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진행시켜

우면산

by 전야감

때는 2021년 6월쯤이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이세계에서 텔레포트하듯 지직거리며 우리 눈앞에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눈에는 흐릿흐릿 보이지만 손을 뻗으면 허공을 휘저을 것 같은 현실감이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단어가 분명히 눈앞에 보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서로의 부모님에게 서로의 존재를 분명히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들은 바가 있었다. 그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두 분 만을 두고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두 분 모두 경남 하동 출신이셨는데 아직 하동 및 그 주변에 살고 계신 친가, 외가 친척들의 역사를 더불어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노트와 펜을 꺼내 들어 손사탐 국사 연대기를 작성하듯 조부모 대부터의 역사를 그려나갔다.


그 집안의 한 식구로 들어가기 위한 자격절차랄까. 수많은 인물들과 그 사이의 역학관계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중 중심적인 몇명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속성과외가 진행되었다. 이것을 필두로 결혼을 향한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장인, 장모님과의 첫 만남


아직은 긴팔을 입을 수는 있는 초여름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은 예비 장인, 장모가 될 분들을 위해 미리준비한 홍삼세트 선물을 양손에 들고 상경하였다. 더위를 잘 타는 그는 평소라면 응당 반팔을 입었겠지만, 오늘은 중요한 날인만큼 격식을 갖춘 긴팔 셔츠를 입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약속장소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그녀가 나타났고 둘은 5분 거리에 있는 중식당으로 향하였다. 중식당에는 두 어른이 미리 도착해 기다리고 계셨다. 처음 본 두 분에게 인사를 올리고 자리에 앉아 어색한 시간을 즐길 채비를 하였다. 청년은 두 분의 인상과 분위기에서 긴장보다는 안전함을 느꼈다. 우리 집에 새 식구로 들어올 놈이 누구인가를 판단할 날 선 위화감을 느끼지 않은 것이다.


두 부부는 그저 딸과 함께 온 남자가 하는 일에 대해 편안한 질문 몇 가지만 던지곤 했다. 새로운 환경에 별로 긴장하지 않고 임기응변에 자신 있는 청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냈다. 식사와 함께 자연스레 반주를 곁들이는 식사문화를 보며 이것이 내가 익숙해질 것 중 하나라고 짐작했을 뿐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거리에서는 저 멀리 우면산이 보였다. 여자친구에게 우면산을 자주 오른다는 얘기가 떠올라 청년은 옆에 계신 아버님에게 말을 붙였다.


"저 산이 우면산이지요? 아인이가 자주 오른다고 들었습니다"

"어 그래, 저 산이 우면산이지. 예전에 크게 홍수 났을때 여기까지 흙이 다 쏟아져 내렸었어"


"그 산이 저 산이군요. 그런데 왜 우면산인 걸까요? 소의 얼굴처럼 생긴 산이어서 우면인 걸까요?"

"아마 소 우(牛)에 잠잘 면(眠)을 써서 우면산인 걸 거야. 소가 자는 모양처럼 생긴 산이라는 거지"


청년의 인생에서는 오랫동안 아버지라는 자리가 비어있었다. 규율과 법칙, 그리고 철저한 계획을 중요시하는, 하지만 그 와중에 유쾌함을 잃지 않는 새로운 아버지라는 존재가 그 자리에 스미는 것을 느꼈다. 그의 둘째 아들과 닮아 결혼식에서도 친구들에게 처남과 쌍둥이냐는 소리를 들은 청년은 어쩌면 이미 처음부터 그 집안의 가족인 듯하였다.


그 해 겨울 와이프와 함께 처음 가본 우면산




그렇게 나는 처음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만남에서 결혼을 구체적으로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채비라고 생각했다. 나도 식사자리를 잡아 우리 가족에게 그녀를 소개해주었다. 두 아들만을 기르던 어머니는 딸 같은 예비 며느리를 보며 내심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 이후 여름방학이 지나 2학기가 시작되었고 결혼은 우리 눈앞에, 보다 구체적인 질감으로 텔레포트를 완료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 주말 각자 부모님에게 돌아가 결혼진행에 대해 정확히 전달하기로 했다.


결론은 양쪽 모두

"진행시켜"


서울에서 그녀가 가족들에게 결혼 얘기를 꺼내는 것과 동시에 식장 결정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박사 졸업을 보며 해당 대학교내 식장에서 딸의 결혼식을 치렀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계셨다. 나도 좋았고 우리 어머니도 찬성하셨다. 홈페이지에서 적절한 날짜와 시간을 골라보았더니 11월 21일이었다.


2021년 11월 21일. 그렇게 순식간에 우리의 결혼식 날짜는 정해졌다. 만남을 시작한 지 만 7개월 만이었다. 이제 2달 반간의 결혼식 준비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결혼 날짜 확정 후 며칠뒤 우리집 외가 친척들에게 그녀를 인사 시킨날. 저기는 외할머니 산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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