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엔 밥을 말아먹어야지
스무 살이 조금 지난 무렵, 내가 다니던 변호사 사무실의 변호사님 중 한 분은 소위 양반이었다. 걸음걸이이나 말투, 입가에 살짝 머금은 미소까지 영락없이 사대부 집안의 도련님 같았다. 그의 걷는 모습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느긋하게 걷는다면, 한쪽 팔을 뒤로 두르고 아주 천천히 걸었을 거다. 기억은 흐려졌지만, 그런 모습이 아주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품성과 맞는진 잘 모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치 가제트형사와 흡사한 외모를 가졌었다.
어느 가을날 그는 아주 클래식한 트렌치코트를 입고선 뭘 먹을까? 하더니 국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국밥을 사랑한다. 굳이 음식에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어색하다면, 정말 사랑하지 않는 것이므로 나는 다시 써도 국밥을 사랑한다 말할 거다. 뜨끈하다 못해 아주 뜨거운 뚝배기의 국물에 뜨끈한 밥을 말아 입에 한입 넣으면, 천국이다. 아 맞다. 차가운 깍두기를 국밥에 넣으면 깍두기가 뜨뜻해지는데, 나는 그게 젤 좋다. 그게 국밥을 먹는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뜨끈한 국밥을 한 그릇 시켜놓고 그는 맨밥을 크게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며 말했다. "자고로 양반은 말이지." 그 사이에 뚝배기에 나온 국물을 아주 조금 떠서 입가에 축이고는 나를 보며 말을 하려다가 조금 뜸을 들였던 것도 같다. "으흠. 자고로 양반은 국에 밥을 말지 않아." 그럴 줄 알았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예, 근데 저는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게 좋아서 그냥 상민이나 노비 할게요." 약간 빈정 상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역시나 입가에 흐뭇한, 아니 오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표정이 어찌나 때려주고 싶게 얄미웠는지. 말해 뭘 해.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양반인지 선비인지 가제트형사인지 그는 끝까지 밥 한 숟가락 국물 한입 깍두기 한입을 먹느라 분주했다. 그는 그 이후로도 양반답게 따뜻한 국이 나오는 한식을 주로 먹었는데, 갈비탕을 먹으러 간 어느 날엔 그의 밥을 갈비탕 안에 넣고 싶은 걸 참느라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 각자 취향대로 먹자. 그게 최선이다. 먹는데 정해진 방법이 어딨겠어?