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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Nov 01. 2021

변화를 받아들이는 힘이 차이를 결정한다

만날 때마다 매번 하소연을 늘어놓는 언니가 있었다.

"아빠와 떨어져 사는데 전화로 늘 아빠가 심한 말을 해. 스트레스 때문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어."

난 의아해하며 답했다.

"그럼 전화를 안 받으면 되잖아요."

"내가 전화를 안 받으면 아빠는 혼자나 마찬가진데 그게 불쌍해서."

"그럼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요구하세요."

"어차피 그래 봤자 안 듣는 분이셔."

"..."


다음날, 대화 주제는 남자친구로 바뀌었다.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싶은데 헤어지자고 하면 술을 마시고 집으로 찾아와서 헤어질 수가 없어. 우린 몇 개월째 이러고 있어."

"그럼 무시하면 되잖아요."

"집 앞까지 왔는데 어떻게 그래. 안 나가면 자꾸 전화한다니까."

“헤어지고 싶은 것 맞아요?”

“응. 서로 별로 시너지가 안 나는 것 같거든. 근데 얘가 자꾸 붙잡아서 힘드네.”

“연락처를 차단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함께 지냈던 시간이 있는데 그건 내가 너무 심한 것 같아서.”

“...”

“넌 왜 아무 말이 없어? 내가 고민 상담을 하고 있잖아.”


언니는 문제 속에 고여있길 원하는 사람 같았다. 빈말이라도 위로를 해주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비슷한 패턴이 여러 번 반복되자 결국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상대가 듣고 싶은 말과 실제로 도움 될 조언이 다르다면 기꺼이 후자를 택하는 편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하니까. 그렇지 않고 주위 사람에게 하소연만 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는 게 없다.


"연민의 감정을 느껴 포용한다는 건 상대보다 내가 강할 때만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정신 승리에 불과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언니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큰 상처를 받아서 일상을 유지하기 어렵잖아요. 그건 강한 사람이 아니란 증거고,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낄 자격이 안 돼요. 함부로 큰 그릇인 척하며 누군가를 포용하려 들지 마세요. 우선 아버지 입장은 헤아리지 말고 언니를 먼저 지켜요.


남자 친구가 밤마다 집 앞으로 찾아오면 못 이기는 척 만나러 나가는 사람은 누구예요? 언니죠. 사실 언니는 언니 자신에게도 헤어짐을 설득시키지 않았어요. 본인도 설득당하지 않았으니 상대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거예요. 머리로는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변화를 감당하기 두려운 건 아닌가요? 혼자 헤쳐나가겠다고 마음먹지 않으면 평생 타인에게 휘둘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훗날 그땐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만 대면서요."


며칠 뒤 언니는 이제야 상황을 정리했다며, 덕분에 핑계만 대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난 언니 같은 사람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자신의 고통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타인까지 돕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왜 매일같이 비슷한 힘듦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걸까. 


흔히 유년기에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자기 치유 능력이 강하고, 그렇지 못하면 늘 애정이 결핍된 상태에 놓여 스스로를 위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문제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결핍된 유년기를 보냈음에도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도 있다. 삶 속 문제를 다루는 능력의 차이는 과연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생각 끝에 문득 중요한 차이를 깨달았는데, 그건 바로 '관성을 벗어나는 힘'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해 익숙한 생활 패턴, 즉 관성을 지키려 한다. 다니는 직장이 불만족스러워도 대책이 없으면 그 직장에 적응해서 매일 불평하며 다닌다. 연인이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도 헤어짐을 감당하기 두려워서 질질 끈다. 관계에 몰입하지도, 외면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문제는 더 나아가 고통 속에 자신을 가두기도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어딘가 잘못됐다고 느끼지만 고통을 제거하는 과정과 결과까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은 불안감과 두려움을 준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익숙한 고통 속에 고여있는 걸 택하는 이들을 봤다. 그렇게 불평하는 이들 옆엔 "그래, 하긴 그렇겠지. 힘들겠다"라며 적당히 동조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타인의 위로를 위안 삼아서 시간이 흘러도 똑같이 살아간다.


하지만 대책이 없더라도 새로운 환경에 나 자신을 내던질 수 있지 않을까? 급작스러운 변화가 부담스럽다면 변화로 가는 발판을 하나씩 만들어볼 수도 있다. 인생에서 그 자체로 좋은 결정, 나쁜 결정은 없다. 결정 후의 내 행동이 비로소 결정을 완성한다. 행동을 쌓으면 그다지 불안할 게 없다.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것들은 한번 삐끗한다고 쉽게 무너지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상황에 있을까, 나에게 있을까? 문제의 원인은 나 때문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해결은 나만이 할 수 있다. 마냥 잘 될 거라고는 얘기할 수 없지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품어내겠다고 외친다면 세상은 알맞은 것을 건네 올 것이다. 뚜렷이 보이진 않지만, 이를 받아 인생을 만드는 힘이 분명 내 안에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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