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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Oct 08. 2022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겠어요 下


일을 많이 해서 빠르게 경력을 쌓고 싶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싶어 작업을 찾던 중 영상 시나리오 작가를 모집한다는 한 공고를 발견했다. 페이가 꽤 높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만큼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충분한 금액 같았다.


다만 소설처럼 픽션을 작성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아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뭐든 직접 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겠지. 해당 기업에서 운영하는 채널을 분석해 요구하는 테스트 과제를 마치니 바로 면접 제안이 왔다. 이번엔 공연한 발걸음이 아니길 바라며 집을 나섰다.


"저희는 원래 전문 작가들만 채용하는데 관련 경력이 없으셔서 채용하기 좀 부담스러워요. 그래도 테스트 과제를 워낙 잘 수행해 주셔서 한번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원래 공백 제외 1만 자에 20만 원을 드리는데 경력이 없으시니 15만 원으로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일을 잘하시면 바로 올려드리겠습니다."

"공백 제외 1 자요?"

공고에 제시된 것과 조건이 달랐다. 또 글자 수가 너무 많게 느껴져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현재 작업하시는 분들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그건 저희가 모르죠. 재택근무고 일일이 시간을 재보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하루에 한 편씩 완성하시는 분도 계시고, 그것보다 더 적게 원하는 만큼만 하시는 분도 있고 그래요. 페이는 보통 주급으로 지불하며, 제출만 하시면 지불은 저희가 확실히 합니다."


그리고 '전문 작가가 아니라서' '경력이 없어서' 말을    하시더니 의향이 있으면 바로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하셨다. 어딘가 맘이 내키지 않았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지만   생각해 보고 싶다고 인사를 드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 작가 커뮤니티를 찾아보니 같은 공고에 현직 작가들이 잔뜩 달아놓은 댓글을   있었다.


「웬만하면 오지랖 부리고 싶지 않지만 저건 정말 쓰레기 같은 페이네요. 노동 착취하지 마세요. 누군가는 간절한 마음에 이런 일이라도  텐데 저걸  거면 차라리 웹소설을 썼으면 좋겠네요.


마음이 무거웠지만 이런 댓글을 보고도 잠시 고민했다. 딱히 하고 싶지도 않고, 페이도 쓰레기라고 하지만 시작하는 단계인 내가 과연 이런 것들을 가릴 처지가 될지 자문했다. 한번 해보고 나서 결정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좀 더 고민 끝에 연락을 드려 확실히 거절했다.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고 싶어 회사 생활을 포기한 건데 다시 인생을 원하지 않는 것들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당장 남들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을 아껴주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


“한 인간은 자기 행위의 총합일 뿐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 혹은 소설가 알베르 카뮈가 한 말이라고 전해진다. 저 말은 진정한 나 자신이 어딘가에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일상 속 선택 하나하나가 모여 나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누구인가'에 관한 답변은 MBTI 해설서나 사주 풀이 속에서 찾을 수 없으며, 과거에 내가 내린 선택들과 앞으로 내가 내릴 선택들이 말해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욱 좋은 선택을 하고 싶었지만 과연 무엇이 좋은 선택일지 확신이 없었다. 좀 더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레 기준이 생기지 않을까. 남들보다 한참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신중히 해보기로 했다. 나를 사랑하며 나답게 살 수 있다면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중요한 건 오늘도 발걸음을 뗐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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