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일이 내 개인적인 일을 침해하도록 하지 않을거야

by 전야감

(작성일 2025.3.3.)


오늘 새로운 학교에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닳고 닳은 심드렁한 11년 차 중견교사의 두 번째 decade. 좋은 학교라고 들은 만큼 충분한 모습이었다. 전 학교에 비해 3배는 늘어난 출퇴근 거리를 기어코 1시간을 넘기기 싫어서 57분 정도에 오고 갔다.


이제는 나보다 먼저 퇴근하여 집에 온 와이프가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메뉴는 오리로스. 냉동 오리를 녹여 양배추, 양파와 함께 볶았다. 사골국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와이프는 내일 방문할 친구 부부 때문에 마음이 바쁘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한 대학원 동기가 온다. 무려 어린아이 2명까지 끌고 오는 한 가족의 방문이다. 그 둘은 미국 유학도중 만났다. 현재 프랑스에서 살고 있으며 가끔 한국을 오고 간다. 그 프랑스 남자의 여동생도 놀랍게도 한국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과 결혼했다고 한다. 참으로 신기한 인연.


그 가족을 나도 포함하여 몇 달 전에 와이프의 또 다른 친구 부부와 다른 곳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모두가 영어에 꽤나 능숙하였다. 한국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3쌍 6명의 부부가 영어로 대화하는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몇 년 전 연수 이후 꽤 긴 시간 동안 영어를 말하고 듣는 것이 오랜만이었던 시간. 그리고 그들이 대전 우리 집에 방문해 하루 묵고 가기로 한날이 바로 내일이다.


와이프는 이를 위해 영어 회화연습에 열심이다. 몇 달 전부터 내 지인이 주도하는 영어회화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20살쯤 6개월간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온 탓에 완전히 유창하진 않아도 큰 어려움 없이 영어를 내뱉을 줄 아는 덕에 회화 스터디에도 곧잘 참여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 나는 확실히 내향형에 가까운 사람이다. 나는 특정한 상황을 제외하고 사람이 많은 장소를 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녀는 이런 것에 스스럼이 없다.


저녁을 다 먹고 시간을 보니 막 6시가 되려는 참이었다. 7시 스터디를 위해 얼른 이를 치우고 가야 한다. 그녀는 오늘 갑자기 많아진 회사일에 투정을 부렸다. 이로 인해 안 그래도 바쁜 일정에 차질을 빚은 것이다. 회화 모임에 참여해야 하고, 내일 올 손님들을 위해 집을 단장해야 하며, 회사일들도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녀가 말하길


"하지만 회사일이 내 개인적인 일을 침해하도록 하지 않을 거야"


올해 들어 내 귓가에 가장 강하게 꽂힌 한 구절이었다. 결혼 전후로 바뀐 그녀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문장이었다. 자신의 일정에 온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소중히 대하는 참으로 따뜻한 태도였다. 내가 학교일을 즐기기 때문인지, 크게 힘들게 생각하지 않아서 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인지적으로 일상과 직장의 경계가 별로 없다. 그렇기에 생각해본적 없던 개념이어서 더욱 인상깊은 말이었다.


아무리 외향적인 그녀여도 매번 그 영어 스터디에는 어느 정도 부담을 느꼈다. 그리고 내일 당장 오는 그들 부부와 대화를 위해 오늘 하루 스터디에 참여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실용적인 의미를 둘째로 두고 나만의 시간이라는 그것을, 아무리 회사일을 처리하느라 나중에 바쁜한이 있더라도, 무엇보다도 먼저 두겠다는 그 태도가 너무나 탐스러워 보였다.


우리 삶에 대한 태도는 이렇게 가져가야겠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의미를 둔 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그런 모습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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