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까요?
왜 '야구소년' 신준호는 택시운전사가 됐을까
영화 '어디로 갈까요?'(2011년)의 신준호는 택시운전사다. 다만 김만섭과는 달리 부산이 활동 무대. 그런 어느 날, 서울에서 첫사랑을 찾아온 강희영을 손님으로 태운다. 미터기를 꺾지 않아도 되는 '호구'. 처음에는 딱 그런 관계였다. 그런데 희영과 함께 돌아다니는 사이에 인연은 깊어진다.
학창 시절, 준호는 야구 선수였다. 영화 속에서 어설픈 부산 사투리만큼이나 초보티가 확 풍기는 투구폼도 선보인다. 그가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포기한 이유는, 야구는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돈은 단순히 야구용품이나 야구부 회비 등에 드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경기 출장이나 진학을 위해서는 돈이 드는 야구계의 이면을 가리킨다.
실제로 돈이 없어, 야구를 중도에 포기하는 이도 적지 않다. 또 야구부 내 폭력이 원인이 돼, 야구선수의 꿈을 접는 이도 있다. 야구와 폭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래서 학원 야구를 군대에 비유하는 이도 적지 않다. 물론,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언어적 폭력은 물론, 체벌 등과 같은 물리적 폭력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야구 감독을 비롯한 야구관계자 가운데 폭력을 긍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폭력이 끊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야구계 폭력과 관련해 관계자 등에게 질문했을 때, 대부분 대답은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폭력은 옳지 않다.", "폭력은 반대한다." 등등. 그리고 이 말 뒤에는 항상 접속 부사가 붙는다. '하지만'이다. 그렇게 폭력은 용인되고, 질긴 생명을 이어간다.
야구계 폭력은 그렇게 먼 곳에,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지 않다. 느끼지 못할 뿐, 가까운 곳에 있다. 예를 들면, 일전에 초등학교 야구경기를 보는데, 어느 팀의 감독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과거, 구타로 유명한 지방 모 대학의 매질 전문 코치가 그이였기 때문이다. 그의 구타에 허리를 다쳐 선수 생명이 끊어진 이도 여럿 있었다. 그런 이가 여전히 야구계, 그것도 야구의 시작점인 초등학교 감독을 하고 있다. 야구계의 폭력 불감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그가 과거와 달리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다정다감한 지도자로 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과거의 폭력에 대해 피해자에게 사과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폭력에 대한 사과. 사적인 자리에서 그것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다만 여기서도 접속 부사가 붙었다. "예전에 쥐잡듯이 잡은 것은 미안하다. 하지만 그것은 감독님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야구계에서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추억'이다. 지도자를 비롯한 선수 가운데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학창 시절) 힘들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있었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낸 게 큰 자신감이 됐다." 등등. 희영이 첫사랑을 애틋하게 느끼듯, 어둠의 과거를 추억으로 여기는 야구인도 적지 않다.
또 한 가지 지적할 부분. 학창 시절 힘들었던 것은 지도자의 폭력만은 아니다. 선후배 간의 폭력도 빼놓을 수 없다. 상급생이 하급생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연습 후에는 집합. 잔소리와 함께 기합도 준다. 그 기합이 도를 넘어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신의 스트레스 등을 풀기 위해, 하급생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그런 일이 있었을 때, 기준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누가 야구를 잘 하느냐다. 상급생이 야구를 잘하면, 지도자 등은 눈을 감아준다. 만약, 하급생이 야구를 잘하면, 상급생은 지도자에게 "야구도 못 하는 XX가"라며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또 그것이 심각해졌을 때는 야구를 그만두거나 전학을 가기도 한다.
선수는 야구를 시작하면서 야구만 잘하면 모든 게 용인되는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운다. 또 선후배 간의 예의나 결속이라는 명목도, 야구와 폭력을 더더욱 밀접하게 만든다.
과거,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서 어느 선수가 모 팀에 7라운드 지명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선수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회장은 탄식으로 뒤덮였다. 이것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수많은 사고를 일으킨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은 것에 대해 반감을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솔직한 느낌은 '어째서 이제야?!'였다. 정상적이라면 탄식은 이미 그 전에 몇 차례나 나왔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선수든 먼저 지명을 받은 선수든, 프로의 기준 역시 야구를 잘하느냐 못 하느냐다. 그것은 그때만 그랬던 게 아니다. 언제나 그렇다. 그렇게 학원 야구에서 폭력은 생명력을 이어간다. 폭력 없는 곳에서 야구를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돈데보이, Donde V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