작은 성취를 경험했는데 그게 그의 자아를 비대하게 만든 것 같았다. 


줄곧 스스로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으며 "난 단체 내 이미지가 좋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여자들이랑 연애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그 단체의 리더였고, 저건 본인 이미지를 깎아먹는 말이었다. 또 그처럼 키가 160cm인 남성은 연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려워 신빙성이 떨어졌다. 난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하는 걸 싫어하지만, 쏟아지는 자랑을 듣다 보니 그를 깎아내리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이어서 그는 최근 꿈의 직장에 합격했다며, 직장에서 자신이 얼마나 사람들과 잘 지내는지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자꾸만 집중력이 흩어져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재밌는 부분이나 유용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듣기 힘들었다. 


한편으론 안쓰러웠다. 저렇게 과시하는 건 성취를 보여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약하고 초라한 모습임에도 누군가에게 큰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얼마나 되려나. 살다 보면 이처럼 자기 자랑을 끊임없이 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는데, 자신이 만든 특정 이미지를 주입하려고 과도하게 힘을 쓰는 꼴이다. 듣는 사람에게도 그 힘이 전해져 피로감이 밀려온다. 진이 빠진 채로 집에 돌아가는 길, 다음과 같은 한 가지를 느꼈다. 존경심은 절대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



집에 와 언니와 떡볶이를 먹으며 인생의 성취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언니는 말했다.

"성취는 인생에서 주어지는 퀘스트 같은 거지. 그걸 잘 깼을 때 남들에게 자신을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거고. 근데 난 좋은 대학이나 회사 타이틀을 들어도 딱히 누군가에 대한 호감이 커지지 않아.”

"그래? 그럼 언니는 언제 호감이 생겨?”

"그 사람이 살면서 경험한 독보적인 스토리를 들었을 때. 생각해 봐. 내가 너에게 소개팅을 시켜줄 건데 그 사람, 서울대라고 소개하면 구미가 당겨? 넌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겠지. 하지만 명상을 배우러 속리산까지 갔다거나 커피에 미쳐서 카페 창업까지 했다고 하면 어떤 사람인 지 궁금하지 않니?" 

"경험은 휘발되고 대학이나 회사 타이틀은 꽤 오래 남지 않나?"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음... 경제적 결실과 관련해 보면 그렇지."

"인생에서 타이틀만 있거나 남들 다 하는 뻔한 경험만 하는 사람은 재미가 없잖아."


주위 사람들을 떠올려 보니 맞는 말이었다. 살면서 반드시 특별한 경험을 해야 가치 있다는 건 아니다. 남들 다 가는 유럽을 여행하더라도 누군가는 풍부한 스토리를 만들고, 누군가는 미션을 깨듯 유명한 목적지를 방문하는 데 그친다. 매력을 결정짓는 차이는 서사 능력이다. 남들을 따라 무리 속의 한 명으로 살았던 게 아니라 서사로 고유한 결을 빚은 것. 누군가 그 결을 내보일 때 바로 멋지다고 느껴지는 게 아닐까? 설령 그 속에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초라한 실패가 담겨있을지라도.



최근 친해진 친구 한 명이 이런 말을 해준 적 있었다.

"전 힘들 때 진표 씨 글을 보고 위로를 받았어요. 제 자신이 되게 못나게 느껴지는 날이 있거든요. 글 속에서 진표 씨가 아픔을 느끼고 거기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위로가 돼요.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 위안을 얻는다는 게 좋지 않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래요. 진표 씨는 멋진 사람이에요."


요즘엔 나처럼 살아온 날들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큰 상처를 받은 사람. 성인이 된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삐뚤빼뚤 봉합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걸 읽으니 그가 조금 더 좋아졌다. 객관적으로 상처를 마주한 채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매력 있다. 뚜렷이 눈에 보이는 스펙은 아니지만 명백한 성장과 자기 사랑의 지표며, 실패가 만드는 굴곡이 서사에 탄력을 준다.


실패 이야기의 장점이 몇 가지 더 있다. 성공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더 나아지고 싶다는 자극과 동시에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반면, 실패 이야기는 마음을 연다. 슬픔이 노폐물처럼 쌓인 청자는 이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 억눌려있던 상처를 직면하고, 나도 좀 더 솔직해져도 괜찮겠다는 용기를 얻는 것이다. 세상 속 성공 이야기의 숫자만큼 다양한 실패 이야기가 창조돼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 인생이 술술 풀려서 성취에 취해 자아가 비대해진다면 차라리 실패를 더 경험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마음에 드는 모습이 아니라면 겉으로 그럴싸해 보인다 한들 의미가 없으니까.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통해 많은 걸 느낀 시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