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야구와 관련한 소품이 나올 경우,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도 모르고 넘어갈 때가 잦다. 때로는 영상이 흐릿한 탓에, 때로는 배우 등에 눈이 팔려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들었을 때 뒤늦게 깨닫는다. "이런 장면에 야구가 있었을 줄은?!"이라며.
그 대표적인 영화가 '스팅'(The Sting/1973년)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1969년)에 이어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함께 출연한 사기꾼 이야기다. 영화에서 사기극은 경마와 관련돼, 야구가 등장할 여지가 없는 듯하지만, 딱 한 차례 야구와 관련한 그림이 나온다.
곤도프(폴 뉴먼 분)가 도일 로네간(로버트 쇼 분)을 사기극에 끌어들이기 위한 첫 작업은 열차 안 포커판이다. 포커판이 벌어지는 벽 한쪽에 걸린 그림에 주목한 이는 얼마나 있을까.
그림은 1800년대 중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만화가로 활동한 A.B. 프로스트의 드로잉 작품이다. 제목은 '결정적 순간'(The Critical Moment). 타자 주자는 1루를 향해 뛰고 포수는 송구된 공을 잡으려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홈 플레이트를 파고드는 주자. 1루 코치와 관중의 환호성 등을 보지 않더라도 세이프, 즉 득점의 순간이다. 그것도 동점으로 맞이한 9회 말 2아웃 만루에서 나온 득점. 결국, 그림의 내용은 영화의 결말과도 이어진다.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Josee, The Tiger And The Fish/2003년)도 그렇다. 장애인과의 사랑. 그러나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그 사랑은 좌절한다. 대학 졸업반인 쓰네오는 우연히 조제라는 여성을 알게 되고 호랑이를 보면서 사랑의 절정을 확인한다. 그러나 조제는 다시 물고기처럼 물속 깊은 곳으로 돌아가며 헤어진다. 즉, 제목이 내용을 전부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조제는 할머니가 죽은 후, 뒤늦게 찾아온 쓰네오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 조제의 방에 있는 장식장 위의 것들. 쓰네오의 방에 걸려 있던 3루를 돌아 홈 플레이트를 향하는 주자의 사진과 다이에 호크스의 인형(정확하지는 않지만 사사키 마코토로 기억하지만)이 눈에 띈다. 쓰네오의 고향은 후쿠오카. 그래서 다이에의 팬이다. 이 영화가 개봉된 것은 2003년. 당시부터 재정난에 시달리던 다이에는 이듬해인 2004년 소프트뱅크로 모기업이 바뀐다. 그런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번에는 미국 시카고로 날아가자. 시카고 출신인 존 맥노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형사 매드독'(Mad Dog and Glory/1993년). 로버트 드 니로가 소심한 형사로, 데이비드 카루소가 호라시오 반장과는 정반대인 '무대포' 형사로 나온다. 여기에 시카고 출신인 빌 머레이가 갱단 두목을 맡으며 드 니로와 엮인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드 니로와 머레이의 배역이 서로 바뀌었다면 좀 더 볼 만한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 야구와 관련한 것은 쉽게 찾기 어렵다. 머레이가 화이트삭스를 슬쩍 언급하는 장면은 있지만. 그렇지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보인다. 영화 시작부터. 살인 사건을 알리는 전화가 울리기 전, 경찰서 책상 위에 잡다한 물건 가운데 연필꽂이로 쓰는 머그잔이 보인다. 그 잔에 시카고 컵스의 로고가 딱! 사실 흐릿하지만 술집에서도 컵스의 로고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제목의 매드독은 드 니로의 소심함을 비꼰 별명이다. 이 별명을 가진 대표적인 선수는 그레그 매덕스. 컵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통산 355승을 거둔 '제구의 신'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영화가 개봉한 1993년에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이적한 첫해. 공교롭게도 매드독이 컵스를 떠난 뒤, 매드독을 다룬 영화가 개봉한 것이다(사실 매덕스가 매드독으로 불린 것은 브레이브스로 이적한 뒤지만).
마지막으로 최고의 SF 액션 영화로 손꼽히는 '터미네이터 2'(Terminator 2: Judgment Day/1991년)에도 야구와 관련한 게 나온다. 인류를 멸망으로 이끄는 스카이넷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다이슨 박사. 그의 아들이 쓰고 있는 것은 박병호로 친숙한 미네소타 트윈스 모자다.
이 영화가 개봉한 것은 1991년. 이해, 트윈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른다. 그때의 모자다. 당시 팀의 상징적인 선수는 커비 퍼켓. 그는 6차전 연장 11회에 끝내기 홈런을 때려낸다. 다이슨의 아들이 아버지의 목숨을 구한 것처럼. 아마 다이슨의 아들도 퍼켓의 팬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