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와닿는 글귀를 발견했다.
사실 그녀는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유령 같은 인간이었다. 그런데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누가 봐도 전문가처럼 보였다. ... 자아도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법도 몰랐다(이런 사람에게서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녀는 경험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 조던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누군가를 설명한 묘사를 보고 '경험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란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진 않다. 경험이 성장을 담보한다면 20대보다 50대 어른이 성숙한 게 자명한 법. 하지만 살면서 만나온 나이 든 어른들을 떠올려보면 나이를 어디로 먹었나 싶게 한심한 이들이 꼭 있다. 어떤 사람들은 경험은 쌓여도 성장은 멈춘 것 같다. 문득 궁금했다. 과연 경험을 통해 성장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일까. 책을 덮고 나 자신과 사람들을 잠시 돌아봤다.
자신의 책임은 논외로 둔 채 남 탓만 한다
삶에는 언제나 직접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자신의 책임은 뒤로한 채 누군가의 흉을 보느라 바쁘다.
한때 난 단체에서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었고, 날 싫어하는 이들이 마음을 표현할 때마다 내색하진 않았으나 상처를 받곤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문제의 원인은 저들에게 있다고. 남 일에 딱히 관심이 없는 나와 다르게 사람들은 쓸데없이 남의 이야기를 떠드는 걸 좋아한다. 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지만 이상한 사람들과 엮여서 운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난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고, 알게 된 시간과 상관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했다는걸. 충분한 시간을 갖고 누군가를 바라보지 않았으면서 나 자신의 여러 면을 너무 쉽게 드러냈다. 말의 본질은 내 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상대방 귀에 들리는 데 있다. 청자가 없다면 말 또한 그 고유한 의미를 잃는다. 서로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날 표현하고 싶어 진정성을 담아 여러 이야기를 떠들어도, 상대가 들을 마음이 없다면 곡해되거나 공중으로 흩어져 버린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법, 조명을 골고루 비추는 법을 배웠다. 안 좋은 경험 속에서 타인의 잘못이 크다고 해서 그에 대한 내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감정을 현명하게 다뤄야 한다. 시간이 흘러 그을음이 남지 않도록 충동적인 대응은 피하고, 나와 사람들을 돌아보며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법을 모색해야 한다. 삶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일을 통해 그렇게 배워가는 것이다. 그런데 계속 남 탓만 하다 보면 그 순간 내 책임에 대한 부분은 빠져 버린다. 지나치게 자책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남 탓만 하는 것도 문제다.
비슷한 힘든 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경험에서 배우지 못해서 내가 변하지 않는다면, 부정적인 사람과 경험을 자꾸만 불러올 수 있다. 단순히 운이 좋지 않은 게 아니라 삶에서 반복적인 패턴으로 고착화된 건 아닐까 생각해 봐야 한다.
친구 한 명은 만날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불평을 일삼았다. 일상에서 자신의 선을 침범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고 했다. 회사 동료, 친구, 심지어 택시 기사와 헬스 트레이너까지. 얘기를 들어보면 갑자기 진로 조언을 하는 등 저 상황에 왜 저런 말을 하나 싶을 정도로 개인적인 충고를 일삼는 이들이 많았다
옆에서 지켜보니 그 친구는 불편한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좋게 넘기려는 습관이 있었다. 딱히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을 배려하느라 정작 돌봐야 할 스스로의 마음은 등한시했다.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하는데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대충 무마하는 걸까. 태도가 마치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할 여지를 주는 것 같았다.
사회의 오지랖 문화 자체를 바꾸는 건 어렵다. 하지만 내 태도를 바꾸면 날 대하는 사람들도 함께 바뀌거나, 내 일상에서 사라진다. 원치 않는 사건에 대해 불평하면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 역시 게으름이다. 게으름을 이겨내지 못하면 늘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다.
자꾸 안 되는 이유를 찾는다
예전에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여러 수험생을 만나본 결과 성적이 오르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을 구분 짓는 뚜렷한 특징이 있어요. 성적이 오르는 친구들은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구체적인 방법을 물어봅니다. 시간이 지나도 비슷한 친구들은 공부가 안 되는 이유를 자꾸만 하소연해요. 방법을 말해주면 그 방법을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를 또 설명합니다.”
경험을 쌓으며 성장하기보단 안 되는 이유를 찾고 합리화하는 데 시간을 다 쓰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남들에게 조언을 해줄 때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회사에 매여 있는 정규직 풀타임 말고 다른 근무 형태를 찾아보고 싶다고 하자 주위에서 여러 충고를 들었다. 뭘 하든 먹고사는 건 다 힘든데 이상이 크다는 말, 회사 안이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인데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말.
그런데 사실 그들도 회사 안에서의 삶을 제외하곤 경험해 본 게 없었다. 가고 싶은 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해받길 원한 내가 바보 같았다. 도움 되는 이야기는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법이다. 안 되는 이유를 얘기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에게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쓴소리에 거부감을 느끼고 반박 거리만 찾는다
맹목적인 비난과 나아갈 방향을 함께 제시하는 건설적인 쓴소리는 다르다. 후자라면 기꺼이 시간 내 들을 가치가 있다. 그런데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은 귀가 닫혀있어 잘 듣지 않는다. 방어 심리와 함께 충고하는 상대에 대한 서운함이 앞서서 반박하거나 핑계를 댄다. 아끼는 마음으로 쓴소리를 꺼낸 사람만 피곤해지고, 결국 곁엔 입맛에 맞는 소리를 하는 사람만 남기에 대화를 해도 별로 발전이 없다.
실수를 하는 건 애석하지 않다. 똑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게 애석하다. 반대로 현재의 모습이 초라해도 시간이 흘러 성장할 사람이라면 기꺼이 믿어볼 가치가 있다. 지금의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