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감독의 조건
야구 감독,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고 싶어 하는 직업이다. 자신의 의지가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필드에서 구현되는 쾌감은 세상 어느 것에서도 얻을 수 없다. 그만큼 책임감도 크다. 높은 수익률이 높은 위험성을 안고 있듯, 언제 성적 부진에 따른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 그 스트레스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케이시 스텐젤의 "감독 자신이 구단을 소유하고 있거나 경기 도중 그라운드에서 죽지 않는 한 언젠가는 해임되고 만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 야구 감독은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지만, 언제든 목이 달아나는 불안한 자리다. 즉, 현대판 '다모클레스의 검'이다.
그런 감독을, 화이티 허조그는 1973년 텍사스 레인저스를 비롯해 캔자스시티 로열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지휘봉을 잡으며 통산 1,281승을 거둔 명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런데 그의 선수 시절은 메이저리그에서 8시즌을 뛰며 634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친 전형적인 백업멤버였다. "나는 대스타가 되기는 애당초 글렀다는 건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최선만 다하면 발을 붙이고 지낼 수는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말하자면 누구나 미키 맨틀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선수가 자신의 한계를 파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중략) 팀 내에서 가장 필요한 선수는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자신의 역할에 만족할 줄 아는 선수들이다."
'명선수는 명감독 되지 못한다.' 야구계 속설 가운데 하나다. 김인식 감독은 이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도 "명선수의 경우, 명성과 연줄 등으로 구단 지원을 얻기 쉬워, 좋은 전력 구성을 갖출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무명의 선수보다 오히려 명선수가 명감독이 될 확률은 더 높다."고 지적한다. 그런데도 선수 시절에는 명성을 떨친 이가, 지도자로서는 명성은커녕 오명만 안고 사라진 경우가 동네 편의점 숫자만큼이나 흔하다. 어째서 그럴까? "대스타 출신이 대부분 그렇듯이 (테드) 윌리엄스도 지도자로서의 능력은 보잘 게 없었다. 윌리엄스나 미키 맨틀, 윌리 메이스 같은 천재 선수들에게는 야구가 그렇게 쉬운 운동일 수가 없겠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재능이 모자라는 선수가 플레이를 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중략) 감독을 맡은 윌리엄스는 그저 볼과 배트만 내놓으면 선수들이 자기의 현역 시절만큼 쳐낼 걸로 본 모양이다. 남달리 타격에 재능이 있던 그는 훈련시간을 거의 배팅연습에 할애했다."
선수로 성공한 이는, 지도자가 됐을 때 자신의 경험 또는 성공 체험을 절대시하는 덫에 걸리기 쉽다. 선수 시절, 성적이 뜻대로 나오지 않아 불면의 밤을 지새워 본 적이 없기에, 그런 선수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지를 못한다. 일례로 오 사다하루 소프트뱅크 사장은 선수 시절 항상 "지난해 3관왕에 오르거나 홈런 55개를 쳤다는 것은 확실히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은, 항상 스프링캠프에 들어갈 때가 되면, 올해는 어쩌면 홈런 1개도 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불안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그가 홈런왕이 아닌 한 사람의 지도자가 되는 데는 19년이 걸렸다. 자신은 변화했다고, 혹은 과거(선수 시절)의 영광을 이미 버렸다고 생각해도, 그의 지도를 받는 선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천하의 오'에게 지도받는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그와 선수 사이에는 태평양만큼이나 큰 간격이 있었다. 그것을 메우는 시간, 세월을 기다려주는 구단은 없다. 그렇기에 선수 시절에 성공한 이가 좋은 지도자로 탈바꿈한 사례가 적은 이유다.
사실, 허조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 토건업에 종사하며 사회도 배웠고, 야구계에 돌아와서는 스카우트, 코치, 팜 디렉터 등을 맡았다. 게다가, 한때는 감독과 GM을 겸직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제왕적 감독이었던 그였지만, 야구 경기는 선수가 한다고 말한다. "수십 년의 야구생활을 통해 터득한 진리는 훌륭한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펼쳐주면 감독은 자연히 명장이 된다는 것이다. 설령 무능한 감독이라 할지라도 좋은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해주면 1, 2년간은 명감독으로 군림할 수 있다. 거꾸로 아무리 훌륭한 감독이라 하더라도 허약한 선수들이 어설픈 플레이만 펼쳐낸다면 '저 감독이 언제 저렇게 멍청이가 됐누'하는 비웃음을 사게 된다. 감독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역량이라는 것은 구단이 좋은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 선수들이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지를 지켜보고 독려하는 것이다(이 역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는 감독이, 그것도 "우수한 감독이 자신의 힘만으로 끌어낼 수 있는 승수는 1년에 기껏해야 6승 정도"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작전이라도 선수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감독의 기능이란 게 얼마나 미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감독이 얼마나 주의 깊게 포석을 하고 있어야 하며 선수수급의 책임을 맡은 사람의 시야나 야구에 대한 조예가 얼마나 깊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략) 하나를 움직이면 다른 하나가 영향을 받게 되므로 전체적인 것을 조망할 수 있는 눈을 갖추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한 1987년을 그와 함께했던 이광환 서울대 감독은 그의 야구를 "인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스프링캠프부터 월드시리즈까지 끊임없이 인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인내. 평평한 바닥 위를 튀는 야구공은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야구의 필드는 언제든, 또는 어느 순간 불규칙 바운드가 나올지 모른다. 자기 뜻대로 경기가, 선수가 움직이지 않을 때,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묘수가 아닌 참는 것이다. 그것이 감독의 시즌 운영 능력이며, 감독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본 잣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