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게으른 자의 게으른 계획

by 김소연



#14. 게으른 자의 게으른 계획





게으른 자의 변명




'오늘은 뭘 먹을까.' 내 인생 최대 고민이다.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꼭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고, 꼭 예쁜 접시에 덜어먹고 싶다. 엄마의 식탁엔 엄마가 주로 만드는 매일 비슷한 몇 가지의 반찬을 반찬통째로 꺼내놓았는데, 그게 싫어서 결혼 후에 나는 나 혼자 먹는 밥상에도 아기자기하고 예쁜 접시를 꺼냈다. 지만 밑반찬을 일일이 작은 접시에 덜어 놓으면 반찬이 많이 남아 버리게 된다. 엄마가 반찬을 덜어먹지 않는 이유는 아마 버리는 음식이 아까워서였을 거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식탁엔 밑반찬은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니 저녁준비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점점 부엌일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장을 본 날도 역시 배달앱을 뒤적거리기 일쑤다. 냉장고가 꽉 차서 리를 하고 싶지만 언제나 귀찮음이 먼저다.



한때는 요리에 열정적일 때도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집밥을 해준다 해서 호기롭게 대답한, "나는 내가 한 요리가 젤 맛있다"는 말은 이미 과거의 일이다. 요리에 취미가 있던 그때까지만 해도 장을 볼 때, 일주일치 식단을 고려해 꼭 필요한 식료품을 필요한 만큼 주문했는데 요즘엔 집에 꼭 있어야 할 최소한의 식재료가 바닥이 나야 겨우 마트앱을 켠다. 그나마도 냉장고를 열어보는 일이 두려운 나는 마트앱보다 배달앱을 켤 확률이 높다. 냉장고에 무언가를 쌓아두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신선식품은 제때 먹어야 하니 그것 자체로도 부담인 거다. 삶을 부담스러운 것들로 채우지 않기 위해 언젠가부터 우리 집 냉장고는 아주 여유로워졌다. 사람들의 잣대로 보면 이렇게 게으른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나는 나름대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밥을 먹을 때도, 청소를 할 때도, 유튜브를 볼 때도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 즉 마음은 매우 분주한 상태인 거다. 심리학을 업으로 삼는 혹자는 몸이 게으른 이유는 마음이 분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후에 나는 그 말을 습관처럼 되뇌었다. 현실을 회피할 수 있는 힘이 되는 말이었다.







만약에 네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다가





_ 있잖아. 만약에, 네가 외나무다리를 걷고 있었어. 앞에 집채만 한 호랑이가 있기에 뒤를 돌아보니 뒤에 불곰이 있는 거야. 어디로 가야 할까?


_ 외나무다리 아래엔 뭐가 있는데?


_ 글쎄 뭐가 있을까. 계곡이 있다고 하지 뭐.


_ 계곡물이 깊어?


_ 그렇겠지. 다리까지 만들 정도면 깊은 물이겠지.


_ 그렇다면 계곡으로 떨어져야지.


_ 이야기의 포인트가 잘못됐어.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건 보기에 없었잖아.


_ 포인트를 잘못 잡은 건 너지.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외나무다리 같은 곳은 건너지 않을 거고, 호랑이와 불곰이 한꺼번에 나타날 리도 없잖아.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에'라는 질문이었다. 내가 말한 외나무다리라는 건 진짜 다리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였다. 불곰은 사람을 잡아먹을 때 즉사시키지 않고 척추를 먼저 끊는다는데 그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다고 한다. 하지만 불곰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사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호랑이에 물려 한번에 즉사를 하는 게 나은지, 아니면 불곰이 혹시 나를 지나칠 가능성이 있으니 불곰 쪽으로 가는 게 나을지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친구는 죽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 걸, 또 그걸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만약에 라는 질문은 보통 황당하기 그지없고, 현실에 거의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많다. 사실 친구말처럼 호랑이와 불곰을 한꺼번에 만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나는 만약에 라는 말을 달고 사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친구는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라서 내가 만약에 라고 말하면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처음엔 친구가 상상력이 부족한 아이라고 생했지만, 어쩐지 나는 친구의 말에 안심이 됐다. 그런 황당하고 놀라운 일에 대한 결정은 미리 하는 게 아니라 그때 해도 늦지 않다. 쓸데없이 온갖 걱정으로 머리를 채우고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나았다. 내가 외나무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이유는 갈 수 있는 길이 오직 전진과 후진뿐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말한 다리 중간에서 뛰어내리는 답안지는 내겐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고, 내가 여태 생각했던 것들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나 역시 그런 현실적인 충고 같은 건 흘려버렸다. 내가 신뢰하는 건 그저 내가 안심할 수 있는, 출처도 분명치 않은 어디에선가 들은 말이었다.







하늘을 나는 꿈




나는 하늘을 나는 꿈을 자주 꾼다. 하늘을 나는 꿈은 정말 좋은 꿈이다. 하지만 내 경우엔 조금 달랐다. 멋지게 하늘을 날며 멋진 풍경을 본다면 너무 좋은 꿈이겠지만, 내가 꾸는 꿈은 주로 하늘을 날다가 전깃줄에 걸려 감전되거나, 착지하고 싶은 곳에 착지가 어려워 건물 아래로 떨어지거나, 방향을 바꿀 수 없어 전쟁터를 지나다가 총에 맞는 거다. 꿈에서 나는 날고 있으면서도 착지할 걱정뿐이다. 꿈에서도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꿈에서 하늘을 맘껏 날아보는 게 꿈었던 나는 젠가부터 잠들기 직전에 꿈속에서 날게 되면 착지를 멋지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 하지만 그건 부질없는 일이다. 멋진 꿈을 꾸면 운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무리 대운이 찾아와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룰 수가 없는 거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로또를 주워 당첨되는 그런 부질없는 꿈. 실제 내 삶에서 이루지 못할 꿈을 나는 꿈 속에서도 대부분 이루지 못한다. 깨어있는 내가 나이든, 꿈속의 내가 나이든 어느 한 곳에서라도 꿈을 이룰 수 있어야 살 이유가 있지 않나. 하지만 현실에서든 꿈에서든 나는 좌절에 익숙다.



철저한 계획은 어그러지면 그저 망상이 될 뿐이다. 내가 게으른 이유는 철저한 계획이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 않기 위함이다. 계획에도 강박이 있어서 지금은 그저 무계획이 계획이 되었다. 행을 갈 때, 시간 단위의 꼼꼼한 계획이 아니라 재미있는 여행이 되길 바라는 것도 계획에 포함되는 것 아닐까. 시 여권을 잃어버릴까 봐 쓸데없는 걱정할 필요 없는, 그런 조급한 마음이 없는 그런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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