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by 전야감

이별하였다. 1년 반 동안의 인연이었다. 이미 헤어지려던 마음을 이를 악물고 견디고 견뎌왔다. 2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이제 헤어질 때라고 생각했다. 막상 진짜 이별을 앞둘 때는 덤덤해진다. 인연을 이어갈 모든 힘이 소진되었음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탁구를 그만 배우기로 하였다. 작년 6월부터 배우기 시작한 탁구가 벌써 1년 반이 되었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돈이 많이 들지 않고 부상의 위험도 현저히 적으며 간편하게 어디서든 칠 수 있는, 심지어 부부가 나이를 먹어서도 칠 수 있는 스포츠기에 배우기 시작했었다. 초등학교 때 다니던 태권도를 제외하면 운동을 레슨 받은 것이 처음이기에 그 자체로의 설렘도 컸다.


3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처음 화가 치밀어 올랐다. 3개월은 완전 초보를 벗어나야 하는 시기라는 나름의 기준 때문이었다. 포핸드 랠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백핸드는 여전히 감도 못 잡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충분한 연습시간을 가지지 않았기에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나 분노의 이유는 태생적인 운동신경 부족이었다. 이 정도 연습시간이어도 운동신경이 우수하다면 충분히 잘했을 거라는 생각인 것이다. 굉장히 오만했다.


그래도 꾹 참고 계속해서 레슨을 진행하였다. 어느 순간 작은 깨달음들이 있었고 그 깨달음은 다시 기포가 되어 사라지기도 했지만 시간을 거듭함에 따라 그래도 어느 정도의 형태를 만들어갔다. 센터에서 알게 된 몇몇 분들과 연습을 진행하기도 했고 처음 레슨 받았을 때 찍었던 영상과 비교하면 꽤나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두 달 간격쯤으로 찾아오는 벽은 여전히 나를 분노케 했다. 코치님의 설명이 나에게는 매우 분절적으로 접수되었다. 성인이 되어 외국어를 한국어에 빗대어 배우듯, 탁구의 동작과 기술들이 뇌에 한 장면씩 천천히 입력되었고 이를 연속적으로 빠르게 재연하는 것은 꽤나 힘든 작업이었다. 그리고 어떤 기술에 대해 내가 이미지적으로 갖고 있던 습관을 버리는 것이 고역이었다. 코치님이 반복적으로 지적해도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진전은 있었고 올해 중반쯤부터 나는 동호회를 들어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


레슨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기본틀은 가지고 있기에 이를 실전에서 다양한 상대와 겨뤄가며 갈고닦아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런데 동호회 가입이 왠지 쉽지가 않았다. 동호회 활동을 할 만큼 내 삶을 충분히 할애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코치님도 어느 순간부터 동호회 가입을 적극 권장하였지만 다음 달에, 다음 달에 라는 애매한 답변만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올 9월, 러닝에 푹 빠지게 되었다. 웨이트와 러닝은 20살이 이후로 간헐적으로 해오던 것이었으나 이번엔 러닝에 심각하게 빠져버렸다. 우리 동네 천변을 뛰는 것은 주로의 고저로 인해 항상 고된 일이었는데 갑천변의 평탄한 주로를, 탁 트인 풍경과 함께 뛰고선 그냥 맛이 가버렸다. 두 달간 이런저런 부상을 달고 회복하며 러닝에 심취해 갔다. 탁구도 여전히 병행하였는데 오히려 나의 주 포커스가 러닝으로 옮겨가니 탁구에 대한 심리적 집착이 줄어서인지 탁구가 더 잘되는듯한 기분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몇 개월 흘러 이 추운 겨울에도 나는 러닝을 멈추지 않고 있다. 러닝화 개수는 늘어갔으며 매달 마일리지도 착실히 채우고 있다. 새해를 앞두고 이제 탁구 레슨 연장에 대해 차분히 고민해 보게 되었다. 정체기를 겪고 있는 이 탁구실력을 늘리기 위해선 동호회 가입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러닝에 빠진 내게 그 에너지는 더더욱 부족할 것임이 명확했다. 결론은 이별이었다. 지난 1년 동안 몇 번이고 접을까 고민했던 마음을 차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지막 레슨이 끝나고 코치님에게 잠시 쉬겠다고 하였다. 탁구를 완전히 접겠다는 마음은 아니기에 쉬겠다는 표현은 진심이다. 코치님은 말리는 말도 전혀 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네"하고 말았다. 나보다 4살 정도 어린 남자 코치님인데 그동안 든 정도 많기에 그의 대답에 더 큰 서운함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눈인사를 나눈 그의 눈에서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에게 조금 더 자세한 말로 톡을 보내 레슨을 그만두는 뜻을 전하고 아쉬움 가득한, 언제나 기다리고 있겠다는 답을 이른 새해인사와 함께 받았다.


지난 1년 반간 탁구에 대해 설렘과 애증이 가득했던 나의 감정과 인간적인 교류를 가졌던 코치님에 대한 생각이 뒤엉켜 잠시 슬픔에 잠겼다. 정말 오랜만에, 오래 정을 나눈 연인과 헤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별에 대한 감정은 어찌보면 어떤 타자와의 헤어짐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담았던 나의 마음과의 헤어짐에 있는가 싶다. 그렇게 나는 마흔을 앞둔 겨울에 이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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