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내가 나를 불편해한다면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는 마음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되면서 나는 스스로를 너무 하찮게 대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같은 음식을 먹어도 아이들에게는 먹기 편한 예쁜 음식을 접시에 놔주고 나는 못생긴 걸 먹는다든지. 김밥을 먹을 때는 꽁다리가 내 차지가 되고, 갈비를 먹을 땐 거뭇하게 탄 부분이 늘 내 차지가 되는 거다. 늘 그렇게 먹다 보니 그게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아들이 엄마는 왜 그런 것만 먹냐며 자신의 접시에 덜어준 걸 내 접시로 옮겨주는 걸 보니 울컥 했다. 마치 엄마가 생긴 것 같았다. 아들은 그 이후로도 식탐이 없는 엄마의 입에 자주 맛있는 걸 넣어줬다. "엄마 이거 한번 먹어봐. 진짜 맛있어." 아들의 입에서는 엄마 같은 말들이 자주 새어 나왔다. 어린 남자아이의 눈으로 본 엄마는 아무도 챙겨주는 이 없는 가여운 존재였다.
사랑이란 정의에서는, 남자는 입고 있는 옷을 벗어주는 것, 여자는 자신의 음식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하던데, 다 거짓처럼 느껴졌다. 모성애는 여자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모성애의 기본은 맛있는 음식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것이라는 그 간단한 진리를 잊고 살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놓고 있었던 거다. 선인들이 말하는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면
존중하는 마음은 약간의 불편함에서 나온다. 집에서는 후줄근한 옷 몇 가지를 번갈아 입고도 부끄럽지 않지만, 손님이 오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혼자 커피를 마실 때는 머그컵에 마시지만, 손님을 위해서는 손님용 찻잔 세트를 꺼내어 놓는 것.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불편한 사람에게 편한 모습을 보이는 게 더 불편한 일일테니.
유명 배우 누구는 집에서도 청바지를 입는다고 한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려고. 왜 저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거지? 집에서는 편한 복장으로 있으면 참 좋으련만. 사실은 다 거짓말이겠지 생각했다. 한데 요즘엔 새삼 그 배우가 존경스러워졌다. 누군가를 존중하는 마음은 불편함에서 오는 거니까. 그 배우는 혼자서 먹을 밥상을 차릴 때에도, 후식을 먹을 때에도 예쁜 그릇을 꺼내겠지. 후식에는 싸구려 과자가 아니라 예쁜 조각 케이크나 정성스레 깎은 과일도 내놓을 테지. 그녀는 자신을 스스로 불편하게 함으로써, 그에 걸맞은 대접을 스스로에게 해주겠지.
매일 후줄근한 옷을 입던 내가 어느 날 외출복을 입고 아들을 픽업하러 갔더니, 왜 이렇게 예쁘게 입고 왔냐고 묻던 아이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만 나를 존중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아무래도 집에서 청바지를 입을 용기는 없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혼자서 예쁜 찻잔에 차를 마시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내 아이들에게 말하던 대로, 만약 혼자서 산다고 해도 반찬통을 그대로 꺼내 먹지 말고 예쁜 접시에 덜어 먹으라든지, 남들이 보지 않는다고 해도 다 해진 옷 말고 예쁜 옷을 꺼내어 입으라든지, 그런 말을 스스로도 지킬 순 있을 거다. 가끔은 아무 일 없이도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새로 산 외출복을 입을 수 있다. 이제부터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며 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