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년. 1908년에 2번째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시카고 컵스가 또다시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르는 데 걸린 세월이다. 당시 시카고 컵스 사장인' 테오 엡스타인은 '퇴마사'로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 GM(단장)으로 '밤비노의 저주'를 끝낸 데 이어 컵스에서는 '염소의 저주'도 풀어냈으니까.
돌이켜보면, 28살 때 보스턴 GM이 돼 밤비노의 저주를 푼 것은 30살 때다. 야구계의 '원더 보이'다. 원더 보이란, 일찌감치 큰 성공을 거둔 사람, 혹은 신동을 의미한다. 원더 보이라고 했을 때 영화를 좋아하는 야구 팬이라면 '내추럴'(The Natural/1984년)을 떠올릴 것이다. 야구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로이 홉스의 배트 이름이 원더 보이다.
사실 이 영화의 제목 '원더 보이즈'를 처음 봤을 때, 그런 이유도 있어 또 한 편의 야구영화가 나온 줄 알았다. 야구 천재들의 경쟁. 오혜성과 마동탁이 라이벌을 이루는 이현세 만화처럼. 그러나 실제 영화 내용은 전혀 다르다. 야구계가 아닌 문학계 이야기다.
주인공은 50세인 대학교수 그래디 트립. 7년 전에 쓴 한 편의 소설이 위대한 미국 소설 가운데 하나로 칭송받고 있다. 그런 그를 세상은 '원더 보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후속작을 좀처럼 쓰질 못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 재능이란 빛을 잃은 다이아몬드처럼 현실에 안주한 삶을 산다. 그런데 그의 수업을 듣는 제임스 리어와 엮이며 그의 삶은 뒤죽박죽이 된다. 게다가, 제임스 리어는 과거의 그를 떠올리게 하는 차세대 '원더 보이'다.
그런 문학계의 신구 원더 보이 이야기지만 야구와 관련한 소재가 절묘하게 등장한다. 트립과 불륜관계인 사라의 남편 월터는 조 디마지오의 '오덕후'다. 그의 집 여기저기에는 디마지오와 관련한 포스터와 사진 등이 장식되어 있다. 아니, 집 자체가 '조 디마지오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조 디마지오는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에 이어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다. 1941년에는 5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등 당시 야구계의 '원더 보이'다.
여기에 월터의 최고 보물은 침실 금고 속에 있다. 조 디마지오의 유니폼과 글러브, 공, 그리고 모피 코트가 보관되어 있다. 모피 코트는 조 디마지오가 평생 사랑한 전처 메릴린 먼로가 결혼식 때 입은 것이다. 그것을 제임스 리어가 훔쳐내며 영화의 긴장감은 더욱더 커진다.
또한, 트립이 영원히 끝내지 못하는 원고를 잃어버리는 장면에서는 빌 마제로스키의 벽화도 보인다. 빌 마제로스키는 1960년 월드시리즈에서 유일한 7차전 끝내기 홈런을 때려내며 피츠버그를 우승으로 이끈 주인공이다.
사실 그는 타격 능력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타격보다 수비가 돋보이는 2루수였다. 통산 8차례나 골드글러브를 수상했으며, 통산 수비율은 0.983. 여기에 2루수 가운데 가장 많은 병살 플레이(1,706차례)에 관여한 선수기도 하다. "빌 마제로스키의 수비 연습을 보는 것은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 연습을 보는 것만큼이나 가치가 있다"는 말도 있었을 정도다. 즉, 2루 수비에서 '원더 보이'다.
영화의 주제가 'Things Have Changed'는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탔다. 그 작사와 작곡에 노래를 부른 것은 밥 딜런. 설명이 필요 없는 대중음악계의 ‘원더 보이’였다. 즉, 영화는 제목 그대로 원더 보이들의 이야기다.
구세대 원더 보이 트립이 차세대 원더 보이 리어를 위해 해준 것은 '코칭'이다.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다만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끔 기회를 제공한다. 많은 연습을 통해 재능을 끌어낼 수 있다는 '티칭'을 상식처럼 여기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런 양육(養育)이 아닌 인간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이나 적성 등이 잘 발현하게끔 끌어내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