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이름 대신 별명을 쓴 유니폼
영화에 얽힌 별명을 가진 선수들
유니폼에 선수 이름 대신에 별명이 쓰여있으면, 그것을 보는 관중은 어떤 기분이 들까? 대부분 흥미롭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물론, 때로는 포복절도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여기에 선수 입장에서도, 선수 시절 별명이 많았던 김태균 같은 경우에는 꽤 난처할 듯하다. 어느 별명을 골라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선수 별명 이야기를 꺼낸 것은, 경기에서 이름 대신에 별명을 쓴 유니폼을 입은 선수를 볼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KBO리그에서는 박용택 KBS 해설위원의 은퇴식에서 LG 선수들이 그의 별명들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기도 했다(졸렬택이 등장할 줄은•••). 메이저리그에서는 2017년부터 8월 말에 3일 간 ‘플레이어스 위크엔드’로 지정해, 유니폼 등에 관한 규정을 완화해 별명 등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른다. 다만 혐오나 부정적인 명칭은 당연히 금지. 또 자신의 성장에 기여한 인물이나 단체 이름을 쓴 엠블럼도 부착한다. 즉, 메이저리그에서는 복장과 관련해 엄격한 규정 속에서 관리되는데, 이 기간만큼은 선수 개성을 존중하기로 한 것이다.
어쨌든 선수 별명 가운데는 영화와 관련한 경우도 꽤 있다. 그중 대부분은 영화 등장인물과 외모나 이미지가 닮아 생긴 별명이다. 예를 들면 1985년 타율왕과 최다안타 1위 등을 차지하며 내셔널리그 MVP에 오른 윌리 맥기. 빠른 발과 정확한 타격을 앞세워 세인트루이스와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18년간 메이저리그에서 뛴 성실한 선수였지만, 외모가 문제였다. 영화 속 외계인을 닮아 별명은 E.T.
또 1980년대 몬트리올에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제프 리어든이 있다. 통산 367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사상 처음으로 양대리그에서 모두 40세이브를 올리기도 했다. 강속구와 함께 1982년부터 1989년까지 8년 연속 62경기 이상 등판한 강철 체력. 그래서 별명은 터미네이터. 그러나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는 법이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처럼 막아내지 못하는 나날이 늘어나면서 별명도 바뀌었다. 동점남(동점을 허용하는 남자, Equalizer)으로.
그 외에도 만화 영화 ‘토이 스토리’의 주인공과 닮아 ‘우디’로 불린 커크 리터, 영화 ‘메이저리그’의 릭 본처럼 강속구를 뿌려 ‘와일드 씽’으로 불린 미치 윌리엄스, 거구를 자랑하며 공갈포의 대명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데이브 킹맨의 별명은 ‘킹콩’에서 따온 ‘콩’이었다. 또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지휘봉을 잡았던 로빈 벤추라도 이름이 같아 짐 캐리가 주연한 영화 ‘에이스 벤추라’라고 불렸다.
로빈 벤추라와는 바늘과 실과 같은 관계인 놀란 라이언도 빼놓을 수 없다(역대 가장 유명한 벤치 클리어링의 두 주인공이다). 그의 구속은 선수 생활 내내 주목을 받았다. 특히, 27살이던 1974년에는 당시 소속팀이던 캘리포니아 에인절스가 과학자 4명을 불러 탄도 속도를 측정하는 적외선 레이더로 그의 구속을 쟀다. 최고 구속은 무려 100.9마일(약 162.4km/h).
당시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빠른 공이라서, 몇 년 전에 크게 히트 친 영화 제목에 빗대 ‘라이언 특급’(Ryan Express)이라고 불렸다. 그 영화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주연으로 나온 ‘탈주 특급’(Von Ryan's Express)이었다. 덧붙여서, 박찬호의 별명인 코리안 특급(Korean Express)도 놀란 라이언의 별명에서 따온 것이다.
작명은 좋았지만, 아쉽게도 정착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마법사’(The Wizard). 이치로의 별명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2001년 선풍적인 활약을 펼친 그의 별명을 정하기 위해, ESPN의 조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이다. 2위는 ‘오리엔트 특급’(Orient Express). 흥미로운 것은 4위에 오른 ‘세븐 이어 이치로’(The Seven Year Ichiro)다. 이것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7년 연속으로 타율왕과 골든글러브를 받은 것을 영화 ‘7년 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에 빗댄 것이다.
사실 마법사라고 하면 메이저리그에서는 명유격수 오지 스미스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예술적인 수비를 뽐내며 1980년부터 13년 연속으로 골드글러브를 손에 넣은 그의 별명은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 물론, 이것 역시 영화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물론, 원작 동화가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