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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Nov 09. 2021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겠어요 上

호기롭게 프리랜서가 되기로 결심한 지 며칠이 지났다. 사실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 아는 게 없었다.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인터넷 사이트를 뒤적거리다 우연히 프리랜서 진로 강사를 모집한다는 한 소셜벤처의 공고를 보게 됐다. 스케줄에 맞게 학교를 배치받아 출강하는 근무 형태였다. 프리랜서가 되고 싶었고, 교육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다수 있었다. 청소년들에게 진로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일도 재밌어 보였다. 딱히 다른 할 일이 없기도 해서 지원하기로 했다.


별도의 이력서 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지원서 한 편을 작성해야 했다. 지원 동기를 포함한 몇 가지 문항을 마주한 채 어떻게 써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우선 이직이 잦아 자칫하면 성실하지 않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란 인상을 줄 것 같았다. 또 회사에 다니며 상사를 때리고 대표를 협박한 경험도 있었다. 누가 봐도 무난한 길을 걸어온 것과는 거리가 먼 내 모습을 과연 어디까지 드러내야 좋을지 막막했다.


다들 자소서를 쓸 땐 적당히 좋게 쓴다. 혹시나 꼬투리가 잡힐 만한 요소는 모두 빼 버리고, '자소설'이라고 할 정도로 사실을 부풀리거나 왜곡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젠 진심이 아닌 말들은 쓰고 싶지 않았다. 익숙한 삶의 형태를 포기하고 프리랜서가 되려는 건 주어진 환경에 맞게 나를 교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회사가 좋아할 만한 무난한 색깔의 예상 답안만 쓰고 나면 그 결심이 무색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솔직히 썼다.


「전 고등학생 때부터 기존의 교육 제도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10년 전쯤, 전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었으나 입시 위주 교육 제도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했습니다. 왜 이런 규칙들에 따라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한 채 모두가 비슷한 길을 달리는 게 무척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교육 속에서 실패를 경험했지만 ‘교육자’는 제게 흥미로운 직업이었습니다. 평생 배우고 살아가고 싶었으며, 누군가를 감화시키는 건 매력적인 일처럼 보였으니까요. 또 사회 시스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저 같은 학생을 만나면 힘이 되는 메시지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해 교직 이수 과정을 밟았고, 입시 강사로 일했으나 제가 이상적으로 그리던 교육 현장은 없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학교는 여전히 느렸습니다. 교생 실습에선 실력이나 성장 의지 없이 권위 의식만 가득 찬 교사들을 만났습니다. 학생 개개인의 차이는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공교육의 한계를 체감했습니다. 사교육에선 시스템을 활용해 학부모의 지갑을 능숙히 여는 게 바로 일을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치관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데 염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다시 강사에 지원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일상 속 문제를 해결하는 귀사 프로그램이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교육과 회사 안에선 문제를 발견한 뒤 방법을 제시해 풀어 볼 기회가 부족합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 개인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나라 인재들이 주도성, 창의성, 비판력이 부족하단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한국 사회에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새로운 시각을 길러줄 수 있기에 진로 탐색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누구보다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5개의 나라에서 살아가며 선생님, 호텔리어, 콘텐츠 디렉터 등 여러 일을 했습니다. 20대 후반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삶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민과 경험 속에서 제가 직접 얻은 것들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색다른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즉 진로 강사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로 프로그램에서 색다른 방향으로 갈래를 뻗어 나갈 수도 있겠습니다. 직업고 학생들, 혹은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회사 생활의 각종 갑질에 대해 교육하고, 현실적인 대처 방안을 다루는 수업을 제안해 봅니다. 전 지금까지 회사에서 임금 체불, 부당 해고, 성폭력 등 다수의 불쾌한 경험을 겪었습니다. 사회 초년생일 땐 무척 큰일처럼 다가왔죠. 또 매번 스스로 해결 방안을 깨우치며 성장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 모든 게 단순히 저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공적인 문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편 그때 취해야 하는 태도나 법적 조치에 대해 누군가 더 일찍 알려줬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어른이란 원하는 걸 본인에게 직접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전 나아가 제가 원했던 걸 학생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 」


일대일로 진행된 면접에서 담당 매니저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강한 힘이 느껴지는 글이라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전 여러 지원자를 만나봤는데 일단 엄청 특이해요. 나중에 세바시에 나올 것 같아요. 경험이 풍부하고 성숙하단 느낌이 들어요. 읽으면서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칭찬 세례에 당황해 면접이란 걸 잊고 솔직히 말했다.

"그래요? 주위엔 이미 정착한 친구들이 많아요. 전 아직 크게 이룬 게 없이 방황하는 제가 딱히 맘에 들지 않는데요."

"또래 친구들보다 오히려 빨리 가고 있는 거예요. 본인 삶에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아요. 또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잖아요. 앞으론 뭘 하고 싶어요?"

뜻밖에 위로를 받았다. 문득 글 한 편으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연 게 신기했다.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겠어요."


면접에 합격해서 몇 차례 교육을 이수했지만, 이때의 경험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진로 강사 교육을 받다가 프리랜서 일감을 딴 걸 시작으로 글을 쓰는 에디터가 됐다. 이렇게 한 줄로 쓰면 간단하나 그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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