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은 누구나 두렵습니다. 지금은 뷰티 산업의 거대 기업이 된 Estée Lauder가 Estée Lauder가 1946년에 화장품 회사를 시작했을 때였어요. 제품을 만들 돈도 없고 큰 공장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믿는 레시피를 바탕으로 집에서 스킨케어 제품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클렌징 오일, 스킨, 로션, 슈퍼 리치 만능 크림, 크림팩 등의 제품으로 시작했습니다.
Estée의 가장 큰 두려움은 이미 거대하고 확고한 기업들로 가득 찬 화장품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의 여부였습니다. 이 회사들은 광고에 쓸 돈이 많았고 모든 주요 상점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Estée는 이 모든 유명 브랜드들 사이에서 자신의 작은 브랜드를 눈에 띄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Estée는 값비싼 광고에 돈을 쓰지 않고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는 영리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샘플을 만들었습니다.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 확인하고 더 많은 것을 사러 다시 올 것이라고 믿었지요. 무료 샘플을 나눠주기로 결정을 하고 Estée는 미용실과 호텔을 방문하고 만난 여성들에게 샘플을 제공했습니다.
샘플을 써 본 사람들은 만족해했고 덕분에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Estée의 제품은 많은 여성들이 애용하는 화장품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저도 Estée Lauder와 같은 심정이었어요. 그날은 창업한 문구점의 첫날이었습니다. 문을 열기로 한 순간부터 어떤 어려움과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예상은 되었지만, 부딪쳐 보자고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서울 강남, 서초구의 사무실과 주택이 반반가량인 지역에서의 문구점 오픈이었습니다.
사무실과 주택이 공존하는 이 지역 특성상 학생들의 제품도 구비가 되어야 했고, 사무용품도 모두 갖추어져야 했습니다. 작은 문구점이지만, 차곡차곡 제법 많은 물건들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Estée Lauder가 홍보했던 것처럼 우리도 회사와 크고 작은 사무실에는 홍보용 메모지를 돌렸습니다. 약도와 취급품목이 빼곡히 인쇄가 되어 있는 문구점 오픈을 알리는 메모지였습니다.
첫날, 이른 아침 학생들의 등교 시간에 맞추어 문구점을 오픈했습니다.
아침부터 새로이 문을 연 문구점을 호기심 가득한 꼬마 손님들이 들이닥쳤어요. 이것저것 물어보고 만져보고 한바탕 정신을 쏙 빼놓았지요. 등교 시간에 맞춰 아이들 손님들이 나가자, 곧이어 사무실 분들이 한분 한분 새로이 오픈한 문구점을 찾아 주셨습니다.
두려운 반, 반가움 반으로 고객 맞이에 최선을 했습니다. 문을 연 첫날부터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나타났습니다. 걱정과 달리 예상보다 많은 손님들이 찾아주셨고, 많은 일들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두려움보다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겠다는 용기가 불끈 솟았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첫날부터 일어났어요. 대량 주문이 들어온 것입니다. 방금 오픈을 해 문구들의 위치도 겨우 알고 있는데, 대량 주문이라니요. 양도 많지만 그보다는 단시간 내에 해결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문구의 주문은 전날 해야 하는데 당일에 제품을 구입하기를 원하는 고객들이 있었어요. 빠른 대처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배달해 달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장 배달용 오토바이가 있어야 했고, 빠른 시간 내 물건 확보가 필요했어요.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척척 해냈지만, 초기에는 늘 긴장상태였지요. 퇴근해서 들어오면 그냥 퍼져서 누워버리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도장파기에 실전에 들어갔습니다. 연습은 몇 번 해봤지만 실제로 손님의 이름으로 도장을 파보는 일도 첫날에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다루어 보는 컴퓨터와 도장 파는 기계 앞에서, 손도 마음도 모두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지요. 단순한 막도장도 아니고 하필이면 파기 까다로운 양면 결재도장의 주문이었습니다. 한쪽에는 이름을 파는 데 성공했어요. 그런데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반대편에 성을 파는데 까지는 진행을 했습니다만, 어머나 성을 잘못 입력을 하여 남의 성을 파버렸어요.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첫 고객분께, 솔직히 말씀을 드렸지요. 첫날 처음 해보는 도장파기에, 당신이 나의 첫 손님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됐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라 했습니다. 흔쾌히 기다려줬습니다. 첫 번째 작업인데 앞면은 성공하셨으니 실패한 게 아니라고 절반은 성공한 거라고 이해를 해줬습니다. 거듭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며 다음번엔 숙련공으로 다시 만나자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그분의 배려로 산 하나를 건넨 샘입니다.
당장 준비된 제품은 없지만, 없는 것도 만들어서 판매를 해야 한다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고객이 제품을 필요로 하는 시간을 확인하고, 도매상에 문의를 하여 제품의 재고가 있는지 확인하고, 구해 드리겠다고 당당하게 약속을 했습니다. 첫 고객을 절대 놓칠 수는 없다는 비장한 마음이 아주 컸지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구해 드리는 것이 당연한 우리의 책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동대문 문구 도매상에서는 클립보드와 필기구를 50세트씩 구매를 해 와야 했고, 양재동 도매상에서는 대형화이트보드와 보드판 받침대, 우드락종류를 구매해와야 했습니다.
도매상은 오전에 한차례 배달을 하고, 오후 배달은 없는 관계로 직접 발로 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벌써 퇴근시간이라 차는 막히고 동대문과 양재동을 동시에 돌아와야 하는데 이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개업첫날 문구점에서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 하자, 동대문도매상에서는 잠실로 귀가하시는 직원분이 계신다고 배송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양재동 도매상에는 직접 가지러 가야 했습니다. 도매상의 퇴근시간이라 창고 문 앞에 놓아주기로 하였고
저녁도 먹지 못하고 가지러 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첫날은 지나갔습니다.
첫날 분주하게 움직여서 첫 고객을 잘 붙잡은 덕분에 사업 초기를 별 어려움 없이 넘길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문구점이 있어서 정말 좋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그날부터 단골 고객이 되어 주셨습니다. 29년 지금까지 장기적인 단골손님으로 남아 계십니다.
먹물처럼 퍼진 용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흔들림 없이 다잡게 했습니다. 고객들이 기대하는 서비스를 발 빠를게 제공하고, 상품들을 잘 소개하며, 원하는 상품들을 원하는 시간에 준비해 주는 데 집중하였더니 많은 분들께서 믿고 맡겨 주셨지요.
모든 자영업이 그렇겠지만 문구점을 운영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사람으로부터 상처받게 되는 일도 생깁니다. 몇 번 우표를 구매한 고객이 오늘은 많은 양의 우표를 외상으로 달라고 했습니다. 개업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아 고객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황인데 본인이 여러 번 왔었다고 하면서 25만 원어치의 우표를 요구했어요.
3일 뒤에 돈을 갖고 오겠다고 연락처를 남겨 주고 외상을 하고 갔습니다. 3일 뒤에도, 일주일 뒤에도 연락도 되지 않았고,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29년 전에는 우표가 많이 사용되던 시절이라 우표의 판매량도 제법 많을 때였어요. 한 번에 많이 판다는 생각에 들떠서 외상이 무서운 건지 몰랐습니다. 사람을 더 믿었던 시절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크게 한방 맞은 초보 문구점 주인장의 마음은 꽤나 아팠고, 꽤나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꼭 나쁘게만 작용하지 않았어요. 한 번의 속임에 다시는 당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면서 욕심을 내려놓는 계기가 됐어요. 어리숙하게 당해 오히려 상대를 죄짓게 하지 않았나 스스로를 반성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 오히려 소중한 고객들과의 유대를 더욱 잘해 나가는데 힘을 쏟게 됐지요. 개업 초기의 치른 수강료 덕분에 문구점의 초석을 잘 쌓게 된 듯합니다.
문구점에서의 이야기는 쭈욱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