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일본 자동차 회사는 경영 부진에 빠진 미국 자동차 회사를 흡수하며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폐쇄된 공장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미•일의 생활문화나 가치관, 생각의 차이 등으로 말미암아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이른바 ‘미•일 마찰’. 그런 미•일의 차이와 그에 따른 오해 등을 풍자적으로 그린 영화가 '겅호'(Gung Ho/1986년)다.
타이틀 겅호는 중국어 '공화'(工和)에서 온 말로,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일본어로 바꾸면 '간바루'(がんばる)다. 힘껏 버티며 분발하다는 뜻이며, 일본인이 응원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이 말이 처음 생긴 것은 메이지 시대 말. 부국강병에 힘을 쏟든 시기다. 그 부국강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게 체육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학교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질서정연하게 집단으로 행동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체조를 강조했다. 듬직한 체격을 만들며 집단의 규율에 따르는 학생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영화에서도 일본 자동차 회사는 체조로 시작한다. 이것에 대해 미국 노동자의 반응은 "멍미?"
이것은 야구 경기(실제로는 소프트볼 경기)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노동자 팀은 제각각의 유니폼을 입고, 적당히 알아서 몸을 푼다. 반면, 일본 경영자 팀은 "뉴욕 양키스가 온 줄 알았다"는 야유처럼 유니폼을 맞춰 입고, 2열로 서서 구호를 외치고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단체로 워밍업.
즉, 미국 노동자 팀은 각자가 긴장을 풀고 준비하는 메이저리그와 닮았다면, 일본 경영자 팀은 스프링캠프와 같은 매일 연습하는 일본야구와 닮았다. 덥든 춥든 경기 전에 몸을 푸는 것만으로 이미 1경기를 치른다.
이것은 야구만이 아니다. 회사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지사장인 가지히로는 "오직 성과로만 노동자의 가치를 평가한다. 회사가 전부다. 팀! 그래서 우리는 패전국에서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우리는 하나, 목표는 하나."라고 말한다.
"잇쇼켄메이 간바루"(죽기 살기로 분발한다). 가족과의 생활은 내팽개치고 오로지 회사. 야근은 기본이며, 새벽 별 보고 출근해서 달 보며 퇴근한다. 노동이나 삶의 질보다 양이 중요할 뿐이다.
예전에 어느 일본인 지도자에게 "어째서 일본야구는 많은 연습, 즉 연습량을 중요시하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메이저리그와는) 연습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팀 전체에서 탈락자가 나오지 않도록, 선수가 따라오게끔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즉, 열심히 하는 선수가 아닌 농땡이 치는 선수의 수준에 맞춰 연습 프로그램을 짠다. 그러다 보니 단체 연습이 많고, 연습 시간과 양이 중요시될 수밖에 없다. 또 코치는 선수가 농땡이 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역할이 되며, 자연히 코치 숫자도 많다."
자율(정확하게는 시스템이지만)보다는 강제. 그것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게 과도한 연습이 부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선수의 슬럼프는 90%가 피로에서 온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본 야구는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더 연습한다. 여기에 연습을 거부할 권리도 선수에게는 없다.
피곤한데 피곤이 더 쌓이는 연습. 오로지 '정신일도 하사불성'. 정신론이라는 미신이 지배하고 있다. 과학적 트레이닝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경험론을 내세운다. 몸은 21세기를 사는데 정신은 신화의 세계에 있다.
그런 미신 가운데 "투수의 어깨는 쓰면 쓸수록 단련된다"도 있다. 그런데 투수 코치로 잔뼈가 굵은 곤도 사다오 전 감독은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이라고 잘라 말한다.
"과거 명투수 가운데는 몇백구를 던지는 연습을 반복해, 비정상적인 투구 동작을 견뎌낼 육체를 만들어 왔다. 아니다. 그것을 견뎌낸 것은 가네다 마사이치, 벳쇼 다케히코 등 한 줌밖에 안 되는 초인들뿐이다. 대부분 투수는 과도한 투구 연습이나 등판으로 망가졌다. (중략) 스프링캠프 불펜에서 던지는 200구보다 시범경기에서 던지는 20구가 몸에 밴다. 쓸데없이 몸을 상하게 할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다."
영화로 돌아가서, 일본 경영자는 "죽기 살기로 분발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에 대해 미국 노동자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느냐?"라고 묻는다.
이 요구와 물음은 1980년대 중반 미국과 일본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영화를 다 보고 문득 정신을 차렸더니 2022년의 한국이 아닌 1970년대로 돌아간 듯한 이 기묘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