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표 Oct 18. 2022

프리랜서 에디터로 돈을 벌게 된 계기

다 경력자를 선호하는데 경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는 걸까. 고민하던 중 한 미디어 콘텐츠 회사로부터 유튜브 지식 채널 영상에 쓰일 테스트 원고를 한번 제출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TED 강연을 바탕으로 미국 셀럽에 대해 리서치해 2000자 정도의 원고를 써내자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에디터 님, 앞으로 함께 재밌는 작업을 많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현재 저희가 채용하는 건 비즈니스·트렌드·경제 등 임직원들에게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내용인데 가능하실지 궁금합니다."

모두 자신이 없는 주제들이었다. 어려울 것 같은데? 하지만 말은 다르게 나왔다.

"경제는 제가 소화하기 좀 어렵겠네요. 그런데 비즈니스·트렌드는 과거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꾸준히 관심을 두고 찾아본 경험이 있어서 리서치를 하면 충분히 보완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게 있다면 일단 시작하고 공부하자는 생각에 수락했고, 이때부터 해당 분야를 맡아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심심할 때마다 SNS에 글을 써왔는데 이걸로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많으나 능력 있고 운 좋은 소수의 작가들만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밥벌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에디터라는 직함으로 정보성 글을 쓰는 건 자기 작품으로 인정받을 만큼의 번뜩이는 영감이 없어도 필력이 있고 성실하다면 오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에 2건 정도의 작업을 계약했던지라 수익은 많지 않았으나 잘해보고 싶었다. 아침마다 책과 뉴스를 찾아보며 소재를 찾았다. 사실 관련 자료를 읽을수록 과연 내가 시사 에디터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MZ세대는 왜 이렇게 열광하는 게 많지? 세상의 변화를 관찰한 뒤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에 큰 감흥이 없는 나는 잘 모르는 트렌드가 넘쳤다. 하지만 에디터로 정보를 전하는 글을 쓰는 내 모습이 좋아서 그냥 계속했다. 강제적인 공부에 가까웠지만 일을 하며 머릿속에 잘 모르던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도 재밌었다.



어느 날 일감을 더 늘리고 싶었던 나는 한 매거진에서 프리랜서 에디터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공고엔 없는 상세 조건을 문의해보고 싶었다. 담당자는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경력을 물었다.


"말씀하신 대로 가능하긴 한데 경력이 어떻게 되시나요?"

"현재 한 미디어 콘텐츠 그룹에서 지식 채널 원고 제작을 담당하고 있어요."

경력 얘기를 계속하면 초짜인 게 들통날 것 같아 말을 돌렸다.

"제가 브런치 개인 채널도 운영하는데, 구독자는 1000명 정도가 넘는 수준이라 크지는 않습니다."

"혼자 운영하시는데 1000명이 넘는다고요?"


찾아보니 그 매거진도 브런치 공식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고, 100개가 넘는 포스팅을 올렸으나 구독자는 두 자릿수 수준이었다. 담당자는 살짝 관심을 보였고, 업무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또 원하는 조건대로 협의가 가능하니 작업 내역을 첨부한 서류를 보내달라고 덧붙였다. 난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경력이 길거나 포트폴리오가 풍성하다면 쉽게 일감을 따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까. 고민 끝에 담당자를 설득하기 위해 웹으로 편지를 제작해 보냈다.


안녕하세요. 지난 금요일에 담당자님과 통화한 이진표입니다. 저는 현재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으며 업무를 더 늘리려고 합니다. 또 언젠가 저만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습니다.

귀사 매거진의 글과 비슷한 글을 많이 첨부하고 싶으나 아쉽게도 경력이 거의 없어 첨부 자료가 부족합니다. 하지만 전 이렇다 할 기획 없이 제 생각과 경험을 기록해 1000명이 넘는 브런치 구독자를 모았습니다. 블로그와 합치면 2000명 정도의 구독자가 제 이야기를 읽습니다.
(관련 링크)

최근 한 미디어 콘텐츠 그룹에서 비즈니스·트렌드 분야 에디터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4년 간 꾸준히 성장했으며, 현재 구독자가 5만 명에 준하는 안정적인 지식 채널이죠. 해당 채널에서 작성한 원고 중 하나를 첨부할게요. 테드 강연과 현지 기사를 리서치해 작성했습니다.
(관련 링크)


이젠 정말이지 쓸 말이 없었다. 뭐라도 더 쓰자. 이런 경우 열정과 태도를 부각해야 하지 않을까.


익숙하지 않은 주제, 다양한 주제를 기획하고 쓰는 게 제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철학·사회학·정신분석학 등 다방면의 지식 서적을 읽는 걸 좋아하며, 요즘은 작업 때문에 비즈니스 서적을 읽고 있습니다. 당시 통화에서 예시로 들어주신 매거진의 아티클을 읽었는데 유사한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꾸준히 공부하면서 채워나가고자 합니다


그래도 부족해 보여 한참을 고민했다. 이전 회사에서 맡았던 직함이나 관련 성과를 나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흥미라도 끌자는 마음에 과거를 돌아보며 '실패 이력서'를 작성했다.


마지막으로, 전 다양한 경험과 실패를 쌓았습니다. 많은 도전을 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실패합니다. 실패를 통해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되죠.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던 시간은 제 삶의 큰 영감을 줬고,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글쓰기를 매일 하게 했습니다.

-A국에서 그 나라 언어를 공부하고, 14개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한국어 과외를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B국 4성 호텔의 프론트 데스크에서 일했습니다.

-C국 5성 리조트 프론트 데스크에서 근무했습니다. 금방 그만뒀는데요. 아랍 문화권에서 숱하게 겪는 성차별을 감내하고 싶지 않았고, 서비스직이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D국을 여행하며 명상을 배우다가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영어 앱을 만드는 스타트업에 콘텐츠 디렉터로 입사했으나, 색깔이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조직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더 이상 회사를 다니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난 5년 간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고 꾸준히 한 건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요. 이제부터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만 하자는 생각에 글을 쓰는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재밌는 글이 나오지 않을까요? 절 채용하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써놓고 보니 더 고민이 됐다. 이게 뭐야, 무슨 자신감인가. 설득이 되긴커녕 조악한 문단 덩어리잖아. 전송한 뒤 부끄러워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손해 볼 게 없다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며 나를 달랬다.


그런데 대체 어떤 부분이 매력적이었을까. 희한하게도 담당자가 책임지고 채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렇게 매거진 아티클을 작성하는 일을 하게 됐다. 두 군데에서 현직 에디터로 일하다 보니 세 번째, 네 번째 담당자를 설득하는 건 훨씬 수월했다. 여러 기업 담당자를 하루 한 명씩 전화로, 편지로, 기획 회의를 한다고 생각하고 미리 기획안까지 작성하며 설득하다 보니 어느덧 내겐 주 7일로 일할 거리가 주어졌다.


나중에 친해진 담당자 중 한 명은 지원 당시를 회상하며 농담처럼 말했다. “전 사실 진표 씨가 어떤 또라이인지 너무 궁금해서 미팅을 잡았어요.”라고. 어차피 잘 다듬어진 길을 갈 수 없다면 정석적인 방식은 아예 포기하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전 21화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겠어요 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