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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Oct 04. 2022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겠어요 中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작성해 지원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하루는 한 출판사에서 대필 작가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자서전 발행 전 글을 매끄럽게 다듬는 일이었고, 공고엔 정규직, 계약직, 프리랜서 형태 모두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지원 조건을 밝히기 위해 지원서에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다고 기재했다.


작은 출판사인지라 대표가 직접 문자로 면접 제안을 해왔다. 그런데 문자 끝에 성경 구절과 본인의 화려한 약력을 줄줄 보냈다. 이게 뭐야? 아직 만나보지 않았지만 벌써 싫은데. 회사에 대해 검색하자 '대표만 행복한 회사'란 말이 적혀 있어 노파심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 면접에 가보기로 했다. 프리랜서 작업은 대면하고 소통하는 부담이 덜하니 일과 조건만 괜찮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지하철을 타고 내리니 어딘가 을씨년스럽고 기분 나쁜 동네가 펼쳐졌다. 마침 비가 왔던 날씨가 찝찝한 기분을 더했다. 외관이 허름한 출판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기가 없어 보이는 회색 빛깔의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대기하며 책꽂이에 잔뜩 꽂힌 책들을 둘러보는데, 책들이 참 촌스러웠다. 이건 대표 취향일까, 과연 누가 살까 생각하던 중 대표가 안으로 들어왔다.


백신이 아직 보급되지 않았던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대표는 태연하게 마스크를 끼지 않은 채로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이력서와    번갈아 보더니 물었다.


"고등학교는 왜 자퇴했어요?"

고등학교까지 필수로 적어야 해서 '고졸 검정고시'를 기재했는데 그게 첫 질문이 됐다.

"공교육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서요."


대표는 날 가만히 응시하더니 계속 물었다.

"최근 회사에선 왜 나왔어요? 회사가 돈이 없었나?"

"색깔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하던데요."

"글은 좀 써봤어요?"

"원래는 좋아해서 취미로 하다가 프리랜서 작업으로 돈을 벌어보려고요.”

뱉어놓고 보니 이상했다.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하다가 갑자기 요리사가 되지 않는 것처럼, 취미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바로 넘어간다는 건 확실히 무모했다.


"프리랜서? 근데 우리 정규직 상주 작가 구하는데."

"공고엔 그렇게 명시돼 있지 않던데요."

아주 큰 글씨로 지원서에 희망 업무 조건을 기재했는데 그걸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는 생각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딱 보니 대표가 일방적으로 채용 공고를 올리라고 지시하고, 아래 직원이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채 대충 올려서 이 자리에 내가 앉아있는 것 같았다.


"함께 하는 40대 작가 분들 중에선 프리랜서로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근데 본인이 지금 그렇게 작업할 실력이 되냐고. 회사에서 일을 배워야 할 거 아냐."

갑자기 예상치 못한 조언을 들어서 웃음이 나왔다.


"혹시 영상은 만들 줄 알아요?"

"아니요."

"회사 안에서 멀티플레이어가 돼야지. 요즘같은 시대엔 본인이 원하는 것 하나만 해서는 안 돼."

살짝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대표님, 전 이 회사에서 발행하는 책들이 후지다고 충고하지 않잖아요. 주제넘은 조언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면접은 파탄이 났다. 저런 대표 아래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건 형벌이 아닐까. 내 나이 또래의 착해 보이는 직원을 보고 힘내라고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회사에선 그래도 와줘서 고맙다며 책 두 권을 선물했다. 이건 알라딘 중고서점에도 팔 수 없겠다 싶어 집에 오는 길에 버렸다.


정말 인생이 엉망진창인 것 같군. 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한숨을 쉬는데 문득 학부 시절 공부한 맹자가 떠올랐다. 맹자는 말한다. 삶에는 하늘이 주는 벼슬과 사람이 주는 벼슬이 있다고. 전자를 ‘천작’이라고, 후자를 ‘인작’이라고 일컫는데, 전자는 능력이나 인품처럼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나의 것이지만 후자는 돈, 명예, 지위처럼 상황에 의해 언제든 잃을 수 있다고 한다.


살면서 불행한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으나 거기서 삶을 재건하는 능력을 기른다면 그건 영원히 남을 나의 기반이 될 것 같았다. 천작과 인작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빠르게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길을 만드는 여정을 성실히 수행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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