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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윤 Aug 12. 2022

레슬리 닐슨식 야구 주심 '총알 탄 사나이'

심판의 오심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차이점은 어디에서 오는가

2010년 11월 사망한 레슬리 닐슨은 '패러디의 황제'로 불렸다. 그가 웃기는 캐릭터 정착하게 된 계기는 '총알 탄 사나이'(The Naked Gun: From The Files Of Police Squad!/1988년)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하면서다. 이 영화에서 닐슨이 맡은 배역은 LA 시경 드레빈 경관. 근엄한 얼굴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해, 보는 이는 포복절도할 수밖에 없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을 암살하려는 조직과 그것을 막으려는 드레빈. 그들이 맞대결을 펼치는 최종 무대는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가 펼쳐지는 야구장이다. 다만 그 야구장이 에인절스의 홈구장인 애너하임 스타디움이 아닌 다저스타디움인 것은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야구장이 무대인 만큼 야구선수도 여러 명이 등장한다. 레지 잭슨은 '10월의 사나이'가 아닌 '7회의 사나이'로 나온다. 또 시애틀의 1번 타자는 제이 존스턴.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20년간 뛰며 8팀을 전전했다. 그런데 그 8팀 가운데 시애틀은 없다. 다만 메이저리그 데뷔한 팀이 캘리포니아. 결국, 유니폼을 입은 팀 대신에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팀의 선수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쨌든 드레빈 경관은 암살범을 잡기 위해 필드 안으로 들어간다. 그것도 구심으로.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하지만, 이내 관중의 반응을 즐기며 화려한 쇼를 펼친다. 그의 스트라이크나 아웃 콜 등은 과거 아메리칸리그의 명물이었던 론 루치아노를 떠올리게 한다. 아웃 등을 선언할 때 취하는 총잡이 포즈는 그의 전매 특허다. 또 아웃된 주자를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아웃을 선언하는 등 그의 동작은 항상 화려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필드의 발레리나'였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심판은 있는 듯 없는듯한 존재라고 하지만, 루치아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다. 필드 위에서는 항상 선수나 감독보다 더 눈에 띄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선수나 코치진은 물론, 그들이 상대를 안 해줄 때는 관중과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렇지만 얼 위버 전 볼티모어 감독 등을 제외한 대부분 코치진과 선수는 그를 좋아했다.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신뢰할 수 있는 심판이었기 때문이다.


선수가 아닌 심판을 매수해 경기를 조작할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루치아노의 대답은 "NO"였다. 그 이유는 "스트라이크와 볼을 계속 반복해서 선언하다가 보면 조건 반사적으로 본능적인 대응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런 그도 의도적으로 오심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한다.


구심을 맡은 어느 경기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포수 빌 프리한이 도발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그가 좀처럼 스트라이크를 잡아주지 않자, 공을 잡은 위치 그대로 미트를 움직이지 않는 무언의 항의를 계속해서 해나갔다. 게다가, 타석에서도 그의 판정이 잘못됐다고 중얼거렸다. 결국, 인내의 끈이 뚝 끊긴 루치아노는 오심으로 보복했다.



프리한의 타석 때 모든 공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한 것. 설령 투수가 던진 공이 태평양이나 대서양에 떨어진다고 해도, 그 공은 볼이 아닌 스트라이크! 게다가, 드레빈 경관이 그랬던 것처럼 투수가 공을 던지자마자 스트라이크로 선언하기도 했다(그 공은 홈 플레이트 앞에서 원바운드 했지만). 그렇게 삼진을 당한 프리한. 그러나 그는 어떤 항의도 하지 않았다. 오심이지만, 심판의 권위에 도전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루치아노 역시 명확한 볼을 2차례 스트라이크로 선언한 뒤, 화풀이를 그만뒀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일정한 공을 스트라이크로, 그 외의 공은 모두 볼로 선언한 그로서는 의식적으로 모든 공을 볼로 선언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심. 심판의 잘못된 판정은, 인간인 이상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비디오 판정의 도입 등으로 오심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오심은 야구의 일부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오심에 대한 팬의 생각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으로 여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 경기, 아니 한 이닝만 끝나도, 경기 채팅창은 심판의 판정에 대한 볼멘소리로 뒤덮인다.



왜 이런 차이가 나온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간단한 답은 '신뢰'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오심은 꽤 나온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의 실수로 여긴다. 반면, KBO리그에서 오심은 어떤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승부처 등에서 황당한 오심이 나오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심에 대한 반발도 꽤 크게 나타난다.


물론, 그 의도는 실제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단순한 의심이다. 혹은 오해일 수도 있다. 심판들은, 그것이 실제로는 오해라고 해도, 왜 그런 오해가 나왔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너무나도 황당한 오심.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거기에 심판의 태도. 그런 것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상황이다. 그래서 "앞으로 클린 베이스볼을 해나가겠다"는 선언만으로는, 지금의 불신을 없애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뼈를 깎는 각오, 인적•물적 청산을 통한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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