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하여

눈물의 결혼식

by 전야감

결혼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저 두 사람이 법적인 구속력을 통해 부부가 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인가?

검색창 뚝딱거리면 나오는 결혼 절차에 따라 정해진 날짜에 예약한 식장에서 30분남짓의 쇼를 마치는 것인가?


그렇다면 결혼은 왜 하려는 것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옥이라는데? 혼자 있으면 외롭지만 둘이 있으면 괴롭다는데? 아이까지 낳아버리면 내 삶이 삭제된다는데? 요즘엔 '나'가 가장 중요하다는데?


비혼이 트렌드고 내가 온전한 삶이 트렌드라지만 왜 자꾸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렇게 혼인율, 출산율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도? 결혼하는 사람이 0이 되지 않고 그래도, 그래도 왜 꽤나 많은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선택을 하는 것일까?


두 남녀가 자신의 많은 것을 감수하고도 선택하고 마는 결혼이라는 지향점.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혼자인 지금의 나보다 둘로서의 미래의 우리가 훨씬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다들 하는 거니까 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라는 흐름 때문 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상기의 이유로 선택했다. 결혼을.


이 결혼이라는 대형 프로젝트에는 수많은 세부 퀘스트와 의사결정과정이 존재한다. 우리가 평생 살아오며 겪어온 모든 경험과 인사이트를 쏟아부를 수 있는 기회이다. 당사자 둘은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의사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결혼에는 각자의 집안도 연루돼 있기 때문에 그 입장들을 소상히, 잘 편집하여 주고받는 역할 또한 수행해야 한다.


-


우리에게는 두 달 반정도의 결혼 준비과정이 있었다.


첫 번째로 진행한 것은 주택구매였다. 부동산 폭등 정점기에 우리 결혼이 진행된 것은 그 점만 놓고 봤을 때 애석한 일이기도 하다. 결혼식 날짜를 확정 지은 몇 달 전부터 결혼하면 살 곳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해 왔다. 나와 그녀의 직장과의 거리, 아파트의 상태 및 가격, 주변 환경 및 시설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한 지역이 낙점되었고 그곳의 아파트 세 개 단지를 여러 번 임장 하였다. 살 곳을 결정하자마자 계약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제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은 떨어진다는데 매매가 맞을까요? 전세를 살아야 할까요?'

정말 머리가 지끈거리는 고민의 순간들이었다. 어쨌든 결국 등기를 치고 말았다. 그때와 맞물려 우리는 결혼에 필요한 자금을 확정 짓기 위해 코인에 들어간 투자금을 회수하는 시점도 정하였다. 비싼 값에 구매한 아파트는 애석하지만 결혼자금이라는 기준에 냉정히 매도한 코인은 천만다행이었다.


이제 결혼식과 관련한 제반업무들이 남았다. 와이프의 지인이 아는 웨딩플래너를 소개받아 예물, 드레스, 한복 등을 둘러보았다. 여유롭지 않은 기간이었고 전부 서울에서 진행되었기에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효율적인 결정을 내려야 했다. 와이프는 결정장애가 있는 편이었지만 사치를 하지 않았고 나는 결정을 빠르게 내리는데 능했다. 이러한 성향의 조합이 빠르고 효과적인 진행을 도왔다. 나는 예물을 한사코 거절하려 했으나 장모님은 사위에서 시계하나 해주고 싶으셨다. 시계 매장을 둘러보니 너무나 마음에 들고 나에게 딱 어울리는 시계가 하나 있었다. 그 시계를 주문하고 손목에 착용하던 그때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스튜디오 촬영은 진행하지 않았고 대신 제주도 스냅사진을 찍었다. 10월의 제주의 날씨는 2번의 수학여행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제주바다의 초강풍속에 사진을 찍은 기억들이 여전히 선하다. 오히려 본 촬영 마치고 돌아가는 중 찍은 B컷 사진이 가장 예뻤다. 우리의 모습이 가장 자연스럽고 우리답게 담겼다고 생각했다.

미친듯이 바람이 불던 제주바다


가구 및 가전도 구입해야 했다. 가전은 오픈점이 국룰이란다. 마침 우리 지역에 큰 백화점이 오픈을 했다. 그 백화점을 구경하러 갔다가 지하 가전 매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딜러들과 사브작대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홀린 듯이 따라 들어갔고 대구에서 파견온 구수한 입담의 딜러와 어느덧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마침 그 백화점은 오픈기념으로 기존보다 훨씬 낮은 기준으로 VIP혜택을 주었고 이는 이듬해 우리가 발렛, VIP라운지뽕을 누리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지금 신데렐라 호박마차는 사라졌다.


결혼식 한 달 전 이사하였다. 와이프는 홀로 오피스텔에 들어와 둘이 되어 집을 정리하고 떠나게 되었다. 나도 거의 9개월간 같이 생활을 한 집이었다. 떠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전 집주인이 도대체 살면서 무얼 했는지 모르겠지만 바닥 여기저기에 크게 패인자국을 제외하고 새로운 집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아파트에서 나와 바로 천변을 산책할 수 있었다. 이사한 10월은 천의 물도 마르고 각종 초목들도 쉬고 있는지라 다소 소강된 모습이지만 봄이 되면 푸르른 산을 저 멀리 배경하고 지천이 만개하여 눈부시게 아름다운 산책로였다. 우리는 그 산책로를 걸으며 결혼식 특별무대 안무를 짰다. 기존의 노래와 안무를 답습하지 않았다. 퇴장곡으로 깊은 밤을 날아서를 선곡하였고 그 무대는 우리 결혼식을 특별하게 꾸며주었다.


와이프 지인과의 청첩모임이 있었다. 내가 참여했던 청첩모임은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와이프의 대학원 동기들 모임, 두 번째는 와이프가 오래 몸담은 자기계발모임 멤버들과의 모임. 모두들 참으로 서울서울한 사람들이었다. 억소리나는 직업에 억소리나는 배경들. 하지만 하나같이 부드럽고 좋은 사람들. 경제연구소에 재직 중인 아나운서 톤의 와이프 대학원 동기 언니는 압박면접과 같은 질문을 장난스레 쏟아냈지만 지방 청년은 유려한 답변으로 응수하였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만난 튤립어플로 그 자기계발모임 멤버 중 무려 4명이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까지 다섯 커플.

청첩모임에 제격인 와인바


마침내 결혼식이었다. 입장을 준비하는 나의 시선에 화촉점화를 위해 장모님과 대기하고 있는, 고운 한복 차림의 엄마 모습이 걸렸다. 엄마는 당시 한쪽 다리가 불편하여 수술을 하셨고 때문에 걸음에 어려움이 있었다. 결혼식 사진에 자꾸 울상표정이 찍히는 신랑의 이유였다. 이례적으로 나를 닮은, 나보다 나이 많은 처남이 축사를 하였다. 축사 마지막 즈음에 누나는 최고의 누나였어라는 멘트와 함께 처남은 따흑-하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의 전염속도는 코로나 뺨칠 만큼 빨라 와이프와 나에게도 금방 찾아왔다.


엄마 생각에 울적해진, 그리고 처남의 감동멘트에 눈물이 터진, 안경을 쓰면 사진이 잘 안 나온다길래 안경알을 빼버려 앞이 잘 뵈지 않는 신랑은 약간 어리둥절 몽롱해진 채 다음 순서인 축가를 위해 마이크를 잡고 신부를 바라보았다. 신부의 오랜 꿈은 결혼식에서 신랑이 직접 성시경의 두 사람을 불러주는 것이었다. 리허설을 무리 없이 했건만 신랑은 몽롱해진 와중에 반주의 시작점이 어딘지 캐치하지 못했다.


띵딩띠디 띵딩띠디 띵딩띠디.. 아.. 이게 몇 번째 띵딩띠디지.. 아.. 일단 시작하자.


결국 박자를 잘못 맞춰 시작해 버렸다. 몇 소절을 지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신랑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후에 듣기로 관객들은 내가 긴장해서 목소리를 잘 내고 있지 못하나 생각했다고 한다. 어쨌든 2절을 지나 마지막 소절까지는 박자를 맞춰 불렀다. 흐릿해진 내 시야 속에 나의 그녀 한 명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맞으며 서있었고 나의 인생의 이 감격스럽고 행복한 순간에 너무나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눈물 속의 축가였다. 그렇게 눈물의 결혼식이 돼버렸다. 하지만 율동을 곁들인 우리의 깊은 밤의 날아서는 깜찍했다.

우리들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일들이~ 어쩌면 어린애들 놀이같아~


우리는 결혼식에서 그 의미를 느꼈다. 두 사람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불러다 놓고 그 앞에서 우리 결혼합니다라고 알리는 행위자체의 의미였다. 결코 가볍지 않은 행위였다. 엄숙하고도 진지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결혼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


신혼 여행지는 정선과 강릉이었다. 숙소 2곳에서 각 2박할 예정이었고 두 군데 수영장을 이용하기 위해 코로나 예방접종이나 pcr검사 음성확인서가 필요했다. 나는 접종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식 당일 서울시청 앞 선별진료소에서 한번, 이틀뒤 정선 선별진료소에서 한번 코를 쑤셨다.


즐거운 신혼여행을 마치고 학교에 복귀하였다. 몸이 으슬으슬했다. 열이 났다. 나는 이맘때쯤 자주 몸살을 앓는다. 몸살이려니 했다. 복귀 후 출근 5일차 금요일, 심상찮음을 느낀 나는 보건선생님에게 pcr검사를 가겠다고 알리고 검사를 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게되었다.




-나는 5살 연상 그녀와 결혼했다(1부) 끝.

이전 16화결혼 진행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