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러포즈

푸른 바다, 푸른 계좌

by 전야감

그녀는 1년에 10회 전후로 제주도를 간다. 제주를 너무나 사랑하여 동서남북 할 것 없이 꿰차고 있는 곳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회사의 분원이 제주에 있다. 그 분원에 근무하는 친한 동료들이 제주에 거주 중이다. 그래서 제주도 방문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존재한다. 사실 그녀가 서울에 있던 회사에서 지금 다니는 회사로 이직할 때 제주도 분원이 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우리는 4월에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하였다. 마침 학교 개교기념일과 재량휴업일이 목, 금으로 겹쳐 3박 4일간의 여유가 났다. 물론 그녀는 따로 휴가를 내야 했다. 하지만 너무나 바쁜 중이라 휴가 중에도 업무를 완전히 떨쳐놓을 수는 없다고 했다. 여행 중 전화를 받고 노트북을 켜야 하는 일이 다반사일 거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첫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멘탈 추락 주의] 우도에서 받은 회사 상사의 전화에 탈탈 털린 그녀. 뒷모습이 쓸쓸하다.


나는 그전까지 제주도를 횟수로 5번 와봤었다. 1번은 6살 때,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2번은 수학여행 답사, 마지막 2번은 수행여행 인솔자로서였다. 제주도 수학여행은 코스도, 가는 식당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자유도 높은 여행으로 떠나는 제주는 사실상 처음이었던 것이다.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함께 코스를 짜보았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우도를 추천하였다. 그곳의 서빈백사가 제주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이며 연인과 꼭 가고 싶은 곳이라 했다. 나는 마침 우도를 가보지 않았기에 배 타고 들어가는 일정부터 우도의 풍경까지 모든 것이 기대되었다.


그리고 황우지 해안과 선녀탕을 포함한 서귀포 일원, 또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오름 오르기 등의 일정을 세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녀의 친한 친구의 집에서 하루 머물기로 하였다. 그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 시점에 大김녕식당의 안주인님이시다. 아름다운 미모는 말할 것 없고 대장부 같은 호방함으로 아낌없이 주변 사람을 챙기는 아량, 그리고 처음 보는 누구와도 격없이 가까워져버리는 마성의 그녀. 그 당시 그녀는 연하의 제주도 남자와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 결혼식 청첩장도 받을 겸, 나도 그 커플에게 첫인사를 할 겸 그곳을 방문할 일정을 잡았다.


이곳은 영업장이 아닙니다. 김녕식당 주인장 자택의 포차 컨셉의 방. 일명 MJ포차.


즐겁고도 낭만적인 제주도 여행이었다. 다만 낭만적이지 않은 일도 있었다. 지난번 화에서 언급했던 나의 투자 일지와 관련하여 그 사이 그녀와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녀는 2015년쯤 이직과 함께 서울에서 내려오며 지방의 아파트값에 많이 놀랐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꿈도 꾸기 힘든 내 집 마련이 상대적으로 이 지역에서는 훨씬 쉬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등기치는 시기를 미뤘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어느 정도의 대출과 함께 주택 구매가 가능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흘러 부동산 폭등기가 찾아왔고 결국 닭 쫓던 개가 돼버리고 말았다. 아니 사실, 닭이 항상 근처에 배회할 줄 알고 쫓은 적도 없었지. 더군다나 주변에서 누군가는 부동산으로 대박 났다는 소식들이 왕왕 들려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과감한 투자제안을 하였다. 나의 계좌 상황과 투자 이력은 이러이러 하다, 이러이러한 뷰와 기준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몸을 사릴 시기가 아니라 리스크를 감수하고 뛰어들 시기라고. 그녀는 나와 뜻을 함께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코인 앱을 설치하였고 일단 감당 가능한 금액으로 투자를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의 수익이 나기 시작했고, 나는 그때부터 이 수익들은 우리 결혼에 쓰여야 한다는 암묵적 당위성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때는 피의 4월이었다. 몇 개월간의 초강력 상승장이 한번 쉬어갈 타이밍이 온 것이다. 여행 전부터 하락의 조짐이 보이더니 우리의 여행 시기에 맞춰 기가 막힌 하락파가 터졌다. 물론 그 이상의 목표점이 존재했고 하락이 있더라도 상승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이제는 나 혼자만이 아닌 그녀의 투자 비중까지 더해진 상황에 그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동요하지 않았다. 매 상황마다 전전긍긍하며 날뛰지 않는 성향 덕에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평균 투자 수익이 좋은가 생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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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서빈백사의 풍경은 굉장히 생경하였다. 석양이 지는 무렵의 아른한 붉은 색감과, 하늘을 잡아먹는 듯한 육중한 뭉게구름이 뒤섞여 묘한 빛깔을 연출하고 있었다. 해변의 새하얀 홍조단괴 조각은 흙먼지만큼 곱지 않아 들이 누워 이리저리 마음껏 굴러도 일어나 툴툴 털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물가만 보이면 뛰어들고 싶을 만큼 물을 참으로 좋아하였다. 그곳에서도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바닷물 야트막한 곳에서 뉘적뉘적 걷곤 했다. 그러는 동안 잠깐씩 열어본 계좌는 최악의 수익률로 바닥을 치고 있었다. 눈앞의 조용하고 푸른 바다와 그보다 더 짙고 푸르른 수익률의 기묘한 조화란. 어찌 됐든 난 눈앞의 상황에 충실하기로 하였다.


바람이 불었다 멈췄다 하는 와중에 우리는 해변 한곳에 자리하고 그 기분과 낭만을 더하기 위해 맥주 한 캔씩을 곁들였다.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나는 해변에 걸터앉아 이승철의 인연을 흥얼거렸고 그녀는 그런 나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주었다.


제주 맥주의 디자인은 제주의 바다와 잘 어울린다.


문득 안주로 먹고 있던 꼬깔콘이 왠지 반지 같았다. 꼬깔콘은 손가락에 꼽아야 제맛인 것.


"우리 결혼할까?"


그녀의 손가락에 꼬깔콘을 조심스레 꽂아주며 자그마한 프러포즈를 하였다. 그리고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녀는 그것이 프러포즈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너무 장난스럽고 하찮았기 때문에 응당 그리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정말 나다운 프러포즈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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