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는 차를 타고 남으로 떠났다. 와이프 외가 친척들이 모이는 여름 정기휴가를 위해서 말이다. 나는 같이 떠나지 않았다. 급하게 생긴 서울일정이 내일이기 때문이다. 빈집에서 혼자 빈둥거리던 시간이었다. 며칠 전부터 으슬으슬 아파온 몸살기운이 싫지만은 않았다. 내일 일정만 없더라면 어쩌면 완벽한 사치거리다. 방학에 하릴없이 빈둥거리는데 거기에 시름시름이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다. 이제는 적당하다고 생각한 28도 에어컨 앞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여느 때처럼 공상에 빠져있었다.
[XXX 이모]
전화기에 부산 둘째 이모의 이름이 떴다.
이모가 나한테 전화하는 일은 정말 드문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전화가 온 것은 높은 확률로 엄마와 관련된 일이다. 불안한 긴장감이 진동하는 핸드폰을 휘감고 있었다.
"네, 이모"
"응, 니 지금 오데고?"
"집이에요"
"니 엄마가 오늘 연락이 안 된다"
이모 둘과 큰 언니인 우리 엄마 세 자매는 나이가 들수록 돈독해졌다. 우리 집은 대전에, 이모들은 경남에 살지만 자주 서로 오가며 황혼기에 접어든 자매들의 우애는 깊어갔다. 그런데 이모가 말하길 오늘 하루 종일 엄마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고 있겠거니, 무슨 일을 하고 있겠거니 하며 기다렸지만 이렇게 까지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은 적은 없었다고..
언니 심장이 안 좋은데 우짜노..
순간 몇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부모를 보낸 자식들이 으레 하는 살아계실 때 자주 뵙고 잘할걸이라는 말.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저번에 같이 밥을 먹긴 했는데.. 그때가 언젠지 집요히 추적할 겨를이 없었다. 얼른 몸을 일으켜 주차장으로 내려가 엄마집으로 시동을 걸었다.
중간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대전 가고 있어"
"엄마랑 연락했어?"
"아니 오늘 엄마 전화 안 받았어"
이미 이모에게 연락받아 엄마의 연락두절을 알고 급하게 내려오는 동생이었다. 서로 아직은 꺼내기 힘든, 아니 두려운 단어들을 암묵적으로 꺼내지 않고 일단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한편으로 담담한 마음을 챙겼다. 항상 최악을 생각하자는 나의 인생 철칙. 가까운 사람이나 내가 죽는 것도 항상 그것에 포함된다. 그러나 그 최악이 왔을 때의 고통은 조금이나마 대처가능할 뿐 절대 가뿐히 넘어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보고 싶지 않은 엄마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어찌해야 하나 생각했다. 한 손으로 핸드폰에 119를 눌러두었다.
집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허겁지겁 집으로 올라갔다.
4층.
아파트 복도를 달려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고 집에서는 약간의 한기가 느껴졌다. 싸늘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얼마 전까지 냉방 중이었던 공간의 한기였다. 현관에서 엄마 방까지의 그 몇 미터 남짓한 거리.
얼른 달려가 침대 위를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집은 언제나 그랬듯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어떤 흔적이 없는가 했다.
집에서는 엄마가 없다는 이야기를 이모에게, 동생에게, 와이프에게 차례로 전했다.
그래도, 그래도 최악은 면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집안을 둘러보다 작은 탁상 달력을 보았다. 엄마는 날짜마다 작은 네모칸에 그날의 일을 개조식 일기처럼 적어두었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말이다. 오늘 날짜의 네모칸은 아직 비어있다. 어제 날짜에는 복숭아를 얼마에 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저번주 일요일에는 계룡 다리에서 다슬기를 잡았다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그래 다슬기. 엄마는 다슬기를 잡으러 갔을 것이다. 그리고 주차장에 엄마의 차가 없었다.
예전에도 간혹 들어 계룡 어딘가라고만 알고 있지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하였다.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가 다슬기를 잡으러 가는 곳이 어딘지 물었다. 이모도 가끔 부산에서 올라와 엄마와 함께 그녀들만의 여가를 보내는 곳이다. 이모는 그저 엄마와 함께 차를 몰고 갔던 곳이었기에 정확한 위치를 지도 위에서 짚어내지는 못하셨다. 대신 몇 가지 단서를 알려주셨다.
다리 2개가 교차하는 곳.. 근처에 LG주유소가 있다(아마 GS일 것이다).. 다리 밑에까지 차를 몰고 내려가 주차를 해둔다..라는 내용까지였다.
이 정도 단서만 가지고 찾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만약 지금 엄마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생겨서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는 상태면 어쩌나. 나는 일단 엄마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다시 차를 몰고 공사가 한창인 복잡한 도로를 복잡한 심정으로 달렸다. 계룡은 내가 오래 근무했던 곳이기에 대충의 지리는 알고 있으나 수많은 다리와 수많은 물가가 있기에 그 정도 단서만으로 장소를 특정하긴 어려웠다. 이모가 말한 LG주유소도 만약 상호명을 헷갈린 거라면 이 과정은 더 어려워진다.
일단 계룡에 진입하여 첫 번째 GS주유소 근처에서 빠지는 도로로 들어갔다. 좁은 시골길에 다슬기를 잡을 만한 물가는 전혀 보이지 않은 곳이었다. 길 중간에 차를 세우고 다시 한번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시골길이어서 차가 없을 줄 알았는데 왠 큰 덤프트럭이 뒤에서 경적을 울렸다. 허겁지겁 차를 한쪽으로 치우고 지도를 살펴보니 조금 더 올라간 곳에 다리 몇 개가 교차되는 듯한 곳이 보였다. 일단 그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과거 나의 출근길을 긴장감을 가지고 서서히 살펴 올라갔다. 지도의 그곳에 이르러 큰길에서 작은 길로 들어서 물가가 보일만한 곳으로 차를 몰았다.
저 멀리 또 다른 GS주유소가 보였다. 그리고 다리 2개가 교차된 듯한 구조와 함께 저쪽 먼 다리 아래 흰색 차가 보였다. 나는 차를 다리 중간에 세워두고 아픈 몸을 이끌고 전력질주로 흰색 경차를 향해 달려 내려갔다.
엄마차 번호임을 확인하고 풀숲 저편 넘어 물가를 바라보니 초록색옷을 입은 여자 한 명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안에서 뉘엿뉘엿 걷고 있었다.
"엄마!!!!!!!"
"으잉? 니가 웬일이야?"
"아 진짜 엄마 미치겠네!!!"
나는 천진난만하게 자기만의 놀이터에서 다슬기를 잡으며 놀고 있는 엄마를 줌인 동영상으로 찍어 여기저기 공유하며 이 사태를 종결시켰다. 엄마의 핸드폰이 차 안에 있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찻소리로 시끄러운 물가에서 큰소리로 엄마에게 설명하며 이모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엄마의 존재를 보여주었다. 그제야 함박웃음으로 안도하는 이모.
"아이고 내가 설레발쳐서 느그들 걱정시럽게 했네"
동생은 20분 정도 뒤면 집에 도착한다고 하였다. 이모의 언니 걱정덕에 예정 없던 가족 회식을 하게 되었다.
엄마와 내가 각각 차를 몰고 집에 오니 동생도 정확히 같은 시간에 집 앞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이미 안도하는 마음이 더 커진 나와 동생의 어안이 벙벙해 보이는 표정에는 온도차가 있었다.
엄마가 집에 들어가 씻고 밥을 먹으러 가기로 하였다. 엄마 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때,
동생이
"내가 지금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 줄 알아"
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아유 내가 우리애기 걱정시켰네"
같이 눈시울을 붉히며 동생을 품에 안아주는 엄마였다.
동생은 이모의 전화를 받고 친구와의 약속 중 1시간 반 거리를 1시간 만에 달려온 것이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동네 고깃집에서 오늘 엄마와 두 아들은 아직 행복한 한번의 식사를 더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