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행사라든지, 동네의 큰 행사라든지, 많은 일들이 여기에서 의논하고 홍보의 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지요. 모두가 편하게 생각하고 의견을 나누는 곳이 되었습니다. 햇살 같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은 문구점을 단순히 상업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 동사무소로 잠시 짬 내서 달려갑니다. 동사무소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일인 일 악기에 목표를 두고 하모니카를 배우기로 하였답니다. 일 년을 배우고 2년 차에는 구청에서 행사가 있었지요. 구민들이 참여하는 문화행사에서 당당히 저희 동네 하모니카 합창단이 2등이라는 쾌거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2등의 성과를 거둔 뒤에 주민센터에 회식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동장님께서 격려차 오셔서 인사를 나누던 자리에서 문구인쇄를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어요. 동사무소의 사무용품 등을 이용해 주실 것을 부탁드렸어요. 그런데 정말로 다음날부터 단골 고객이 되어주셨지요. 이제 동사무소 직원들과도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됐습니다. 이웃도 알게 되고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니 생활의 활력소가 되더군요.
아직은 컴퓨터 작업이 서툰 시절이었어요. 고단한 업무 속에서도 언제나 따뜻하게 응원해 주던 거래처 사무실의 친절하고 어여쁜 여직원이 있었습니다. 그 젊은 직원은 컴퓨터초보자의 SOS를 언제나 성실하게 도와주었습니다. 동네의 고객분들이 워드작업을 맡길 때가 수시로 있었는데, 워드작업마저도 초보였던 저는 그 젊은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주위에 있으면서 도움의 손길을 늘 기 다려 주었던 마음씨 착한 천사 같은 아가씨의 따뜻함은 절대 잊지 못할 일입니다.
그 친절한 여직원은 시간이 흘러 결혼도 하였고, 다섯 살이던 아들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 서로를 지지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멀리 목포로 가서 살고 있지만,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가족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소중한 인연은, 회사의 어려워진 형편으로 자기의 처지를 제게 의논한 여직원이 있었지요. 마침 직원을 구해 달라는 다른 회사가 있었던 터라, 그 직원의 대표님과 의논 끝에 실직 위기에 처한 여직원을 소개했습니다. 작은 문구점 주인장이 이직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게 됐답니다. 늘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 여직원은 어려운 형편의 회사에서도 큰 부담이 되었던 게 사실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양쪽 회사에서 다 감사의 인사말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직장을 얻은 그 친구는 날마다 문구점에 들려 눈도장을 찍고 가곤 하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놀랍게도 그는 그 회사에서, 서로 한눈에 반해버린 연하남과 연애를 시작하였고 머지않아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그녀는 언제나 “사장님 덕분에 좋은 기회를 얻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요” 라며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문구점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삶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주었습니다. 문구점을 운영하면서, 늘 어르신들의 지혜와 어린이들의 호기심은 받아들이고, 중, 고등학생들에게 덕담과 용기는 필수입니다. 문구점에 들어오시는 모든 고객분들께는 어떤 말이라도 해서 웃고 나가실 수 있도록 마음을 먹었지요.
“우와 신발이 예뻐요.”
“어머 네일 아트 진짜 예쁜걸요”
“남방색상이 너무 잘 어울리시는데요.”
잘생긴 훈남이 들어오면, “어머, 언제부터 이렇게 잘생기신 거예요.”
하하하 민망해하면서도 싫지는 않은지 코가 벌름해서 나간답니다.
오랜만에 오는 고객이 있을 때면 “오늘 얼굴 볼 수 있어서 정말 기분 좋아요”라고 하면 “저도요”라고 답하며 기분 좋아하지요 관심을 갖고 오늘도 내일도 고객 응대를 하다 보니 오시는 손님들도 정말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오시고 지나시다가도 인사를 하고 가시고, 살 맛 나는 동네 카페가 됐습니다.
여기 또 다른 저에게 너무도 소중한 한 인연이 있습니다. 종일 학원에서 학생들과 씨름하시던 아들의 논술 학원 원장님께서 공원으로 잠시 바람 쐬러 나오셨나 봅니다.
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에 입학한 해는 다섯 살이던 아들도 스카이대 대학생이 되었지요. 아들과 같은 학번으로 누가 먼저 졸업하나 대결하자며 시작하게 된 대학 생활은 새로운 마음으로 정말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군복무와 어학연수 등으로 아직 졸업이 저만치 있는 아들에게 꽃다발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먼저 졸업을 하게 된 영광의 그날을 잊을 수 없답니다.
졸업 후 원장님은 또 다른 동기부여로 저를 가만두지 않으십니다. “글 좀 써보시는 게 어때요?” “시인이 되어보시지요?” “책 한 권 저자가 되어 보실래요?” “동화 작가가 되어 보세요. 아마존에도 등록하시고 세계적인 동화작가가 돼 보시지요!” 원장님의 권유대로 저는 전자책 작가도 되었고, 국내 동화 작가, 아마존 동화작가로까지 등단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