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순간에 느낀 것

러닝 6개월 차 10km 대회

by 전야감

처음 고통이 지속된 곳이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계속 170대의 고심박으로 달렸기에 아마 3킬로 지점부터 본격적인 고통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럴 때는 하프마라톤을 상상한다. 하프마라톤이라면 16킬로가 남은 시점이 10km 대회에서는 고작 5km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확실히 반환점을 돌 때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종이가 절반 접히는 기분이 든다. 접합부부터 빠르게 양면이 맞닿아 간다. 빠른 속도로 두 면이 한 면으로 합쳐진다. 이제는 시작보다 끝과 가깝다는 감각이 지배하기 시작한다. 반대편에서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에 내가 꽤나 선두권이라고 느낄 수 있다. 그 잔잔한 우월감이 고통과 피로를 덜어주진 않지만 그래도 증폭제는 된다.


내 앞에 보이는 나와 속도가 비슷한 남자들. 그들은 왠지 편해 보이는 페이스로 뛰고 있다. 속으로는 저렇게 편하면 왜 더 빠르게 뛰지 않지?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병목보다는 용이하지만 앞의 사람을 제쳐나가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괜히 페이스를 오버하다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엔 앞 주자 뒤에 붙어 그와 페이스를 함께한다. 이 사람도 충분히 빠른 페이스니까 같이만 뛰어도 내가 원하는 목표는 채울 거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뛰다 보면 그조차도 절대 쉽게 뛰고 있지 않다라는 걸 그의 숨소리에서 눈치챌 수 있다.


아 당신도 힘들구나. 그럼 내가 앞지를게.


그렇게 한 명씩 한 명씩 앞질러 간다. 뒤에서 나를 앞질러간 사람보다 내가 앞지른 사람이 더 많았다. 그리고 내가 추월한 사람이 다시 나를 추월한 경우는 없었다. 2.5킬로가 남은 시점, 5킬로 반환점이다. 펀런을 하는 5km 대회 주자들이 몇 무더기씩 보인다. 나는 그들 사이를 뚫으며 마지막 스퍼트를 올려야 하는 10km 주자이다. 뛰기 전부터 공포스러웠던 바로 그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10km 레이스는 이래서 무섭다. 빌드업 없이 처음 시작한 페이스가 2킬로를 남긴 이 시점에도 달리고 있는 그 페이스이다. 처음부터 피크를 친 심박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킬로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지만 4분 페이스로 달린다 해도 8분이나 남은 시점이다.


아 정말 힘들다. 심장이 터지려 하고 다리가 풀릴 거 같은 미세한 감각이 저릿하다. 달리며 잠시 눈을 감아본다. 눈앞의 현실에서 잠시 이세계로 워프 한다. 마치 달리고 있는 내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다시 눈을 떠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비상상태의 몸으로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다. 힘들어도 속도를 조금 더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나이에 여기서 더 무리를 하다가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극한의 부상이 찾아올 것 같은 두려움이 공존한다.


1km가 남았다. 이제는 잡생각은 접고 그냥 더 달려야 한다. 달리고 달린다. 저 멀리 결승점이 보인다. 생각보다 멀리 있다. 욕이 나온다. 워치에서 보이는 거리보다 실제 거리는 몇백 미터가 더 남아있는게 정말 거슬리고 화가 난다. 시계를 언뜻 보았을 때 내가 목표한 기록을 훨씬 상회할 것 같다. 1분이라도 더 줄여야 한다. 몇 초 차이로 분이 넘어가는 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마지막 스퍼트로 결승점을 통과한다.


45분 37초. 목표를 2분은 상회한 차고 넘치게 만족할 기록이다.

겨울 간의 훈련은 거짓이 없었구나. 이래서 러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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