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표 Sep 27. 2022

사랑의 방식이 달라진다면

입시 강사로 일하던 시절,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전화하셔서 학생에 대한 상담을 하시던 어머님이 계셨다. 하루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우리 애는 초등학생 때부터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는데 이번에 한 과목만 중간고사에서 60점을 맞았다고,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다른 애들은 따로 과외를 안 받아도 다 알아서 하는데 얘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비교하는 시선이 이미 다 큰 학생에게도 전해질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어머님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는 건 안다. 아이에게 탄탄대로를 걷는 인생을 주고자 숙제와 수행평가를 포함한 모든 일정을 직접 관리하셨다. 교육 정보를 얻고자 수고로이 발품을 파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 부단한 노력은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게 안타까웠다. 남들보다 우수한 모습은 사랑스럽고, 반대로 떨어지는 면은 탐탁잖아 고쳐놓고 싶은 것이다. 


사실 좋은 면만 사랑하는 건 쉬운 사랑이다. 연인 사이에선 어떨까.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더라도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사랑은 드물다. 흔히 사람들은 사랑하는 대상에 끊임없이 본인의 가치를 투영시킨다. 사랑하기에 상대가 원하는 방향대로 나아갔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쉬는 날 침대에 늘어져 있기보단 몸을 관리했으면 좋겠고, 게임을 하기보단 인문 서적을 읽어 교양을 쌓았으면 하는 욕심. 또는 말하기 전에 알아서 다정한 표현을 해줬으면 좋겠고, 아무리 피곤해도 내가 잠들기 전까지 사랑의 메시지를 속삭여줬으면 한다. 때론 그렇게 하지 않는 상대가 문제인 것 같다. 뭐든 내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기에 사랑하면서도 종종 불편한 감정을 맞닥뜨린다. 원래 사랑은 이렇게 힘든 걸까.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사랑이 날 힘들게 하는 걸까, 아니면 욕심이 날 자꾸만 시험에 들게 하는 걸까. 사랑하는 이에게 자꾸만 각종 가치와 판단을 투영시켜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랑하는 이가 침잠해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원하는 방향대로 나아가라고 명령하고 싶은 맘이 가득하다가, 괜한 욕심인 것 같아 멈칫한다. 누구나 각자 삶의 지도와 시계가 있는 법. 그냥 묵묵히 기다려주면 어떨까. 요즘엔 옳고 그름의 판단을 넘어 그 자체로 긍정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존재 자체를 긍정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다를 것이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 글은 느리게 걷고 있는 나 자신과 보폭을 맞춰 동행하기 위해 썼다. 멈춰 있는 듯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처럼 사랑의 방식이 달라진다면.

이전 15화 상처는 살아가는 데 좋은 재료가 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