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부 방학이 두렵지 않게 되. 그런데..

by 전야감

수백 년 전 인쇄술이 발명되었을 때 직접 한 땀 한 땀 글을 쓰고 책을 완성하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수십, 수백 배는 빠르게 책이 완성되는 것을 보며 인지부조화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기술을 부정하려 들었을지도 모른다. 신성하지 않다며, 영혼이 담겨있지 않다며. 하지만 그것은 시대의 흐름이었다. 문자의 발명으로 보존이 가능해진 인간의 지식이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어 엄청나게 빠른 속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지식의 혁명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 AI의 발전이 이 시기와 유사한 면이 있을 거라 본다. 나는 교사이다. 교사의 방학은 보통 생기부 작성으로 점철된다. 그런데 이 생기부로 인한 스트레스가 근 3년간 매우 줄어들었는데 그 줄어드는 양이 또한 매년 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정말로 생기부로 인해 방학이 전혀 두렵지 않다.


여전히 어떤 대학의 입시설명회를 가면 AI를 이용한 생기부를 지금은 잡아내지 못하지만 곧 잡아낼 것이라며,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며 교사들에게 겁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도대체 왜 겁을 주는 것인지 그 현장에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계산기가 발명되어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숫자를 산출할 수 있는데 이게 잘못되었다고 직접 사람에게 수를 세라고 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더군다나 기어코 올해 학교에서 가장 많이 쓰는 입시프로그램에 AI생기부 작성 기능까지 추가됐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2년 전쯤 나는 친구들 단톡방에 chatgpt를 공유하며 인터넷이 도입된 시기만큼 충격적인 시기가 도래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친구 한 명은 그 정도는 아닌 거 같다며 나의 설레발에 반감을 표현했지만 그 후 교사인 자기 자신도 chatgpt를 십분 활용하여 학교 업무에 적용하고 있다.


평화가 당연한 시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특히 한국인인 우리들은 편안하고 편리한 이 상태가 당연한 것으로, 그리고 조금의 불편한 점이 생기면 이것이 당연히 개선되어야, 될 거라 낙관하는 측면이 있다고 느낀다. 이는 워낙 인프라적으로 편리한 삶을 살아온 탓도 있을 것이고 국가적으로 전체주의 적인 성향이 짙은 한국인의 특성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AI가 세상을 뒤덮어가며 변하는 정치, 경제적 상황은 오히려 수백 년 전 수많은 국가들이 전쟁을 치러왔던 복잡다단한 역사책의 여러 장면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패권국가인 미국은 자비심이 없다. 특히 트럼프가 다시 취임한 미국의 태도는 매우 명확하다. 트황이라고 불릴 만큼 그의 존재감과 퍼포먼스는 압도적이다. 한국인은 트럼프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제대로 행동해야만 하고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동화책의 행복한 결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절대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


자본주의와 제도가 허락하는 선에서 우리 개인들의 삶의 방법을 빠르게 모색해야 한다. 이건 정말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된다. 지금 우리 당장 폭탄이 우리 마을을 불태우고 내 목아래 칼이 들어오는 이미지들만이 생존과 연관된 모습이 아니다. 이 시대의 다양한 사상들이 휘몰아치며 거대한 개인의 무리를 냄비 속 개구리들 데워가는 그림이 오히려 더 적절할 것이다. 따뜻해진 수온을 느낀다면 개인은 빠르게 탈출 전략을 강구하고 실행해야만한다. 도덕과 신념과 현실을 어떤 비율로 설정하여 생존전략을 행할지는 우리 개인의 판단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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