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 자기 몸을 쳐다봤어요. 눈이 아플 정도로 주~~~황색이었어요. 하지만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어린이들도 좋아하고 고급 명품가방에도 어울리는 예쁜 색이라고 생각했지요. 당근은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어요. 밑으로 내려갈수록 몸통은 작아졌고 가장 큰 것이 머리통이었어요.
"나도 날씬해지고 싶어"
어느 날 당근은 모둠샐러드를 만났어요. 모둠샐러드 몸에는 여러 친구들이 뒤섞인 채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었지요.
"모둠샐러드야, 나는 네가 너무 예쁜 거 같아. 초록색, 연두색, 까만색.. 어? 그거 나랑 색깔이 똑같네?"
"맞아 이건 너야 당근아. 나는 너의 가느다란 모습도 있거든"
당근은 모둠샐러드에서 본 주~~~황색이 자신일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모양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죠. 모둠샐러드 안에 있는 주~~~황색은 가늘고 길쭉했어요. 야들야들해 보이고 갸냘퍼보였지요.
"나도 저렇게 날씬해지고 싶어"
당근에게는 꿈이 생겼어요. 진짜 꿈만 꿔야 되는 꿈이 아니었어요. 당근도 모둠샐러드의 주~~~황색처럼 똑같이 가늘고 길쭉해질 수 있어요. 당근은 그렇게 날씬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고민했어요.
다음날, 당근은 오이를 찾아갔어요.
"오이야, 나 가늘고 길쭉해지고 싶어"
"내가 보기에 너는 이미 가늘고 길쭉한 거 같은데. 더 가늘고 길쭉해지고 싶어?"
"응. 나는 머리도 크고 뚱뚱하단 말이야. 어제 모둠샐러드를 봤어. 모둠샐러드에도 내가 있었어. 거기에 있는 나는 가늘고 길었다고"
"음.. 방법이 있긴 한데 쉽지는 않을 텐데"
"어떤 방법이야? 궁금해, 알려줘. 부탁할게"
"나도 사실 정확히 아는 건 아니야. 며칠 전에 냉면을 만났는데, 글쎄 냉면 안에 내가 있지 뭐야. 그래서 냉면에게 물어봤어. 그 가늘고 길쭉한 게 나 맞냐고 말이야"
"그랬더니?"
"내가 맞다는 거 있지. 그리고 그 가늘고 길쭉한 나는 어떤 사람이 만들어 준거래.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숭덩숭덩숭덩숭덩.. 말이야"
"숭덩숭덩? 칼로?"
"응, 너무 아플 거 같지 않아? 나는 가늘고 길쭉하지 않아도 좋아. 칼로 숭덩숭덩하는 건.. 상상도 하기 싫어"
당근은 칼을 떠올리며 순간 흠칫했지만, 방법을 찾게 되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어요. 그리고 자신을 예쁘게 썰어줄 주방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어떤 주방장은 자신이 없다며 돌아가라고 했지요. 또, 어떤 주방장은 당근을 자를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바쁘니 빨리 나가라고 당근을 다그칠 뿐이었죠. 비슷한 대답만 듣고 실망한 당근은 기운이 빠져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고 있었어요.
"날 그렇게 만들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그러던 중 당근은 어떤 가게 옆을 지나게 되었어요. 가게 안을 슥 쳐다보니 이제 막 만들어진 요리가 배달되려는 참이었어요. 그 요리에는, 세상에! 모둠샐러드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가늘고 길쭉한 당근이 있었어요. 그 요리는 양장피였고, 그 식당은 중국집이었지요.
"이곳이야! 이곳 주방장은 나를 예쁘게 썰어줄 수 있을 거야!"
너무 신난 당근은 한달음에 주방에 찾아가서 주방장에게 말했어요
"저를 썰어주세요! 저도 저기 있는 저 요리처럼 예쁘게 썰어주세요! 부탁이에요. 빨리요!"
"그.. 그래. 그렇게 급하면 빨리 썰어줄게"
당근은 온 얼굴에 웃음을 띄운 채 도마 위에 누웠어요. 그리고 눈을 감고 상상했지요. 곧 가늘고 길쭉해질 거야. 나도 모둠 샐러드가 될 거야.
'텅! 텅! 텅! 텅!'
.
.
.
.
.
.
.
.
.
.
.
.
.
.
으..음..
당근은 눈을 뜨고 잠시 멍해 있었어요.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천천히 생각해 보았지요. 곧 자신이 가늘고 예쁘게 썰어질 거라는 게 생각났어요. 잠시 현기증과 두통이 났지만 이제 예뻐진 모습을 볼 생각에 기뻤어요. 뭉툭하고 볼품없는 몸뚱이는 이제 안녕이에요. 크고 멍청한 머리통도 이제 안녕이에요. 당근은 자신의 몸을 조심조심 살펴보았어요.
'어.. 이게 뭐지?'
당근의 몸은 가늘고 길지 않았어요. 당근의 몸은 둥글고 넓적했어요. 당근은 너무 당황했지만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주방장님! 주방장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제가 지금 어떻게 생긴 거예요?"
"그야.. 너는 당근이니까 당근처럼 생긴 거지"
"그게 아니고요. 왜 제가 아까 양장피에 있는 모습처럼 가늘고 길쭉하지 않냐구요!"
"양장피? 아 너는 양장피에 들어가지 않아. 너는 탕수육 소스가 될 거란다. 저기 튀김 건지고 있는 거 보이지? 곧 전분가루를 풀고 간을 하고 물이 쫄아들면 넌 저기로 들어갈 거야. 그래서 둥글고 넓적한 거 아니겠니"
"네? 탕수육 소스에 들어간다고요? 전 가늘고 길쭉하게 잘리고 싶었다구요. 망했어요. 전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죠? 전 둥글고 넓적하고 싶지 않았다구요"
"탕수육 소스에는.. 가늘고 길쭉한 당근은 어울리지 않아. 너처럼 둥글고 넓적해야 어울리지. 그래야 보기도 예쁘고 식감도 살아난단다. 당근이 가늘고 길쭉하면 다 뭉개져버릴 거야. 그럼 그건 소스에 쓸 수가 없어"
당근에게는 선택지가 없었어요. 이미 탕수육에 들어갈 둥글고 넓적한 모양으로 썰려버렸어요. 체념하고 당근은 요리사의 손놀림에 몸을 맡겼어요. 눈물이 흘렀지만 전분물에 뒤섞여 아무도 알아볼 수 없었어요.
따끈따끈하고 바삭바삭한 새하얀 탕수육 고기가 그릇 위에 올라가고 그 위에 탕수육 소스가 부어졌어요. 바스러지기 직전까지 익은 당근은 힘없이 흘러 탕수육 고기 위에 안착했지요.
"엄마, 탕수육이 너무 맛있어 보여요"
"그러게 말이다. 저 예쁜 당근이 있으니까 더 맛있어 보이네"
당근은 귀를 의심했어요. 둥글고 넓적한 당근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날 보고 예쁘다고 했어요. 가늘고 길쭉하지 않아도 예쁘다고 했어요.
"맞아요 엄마. 소스에 잇는 야채도 먹어도 돼요?"
"그럼 왜 안 되겠니. 보기에도 예쁘고 건강에도 좋은 야채들이란다. 여기 당근이랑 같이 집어서 먹어보렴"
당근은 다짐했어요. 저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 자신의 모든 영양소를 힘껏 주기로 말이에요. 나는 예쁜 당근이에요. 나는 몸에 좋은 당근이에요. 가늘고 길쭉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예쁠 수 있어요. 둥글고 넓적해도 사랑받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